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회 백상] 전통과 새로움 공존…영화부문 어떻게 결정됐나
극장과 한국 영화계가 현재 진행형 위기를 겪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그럼에도 지난 1년 간 관객들의 사랑 속 기록되고 기억될 만한 작품들이 백상예술대상과 함께 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콘텐트가 쏟아지고 있지만 '영화만이 줄 수 있는 힘'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새로 시작 될 1년과 향후 영화계의 부흥을 응원하는 마음이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심사 과정 전반에 담겼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환경 감독은 그간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온 바, 3차에 걸쳐 진행 된 심사 회의에서도 어느 해보다 난상 토론이 펼쳐진 과정 전반을 융합하며 보듬고 이끌었다. 이환경 감독은 심사위원들을 대표해 "몇몇 부문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후보들이 포진 되면서 최종 의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 만큼 지난 해에도 한국 영화의 힘을 보여주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작품과 영화인들이 관객들과 함께 했다. 다시 꽃 피울 한국 영화에 위로와 응원, 경의를 보낸다"는 뜻을 표했다.
지난 달 28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개최되고 JTBC·JTBC2·JTBC4·틱톡에서 생중계된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대상은 영화 '헤어질 결심'이 수상했다. 영화부문에서 작품이 대상을 받은 건 54회 '1987(장준환 감독)' 이후 5년 만. 박찬욱 감독은 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아가씨'로 개인 대상을 받은 후, 6년 만에 작품으로 또 한 번 대상을 품에 안게 됐다.
올해 영화부문 대상은 '헤어질 결심'과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과 '헤어질 결심'이 경합했다. 후보 선정 때부터 3차 심사까지 사실상 경쟁 없는 경쟁으로 대상 후보에는 변동이 없었다. 결국 '사람이냐, 작품이냐'의 기로에서 유난히 앙상블이 좋았던, '헤어질 결심'을 이루는 모든 것들의 시너지가 빛났다는 점이 최종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독보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박찬욱 감독과 '헤어질 결심'을 비견할 만한 작품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지난해 영화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라 본다"고 꼬집었다.
대상과 엮어 작품과 감독의 공동 노미네이트가 많았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이 함께 논의 됐다. 대상이 '헤어질 결심'으로 결정되면서 작품상은 '올빼미'와 '다음 소희' '헌트', 감독상은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과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각본(시나리오)상은 '헤어질 결심'과 '다음 소희', '육사오'가 각축을 벌였다. 작품상 '올빼미'와 감독상 박찬욱 감독, 각본상 정주리 감독은 2차 심사 첫 투표에서 이미 4표의 과반수 이상 표심을 받으면서 3차 심사에서도 무리 없이 해당 부문 주인공으로 결정됐다.
바른손씨앤씨 서우식 대표는 작품상 '올빼미'에 대해 "모든 파트에서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 났다"고 깔끔하게 정리했고, 심재명 대표는 "흥행이라는 상업적인 성과도 좋았지만, 이야기 자체도 현실을 은유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본다. 각본도 알차고, 연기도 힘있고, 영화적 완성도가 굉장히 좋았다. 지난해 하반기를 구원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고 극찬했다.
각본상은 '육사오'가 "요즘 쉽게 도전하지 않는 장르이고, 장르의 색을 살려 풀어내기 쉽지 않은 장르 중 하나인데, 야심이 큰 작품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이야기 안에서 오랜만에 옹골찬 힘을 느낄 수 있었다"는 지지를 받았지만 '다음 소희'와 '헤어질 결심'의 벽이 워낙 높았다. 심사위원들은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와 박찬욱 감독의 환상적 팀플레이를 인정하면서도 '다음 소희'가 '단순히 노동 영화로만 귀결되는 작품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 '일부 실화를 영화 매체로 옮길 때 빠질 수 있는 유혹의 밸런스를 시나리오부터 적절히 유지했다는 점'에서 "각본상을 받는 것이 지당하다"는 평이 우세했다.
