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파이’ 부르고 돌아온 윤 대통령
한국 대통령이 ‘핵에는 핵으로’ 한반도에 핵무기를 떨어뜨려달라는 요구에 온 힘을 쏟는 것이 기가 차기는 하지만, 보수적 입장에서도 애초 꾀했던 바를 온전히 못 얻었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실은 막판까지 백악관과 이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애초부터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경제 분야는 뒷전이고, ‘도청 사과’는 말도 꺼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복기를 해보자.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미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보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핵협의그룹(NCG) 설립 등 대북 확장억제 수위를 높였으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법 등에서 한국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등 경제 분야 성과는 미약하다는 것이다. 예견됐던 일이다.
순방 직전인 지난 24일 <동아일보>는 “‘북이 남 핵공격땐 미 핵보복’ 공동문서 추진”이라는 1면 톱기사를 게재했다. 보도를 보면, “한국의 요청으로” 추진되는 것은 이와 함께 △장관급 상설 협의체 마련 △미국의 핵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등이었다. 외교부는 이날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 없음. 한·미는 고도화되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임”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써달라는 뜻이다.
그런데 ‘워싱턴 선언’에는 ‘미 핵보복’ 대신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전력”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장관급 상설 협의체’는 두 단계 아래 차관보급으로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요구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북한 핵 억제를 위해서라고는 하나 한국 대통령이 ‘핵에는 핵으로’ 한반도에 핵무기를 떨어뜨려달라고 온 힘을 쏟는 것이 기가 차기는 하지만, 보수적 입장에서도 꾀했던 바를 온전히 못 얻었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실은 막판까지 백악관과 이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애초부터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경제 분야는 뒷전이고, ‘도청 사과’는 말도 꺼내선 안 되고, 경제사절단을 동원한 대미 투자도 이를 얻기 위한 마중물로 쏟아부은 것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대만 문제’ ‘일본 무릎’ 발언 등 방미 전에 <로이터>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 등을 통해 스스로 논란을 자초한 것도 이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모두 다 미국이 한국에 원하는 것이다. 외교적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미국 ‘핵’에 매달린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대만’ 문제를 얘기하면서, 굳이 “남북한처럼”이라고 말해 ‘하나의 중국’(One China) 원칙을 자극하려는 듯한 발언을 한 건 납득이 잘 안된다. 5를 달라는데 10을 준 격이다. 윤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모호해야 할 때는 분명하고, 분명해야 할 때는 모호하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의 한 핵심 의원은 순방 직전 “이제 더 이상 외교 관계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들어가면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는데 그걸 모른 체할 수 없다. 대만 문제도 이전보다 강화된 표현이 들어갈 수 있다. ‘물리력에 의한 현상 변경은 안 된다’는 취지의 더 강한 표현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6일(현지시각) ‘워싱턴 선언’을 설명하며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개 ‘사실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음날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한국 특파원단 브리핑에서 “‘사실상 핵공유’라고 보진 않는다”고 곧바로 부인했다. 이런 망신이 없다. ‘핵’에 집착하며 ‘성과’로 포장하고 싶은 욕심 탓이다. 대통령실은 다음날 “용어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궁색하다.
김 차장은 ‘핵공유’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치하받을 것이다. 김 차장을 징치하는 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윤석열 정부 외교의 핵이다. 윤석열과 김태효는 한 몸이다. <뉴욕 타임스>는 29일 “한국 지도자는 바이든한테 환대받았지만, 오랫동안 유지된 신중한 외교 기조를 위태롭게 하면서 미국에 더 밀착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에 대한 일각의 불안감 등 매우 차가운 여론에 직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극우 언론으로 분류되는 일본 <산케이신문>은 28일 사설에서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을 닮아야 한다”며 극찬했다.
27일 미 의회 연설에서 윤 대통령이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은 2020년에 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하자, 텍사스주 마이클 매콜 하원의원(공화당)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 쳤다. “조지아주의 브라이언 카운티에 현대차의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이 2024년(매년 30만대 생산)부터 가동된다”고 하자, 조지아주 존 오소프 상원의원(민주당)이 기립박수를 쳤다. 앞서 26일 백악관 로즈가든 기자회견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을 옆에 세워두고 “제가 취임한 후에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1천억달러(약 133조5천억원) 이상 투자했다”며 재선 운동을 했다. 30일 기획재정부는 윤 대통령 방미 경제 성과로 ‘59억달러(약 7조8천억원) 투자액 유치’를 꼽았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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