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오 칼럼] 금융 사기 사건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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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반복해서 발생하는 금융 사기 사건들 사이에서 공통된 패턴을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하게 된다.
지난주 수많은 주식투자자를 공포에 빠뜨렸던 무더기 하한가 사태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번 주가 폭락은 2020년부터 서로 짜고 주식을 사고팔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던 통정(通情)매매 주가조작 사건이다.
이번 사건 주도자들은 우량하지만, 유통주식 수가 적어 주가 조작이 쉬운 종목들을 골라, CFD 통정매매를 통해 3년 가까이 꾸준히 주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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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하한가 사태’는 통정거래 사기
낡은 수법을 첨단 파생상품으로 위장
반복되는 사건 못 막는 건 누구 책임인가
기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반복해서 발생하는 금융 사기 사건들 사이에서 공통된 패턴을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하게 된다. 지난주 수많은 주식투자자를 공포에 빠뜨렸던 무더기 하한가 사태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번 주가 폭락은 2020년부터 서로 짜고 주식을 사고팔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던 통정(通情)매매 주가조작 사건이다. 최근 금융 당국이 이를 포착했고, 눈치챈 조작 세력이 서둘러 주식을 매도하면서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통정매매는 초보적 수법인데, 3년간 1,000명 가까이 연루된 조작이 지속된 이유를 찾는 게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금융 사기 사건 얼개는 대부분 단순하고 오래 반복돼 온 것들이다. 하지만 이를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수법은 변화한다. 이번엔 차액결제거래(CFD)라는 파생상품이다. CFD는 실제 주식을 매입하지 않더라도 증권사와 계약을 통해 일부 증거금만 납입하면, 차입 투자를 통해 가격 변동의 차익을 얻는 구조다. 우선 실제 주식 매매는 증권사가 하므로 CFD 투자자는 정체를 숨길 수 있다. 게다가 자기 자본의 몇 배까지 주식을 매매할 수 있다. 주가조작 세력이 이런 ‘요술 방망이’를 과연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이번 사건 주도자들은 우량하지만, 유통주식 수가 적어 주가 조작이 쉬운 종목들을 골라, CFD 통정매매를 통해 3년 가까이 꾸준히 주가를 올렸다. CFD는 ‘고수익을 안전하게 보장하는 첨단 투자상품’으로 선전되며, 신규 투자자를 유혹했다.
CFD가 쉽게 주가 조작 도구가 된 건 규제 완화 때문이다. 금융사기 사건의 두 번째 공통 요소다. 금융당국은 2016년 CFD 판매를 허용하면서, 거래 자격을 금융투자상품 잔액 5억 원 이상 등 전문투자자로 제한했다. 하지만 2019년 말 개인의 공매도 투자 허용 대신 CFD의 투자 자격을 투자상품 잔액 5,000만 원 등으로 크게 낮췄다. 이번 주가조작 대상이 된 일부 종목 통정매매가 시작된 것이 2020년 초라는 점에서 주가조작 세력은 CFD 규제 완화로 생긴 빈틈을 금방 발견했을 것이다.
금융사기가 대형화하는 데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하다. 바로 ‘레버리지’다. 이는 자기 자본보다 많은 돈을 빌려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비율을 뜻한다. 이번 사건의 도구인 CFD에 적용된 최고 레버리지는 2.5배로 알려져 있다. 파생상품 세계에서는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지만, 이 역시 위험하다. CFD 계약에 따라 주식 매매 주문을 체결한 증권사는 손실 회피를 위해, 투자 손실로 투자자가 담보유지비율 50~70%를 지키지 못할 경우 주식을 처분(반대 매매)할 수 있도록 계약한다. 투자자가 1억 원을 증거금으로 납부하고, 증권사가 특정 주식을 2억5,000만 원어치 매수했다고 가정해 보자. 장 마감 때 12% 이상 하락했다면, 3,000만 원 넘는 손실로 담보 유지 비율이 70%에 미달하기 때문에 증권사는 다음 날 자동으로 매도에 나선다. 그리고 반대 매물이 미처 소화되지 못한다면, 그다음 날 더 낮은 가격으로 또 매도 주문을 한다. 지난주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벌어진 메커니즘이다. CFD의 레버리지는 지난 3년간 주가를 10배 이상 꾸준히 끌어올렸지만, 며칠 만에 주가를 반토막 이하로 떨어뜨린 양날의 칼이었다.
새로운 투자 상품은 계속 출현하지만, 본질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것은 고수익에 눈이 멀어 명백한 위험을 외면하는 투자자ㆍ금융사의 탐욕과 이번엔 다를 것이란 당국의 안이한 태도도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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