올해의 신인감독상은 감독상 부문에도 나란히 노미네이트 된 '헌트' 이정재 감독과 '올빼미' 안태진 감독이 주목 받았다. 이들 감독은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전 설문에서부터 1, 2위를 다투며 심사 초기부터 수상권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정재 감독은 '오랜 배우 생활로 영화계에 잔뼈가 굵다는 점'과, 그 지점을 배제하더라도 '신인감독으로서 놀라울 정도로 힘 있는 연출을 보여줬다'는 점이 훌륭하게 평가 됐다. 하지만 10여 년의 준비 기간 끝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픽션 사극 스릴러 계보의 새 지평을 연 흥미로운 첫 작품으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작품상의 작품을 완성해 냈다는 것에서 안태진 감독이 5표를 획득하며 신인감독상을 품에 안았다. '헌트'는 이모개 촬영 감독이 대상 외 부문 중 올해 유일한 만장일치로 예술상에 꼽혔다.
배우 부문은 어느 부문 하나 쉽지 않은 심사가 이뤄졌다. 올해 깜짝 세대교체 파란의 주인공이 된 남자최우수연기상 '올빼미' 류준열은 최초 '범죄도시2' 마동석, '헤어질 결심' 박해일과의 싸움을 시작으로, 이후 박해일과 엎치락 뒤치락 속 최종에 최최종 심사까지 진행하는 경합 끝 6표를 따내며 생애 첫 노미네이트 부문에서 트로피까지 손에 쥐는 기염을 토했다. 극동대학교 최건용 교수는 "영화를 보고 오히려 놀랐던 케이스다. 류준열은 이번 작품에 완벽하게 녹아 들었고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며 "특히 영화계는 매 해 보던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후보도 번갈아가며 차지하는 올드함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희망을 류준열에게 봤다. 다른 선배들에 비해 지지않는 연기를 펼쳤다"고 호평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김선아 교수도 "한국 영화의 위기 상황에서 적어도 삼루타 이상 날린 작품 최전선에서 운반을 아주 잘한 배우라고 본다. 누구 하나 부족하지 않은 앙상블이 빛난 작품이었던 것도 맞지만 '올빼미' 성과에는 류준열의 힘도 명확하게 있었다. 스스로 배우로서 존재감을 다시금 높였고 무엇보다 이 상을 아주 잘 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서우식 대표는 "다섯 후보 중 '연기를 잘했구나' 느낀 건 류준열이다. 어려운 연기를 제 색을 잃지 않으면서 훌륭하게 소화했다. 아직 젊고, 이르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렇기에 저평가 받았던 배우라는 생각도 있다. 백상의 조명은 류준열에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덧붙였다.
여자최우수연기상은 심사위원 모두 지지하는 배우들이 갈리면서 최초 투표에서는 단 한 명의 배우도 빠짐 없이 표를 획득하는 이례적 상황이 발생했다. 어느 배우 하나 연기력은 물론, 작품 내 존재감과 완성된 작품 자체가 관객들에게 비춰짐에 있어 힘을 부여하지 않은 배우가 없다는 것이 총평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최종 완성 된 작품의 작품성과도 연동돼야 한다고 본다'는 동의의 기준이 잡혔고, 압도적 분위기와 캐릭터에 특화 된 연기력으로 작품과 파트너에 대한 신뢰의 시발점이 되어준 탕웨이가 4표를 얻으면서 12년 만에 또 하나의 백상 트로피를 가져가게 됐다. 심사위원들은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를 보는 관점으로 따라가게 만든 작품이었다", "다양하게 시선이 분산되는 과정에서도 '이 배우만 보였다'는 느낌이 강했다" 등 평가를 남겼다.
매 해 가장 어렵게 수상자가 결정되는 부문 중 하나인 남자조연상은 올해도 긴 토론 시간이 할애됐다. '교섭' 강기영, '올빼미' 김성철, '범죄도시2' 박지환, '한산: 용의 출현' 변요한, '비상선언' 임시완이 수상 후보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고르게 표를 받으며 여러 지지 발언을 쏟아지게 만든 것. 강기영과 김성철은 신선함, 박지환과 임시완은 임팩트, 변요한은 밸런스와 존재감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종 심사는 김성철과 변요한의 경합. 변요한이 5표를 받았다.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은 "'한산: 용의 출현'은 말하지 않아도 이순신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갖고 있는 묵직함이 남다르다. 나서더라도 나서게 보일 수 없는 상황에서 변요한은 이순신을 중심으로 안타고니스트의 밸런스를 잘 맞췄다. 스스로의 위치와 캐릭터 존재의 이유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연기해냈다"고 설명했다.
