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지진으로부터 안전한가
“고리, 월성 16기 원전설계에 반영되지 않은 활동성단층이 최근 행정안전부 연구용역 단층조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정부와 한수원이 주장하는 최대지반가속도 0.2g, 0.3g로 내진설계된 원전들은 각각 규모 6.5, 규모 7.0지진까지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하나 진원까지의 거리와 부지지질 특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달 24일 오후 부산YMCA 17층 대강당에서 열린 ‘고리원전, 지진으로부터 안전한가?’를 주제로 한 포럼에서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는 이같이 밝혔다. 이날 포럼은 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범시민운동본부와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공동주최하고 더30Km포럼이 주관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행안부 활성단층조사 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신고리5·6호기 소송 당시 이러한 활성단층조사 결과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이 지적돼 고리원전단지에 대한 지진대책이 강력히 요구됐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경상권 활성단층조사 현황과 활용’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손 교수는 2017년부터 행정안전부의 활성단층조사 사업에 참여해왔다. 행안부 주관으로 활성단층 조사의 중장기 로드맵은 1단계(2017~21: 경상권, 디지털지도시스템 구축), 2단계(2022~26: 수도권·충청권 북쪽, DB시스템 보완), 3단계(2027~31: 충청권 남쪽·전라권 북쪽, DB시스템 갱신), 4단계(2032~36: 전라권 남쪽·강원권, DB시스템 갱신)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행안부 조사가 추진되게 된 계기는 2016년 9월 규모 5.8의 경주지진과 2017년 11월 규모 5.4의 포항지진으로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돼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활성단층조사가 요구됐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한반도 경상권에서 총 16개(행안부 14개, 과기부 2개) 제4기 단층분절의 분포, 기하와 운동 특성, 최후기 운동시기 등이 규명됐으며 동남권 제4기 단층들의 최대 지진규모는 6.5에서 7.0 사이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어 김영희 변호사는 ‘원전과 지진 위험-신고리5·6호기 소송 지진 쟁점’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변호사는 먼저 한겨레신문(2023년 3월 2일)의 ‘고리·월성 16개 원전 설계 때 ‘지진 우려 단층’ 고려 안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했다.
‘한수원은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고리·월성원전 인근에 ‘설계 때 고려해야 하는 설계고려단층이 5개가 있다는 설명자료를 제출했다. 원자력 이용에 따른 안전관리에 필요한 대책 등을 마련하는 조직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시를 통해 50만 년 이내에 두 차례 이상 또는 3만5000년 이내에 한 차례 이상 움직인 단층을 ‘활동성 단층’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원전 반경 32㎞ 안에 위치하면서 길이가 1.6㎞를 넘거나 반경 80㎞ 안에 있으면서 길이가 8㎞ 이상인 경우 ‘설계고려단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설계고려단층을 따로 분류한 것은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으니, 특히 이를 고려해서 원전 내진 설계 등을 하라는 취지다.
고리·월성원전 주변에 설계고려단층이 있다는 사실은 애초 행정안전부 연구용역에서 밝혀졌다. 행안부는 지난 1월 소속 기관인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누리집에 ‘한반도 단층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기술 개발’ 최종 보고서를 올렸다. 2017년부터 5년 동안 이뤄진 연구용역의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한반도 동남권(경남·북 부산 울산)에서 14개의 ‘활성단층 분절’이 확인됐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활성단층은 지질학적으로 최근인 신생대 제4기(258만년 전 이후)에 지진으로 지표가 파열돼 가까운 미래에 다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다. 분절은 활성단층의 일부 구간을 말한다. 이들 14개 활성단층 분절 가운데 5개가 원전 반경 32㎞ 안에 있으면서 길이가 1.6㎞ 넘는 설계고려단층인 것이다. 이 5개는 울산 삼남읍 상천·방기·신화리의 삼남분절(2.0~10.5㎞), 경주 암곡동 왕산분절(2.1~5.9㎞), 울산 북구 창평동 차일분절(2.8~4.2㎞), 경주 외동읍 말방·활성리 말방분절(3.5~4.3㎞), 경주 천군동 천군분절(2.0~4.0㎞)이다. 고민정 의원실과 ‘한겨레’가 이들 5개 활성단층 분절의 좌표를 구글 지도에 입력해보니, 이 가운데 원전과 가장 가까운 단층은 차일분절로 월성원전까지 불과 12㎞ 거리에 있었다. 천군·왕산·말방분절은 월성원전 반경 13~21㎞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남분절은 고리원전 반경 26㎞ 안에 위치했다(한겨레신문, 2023년 3월 2일).’
