[필동정담] 비상용품 태극기
"태극기 있는 곳에서 만나자."
군벌 간 무력 충돌이 진행 중인 수단에서 우리 교민 전원을 공군 수송기에 태워 구출한 '프라미스 작전'. 이 작전에서 교민들의 1차 집결 장소는 태극기가 걸려 있는 한국대사관이었다. 교민 28명은 당초 9군데 흩어져 있었다. 이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게 작전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외교부는 고민 끝에 수도 하르툼 중심지에 있는 우리 대사관을 최종 집결지로 정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공관은 그나마 군사 공격에서 안전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외교관 차량이 피습당하고, 유럽연합(EU) 대사 관저가 공격받기도 했지만 다행히 우리 공관은 무사했다.
지난해 1월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퍼지자 김형태 주우크라이나 대사는 '비상용품 키트 배낭'부터 준비했다. 교민 연락망을 가동해 서둘러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가도록 독려하면서 비상용품 키트 배낭을 하나씩 들려 보냈다. 배낭 안에는 전시에 필요한 라디오, 랜턴, 구급약, 호루라기 등과 함께 차량용 태극기 스티커가 두 장씩 들어 있었다.
위험지역에선 차량 전면에 태극기를 붙이고 이동하라는 게 대사관의 뜻이었다. 실제 우크라이나에서 수십만 명의 탈출 러시가 일어났지만 태극기를 붙인 차량은 우크라이나 경찰들의 자발적인 호위를 받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온 한 교민은 "태극기가 마치 프리패스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 덕분에 전쟁 전 560명에 달하던 우크라이나 내 우리 교민 중 530여 명이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우크라이나를 탈출할 수 있었다.
태극기는 이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용품이자 방탄조끼보다 더 강한 안전용품이 됐다. 한국의 재외국민 보호 체제는 이미 세계 일류 수준이다. 수단 사태 일주일 만에 정부가 나서서 교민을 전원 탈출시킨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인·영국인들은 아직도 개인적으로 필사의 탈출을 하고 있다. 높아진 태극기의 위상만큼이나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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