여자조연상 부문도 새로운 얼굴들이 주목 받았다. 올해는 최우수연기상 후보 염정아, 배두나의 조연상 동시 노미네이트 자체가 흥미를 이끌기도 했던 바.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저 배우가 없으면 어쩔 뻔 했냐"며 '외계+인' 1부 염정아, '브로커' 배두나라는 전통의 강호들에 대한 애정을 표하면서도 "누구 보다 반짝반짝했다"는 '육사오' 박세완과 '길복순' 이연에게 조금 더 집중했다. 최종 결과는 박세완이 6표로 완승을 거뒀다. 이환경 감독은 "박세완을 보면서 우리 선배 배우들의 모습이 강하게 꽂혔다. 메소드 연기도 좋지만 박세완처럼 투명하게 던지는 친구도 나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연기를 펼쳤다", 심재명 대표는 "과거 염정아, 최진실 배우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육사오'의 로맨스와 코믹 요소가 당돌하게 잘 살았던 것은 박세완의 힘이 컸다.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다"고 다독였다.
생애 단 한 번 밖에 받을 수 없어 더 설레고 떨리는 남녀신인연기상은 '크리스마스 캐럴' 박진영과 '다음 소희' 김시은이 각각 '윤시내가 사라졌다' 노재원, '불도저에 탄 소녀' 김혜윤과 경합에서 나란히 5표를 획득하며 수상자로 호명될 수 있었다. 김혜윤은 작품마다 다양한 컬러를 보여주고 있는 잠재적 포텐을, 노재원은 새로운 연기파 배우의 등장과 향후 가능성이 높게 평가 됐지만 올해의 신인상은 박진영과 김시은에게 돌아갔다. 박진영과 김시은은 이 날 백상예술대상이 자랑하는 특별무대에도 오르는가 하면, 박진영은 100% 사전 투표로 이뤄지는 틱톡 인기상 수상자로도 낙점 돼 새로운 백상의 남자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8일 입대 전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마지막 공식석상 나들이를 마무리 지었다.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은 발굴의 의미와 함께 배우 커리어에도 큰 힘이 되는 부문으로 자리매김 해왔기에 심사위원들의 고심도 매 해 깊을 수 밖에 없다. 박진영과 김시은은 뚜렷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서 각 작품이 그려내고자 하는 캐릭터를 각자의 방식대로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황영미 시네라처 연구소 소장은 박진영에 대해 "잘해내면 배우와 연기 모두 돋보일 수 밖에 없는 캐릭터였지만 반대로 못한다면 그 만큼 혹평 받을 수 있는 역할이기도 했다. 스크린 신고식을 강렬하게 잘 치렀다"고 칭찬했고, 심재명 대표는 "단독 주인공으로 놓고 본다면 압도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김시은에 대해서는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이 "다소 처연하고 불쌍하게만 보일 수 있는 인물을 특유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를 살려 건강하게 소화해 냈다", 최건용 교수는 "두 배우 모두 당찬 면모가 인상 깊었는데, 깨끗하게 단단한 김시은에게 오히려 더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한편 제59회 백상예술대상은 2022년 4월 1일부터 2023년 3월 31일까지 지상파·종편·케이블·OTT·웹에서 제공된 콘텐트, 같은 시기 국내에서 공개한 한국 장편영화 및 공연한 연극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영화부문은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5일까지 열흘 간 국내 대표 투자배급사·OTT 플랫폼·제작사 대표 및 임원들을 비롯해 감독, 스태프, 영화 홍보 마케팅사, 매니지먼트, 평론가 등 전문가 30인에게 사전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심사위원 추천위원회를 거쳐 위촉된 부문별 심사위원이 전문가 30인의 사전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하며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
28일 개최된 시상식은 대중문화예술의 막강한 영향력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 시청자·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콘텐트의 힘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글로벌 화제성은 이날 디지털 생중계된 틱톡 누적 시청자 수로 증명했다. 레드카펫(25만 8428명)과 본식(172만 3992명)의 누적 시청자 수가 198만 2420명이었다. 지난해 보다도 약 43만명이 더 많은 수치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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