김영희 변호사는 김석연 변호사와 함께 소송대리인으로 신고리5·6호기 건설허가취소소송을 수행하면서, 원전설계에 반영되어야 할 활동성단층에 대해 관련 법령을 위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했음에도 당시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이 이번 행안부 용역 결과 사실로 확인이 된 것이다. 문제는 지난 40여 년간 고리와 월성에 들어선 원전 14기는 물론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5·6호기 설계에도 설계고려단층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영희 변호사는 신고리5·6호기 소송에서 건설허가처분의 위법사유로 주장한 쟁점은 크게 13가지였는데 그중 7가지가 지진 관련 쟁점이었다고 밝혔다. 신고리5·6호기 소송은 2016년 9월 12일 제기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 9.12 경주지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신고리5·6호기 소송은 ‘신고리5·6호기 건설허가가 위법하지만 취소하지 않는다’는 사정판결이 1·2심 모두 내려졌고, 대법원에서 2021년 4월 30일 최종 확정됐다.
김 변호사는 먼저 한수원이 주장하는 지진과 최대지반가속도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규모(Magnitude)는 발생한 지진에너지의 크기이고, 진도(Intensity)는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척도를 말한다. 최대지반가속도는 특정 부지에서의 최대지진동을 중력가속도로 표시한 값을 이른다. 정부와 한수원은 최대지반가속도 0.2g로 내진설계된 원전들은 규모 6.5지진까지, 0.3g로 내진설계된 원전은 규모 7.0지진까지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0.3g의 내진 설계로는 규모 7.0 지진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기상청 자료(2021)에 따르면 규모 6.0~6.9지진의 경우 최대지반가속도 값이 0.24~0.83g에 걸쳐 분포하기에 규모 7.0에 0.8g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17년 9월 5.8 규모의 경주지진에서 진앙에서 8km 떨어진 울산지역의 최대지반가속도가 0.4g였고, 고속철도 지진감시시스템에는 경주지진 때 진앙지 부근 신경주 서하고가에선 규모 5.8에 544cal(0.55g)의 초대지반가속도가 기록됐다는 것이다(9.12 지진백서). 이러한 것은 이희권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가 신고리5·6호기 소송에서 “규모 6.5=0.2g, 규모 7,0=0.3g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 이유는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 하더라도 진원의 깊이, 진원에서의 거리, 지질 조건 및 지질 구조 등 피해지역의 지질, 지진파의 성질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피해지역에서 최대지반가속도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한 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진이 원전의 안전을 어떻게 위협할까?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다음 네 가지를 경우를 제시했다. 첫째, 배관설비가 지진으로 손상돼 냉각수 공급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배관들은 장기간 고압, 고열, 핵분열에 의한 중성자 조사로 인해 조직이 약해지고 부식도 진행되어 노후화될수록 배관의 두께가 얇아지고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지진으로 송전탑이 넘어져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등 원전에 전기를 공급하는 송·변전망, 이동형 비상전원설비 등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외부 송전선로의 내진설계 기준은 0.15g에 불과하다. 원전의 케이블(전선) 길이는 신고리3·4호기의 경우 7300km에 이른다. 셋째, 지진해일은 원전시설을 침수시켜 전기시설, 냉각수 공급시설 등이 작동 불능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진은 가스설비나 비상디젤발전기 등의 가동에 필요한 유류저장소 손상 등을 통해 화재 유발 가능성이 있다. 넷째, 지진은 원전 주변 도로 파괴를 통해 설비 이동을 방해해 외부전원 복구를 방해할 수 있다. 비상디젤발전기와 이동형 전원공급설비 등 비상냉각시스템의 정상적인 가동에 필요한 설비가 고장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또 신고리5·6호기 허가 때 지질, 지진 조사를 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이 원전부지 일대에 연대를 측정한 것은 2001년이며, 2005년 신고리1·2호기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PSAR)의 지질, 지진 부분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신고리5·6호기 PSAR의 지질, 지진 부분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PSAR는 원전 건설허가 신청시 제출하는 문서들 중 하나로 원전의 안전성을 심사하는 가장 중요한 서류라는 것이다.
원전의 건설허가기준을 규정한 『원자력안전법』 제11조에 따른 『원자로시설 등의 기술기준에 관한 규칙』 제4조 제1항은 원전은 지진 또는 지각의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인정되는 곳에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원자로시설 부지의 지질 및 지진에 관한 조사평가지침』은 원전 부지의 지질 및 지진에 관한 조사, 평가와 관련하여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규정인 ‘10CFR100 부록A’를 준용하고, 원전부지 조사에 관하여 NRC 규정인 ‘RG 1.132’를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김 변호사는 신고리5·6호기 부지 ‘비학1 추정단층’에 대해서 시추조사를 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림 1>은 신고리5,6호기 원자로가 점으로 표시되어 있고, 그 옆을 지나는 빨간색 점선 A가 비학1 추정단층이다. 검은색 실선 바깥 원이 원자로 반경 1km이고, 비학1 추정단층의 길이는 1.5km 이상이다. 신고리5·6호기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에서는 심도 50m 이하에 30~45m의 폭을 갖고 북동-남서 방향으로 연장되고 있는 지질구조선(단층)으로 판단되는 파쇄대가 원전 부지를 지나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PSAR 129~132쪽).
비학1 추정단층의 길이가 1.5km 이상인데 이런 길이의 파쇄대는 지진이 아니면 형성될 수 없기에 지하 50m에서 발견된 비학1 지질구조선(단층으로 의심되는 파쇄대)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상 단층 여부 및 구체적인 지질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시추조사를 하여야 했다. 그런데 신고리5,6호기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에는 비학1·2 지질구조선에 대하여서는 4개 지점에 1~3m 깊이로 트렌치 조사만을 했다고 돼 있다. 지하 50m 이하에 있는 파쇄대에 대하여 1~3m 깊이만 파보는 트렌치 조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희권 교수는 트렌치 조사로는 단층이냐 아니냐 판단될 정도로 깊이 파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이 되지 않은 것이고 시추조사를 통하여 단층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비학1 추정단층이 활동성 단층으로 확인되면 지표단층운동을 일으킬 가능성으로 인하여 신고리5·6호기의 입지 자체가 불가할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사안으로 원안위와 한수원은 지금이라도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부지 반경 8km 이내 단층 조사와 관련한 위법 문제를 폭로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연구결과 폭 4km, 길이 8~9km의 단층지역인 일광단층이 연안으로 진행한 연장선에 붙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그림 2).
이 일광단층의 단층지역은 4기 단층활동으로 활성단층임이 확인됐다. 일광단층은 신고리5·6호기 부지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을 기준으로 5km 정도 떨어져 있으므로 고리원전 전체 부지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층이다(한국해양과학기술원, ‘고해상 탄성파 탐사를 이용한 한반도 연안의 신기 지진활동 분석’, 2015. 2. 28). 그런데 신고리5·6호기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에서 일광단층에 대해 트렌치 조사가 유효하게 이루어진 지점은 2곳이며, ESR 연대측정은 장안읍 좌동리 1곳과 도야마을 2곳을 합한 3곳에 불과하다. 일광단층에 대한 신고리5·6호기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의 조사결과는 매우 미흡하거나 부실해 반드시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광단층을 비롯해 지적된 단층들에서 단층시료를 채취하여 연대를 측정하는 조사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부록A’의 활동성단층 조사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안전정지지진 결정 시 역사지진을 배제한 것 또한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원자로시설 등의 기술기준에 관한 규칙 제13조 ②항에는 안전에 중요한 구조물·계통 및 기기에 대한 설계기준에 고려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해당 부지 및 인근 지역에서의 역사적 기록을 고려할 때 가장 심한 자연현상과 외부 인위적 사건’이다. 기상청의 역사지진 목록인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2년~1904년)」(2012)에 따르면 삼국사기 등 역사문헌에 기록된 2,161회의 지진 중 진도Ⅴ이상의 지진이 440회(20.4%)가 있었고 인명피해나 건물 파괴가 일어나는 진도Ⅷ 내지 Ⅸ의 지진 역시 15회나 기록돼 있다. 역사문헌 지진 중 가장 피해가 큰 지진은 신라 혜공왕 15년(779년) 3월 발생한 경주지진으로 진도Ⅷ 내지 Ⅸ(규모 6.7 정도)의 지진으로 가옥이 무너지고 사망자가 100여명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 인조 21년(1634년) 7월 울산지진의 경우 성벽이 무너지고 큰 파도가 육지로 나왔다가 되돌아가는 쓰나미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규모 7.0 추청). 기상청이 공식 발간한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2년~1904년)」은 ‘부록A’에 규정한 역사지진 목록에 해당함에도 신고리5·6호기 예비안전성분석에서 이같은 역사지진이 배제되었다고 폭로했다. 따라서 김 변호사는 신고리5·6호기 부지 최대지반가속도는 1643년 울산지진(규모 7.0)을 기준으로 현재의 0.3g가 아닌 0.83g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날 발표에서 “비록 이러한 문제제기가 신고리5·6호기 소송에서는 불행하게도 건설허가처분의 위법사유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근거가 있는 만큼 정부와 한수원은 원전수명연장 추진에 앞서 지금이라도 철저한 조사를 하여 고리원전 일대의 대규모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비를 하여야 할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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