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사와 비교 어렵게 해라” 5G 중간요금제, 시작부터 엉망인 이유
복잡한 부가조건 붙여 경쟁사 요금비교 봉쇄
‘매출 감소 영향 최소화’ ‘생색내기 좋게’ 설계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엘지유플러스(LGU+)가 각각 지난 3월 말과 4월 초 ‘5세대(5G) 이동통신 중간요금제’(이하 중간요금제)를 내놨을 때 ‘조삼모사’, ‘눈속임’, ‘사기’ 등의 평가가 있었다. 지난 26일 케이티(KT) 요금제까지 공개되자, 이번에는 ‘담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케이티 새 요금제 공개 직후 소비자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서울 광화문 케이티 광화문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동통신 3사 중간요금제는 담합이자, 소비자 기만 행위”라고 짚었다. 관련 기사에도 담합을 지적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다.
이동통신 3사의 중간요금제 출시는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 ‘작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을 주문했고, 이동통신 3사가 이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중간요금제가 줄줄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같은 명분으로 중간요금제 출시를 독려했지만, 이통사들은 들은 척도 안했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덕에 중간요금제가 출시될 수 있었으니 박수 받는 게 마땅한데, 이용자·누리꾼·소비자단체들의 평가는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쪽에 실리고 있다.
물론 담합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사전 모의 등 공정거래법 등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과기정통부 신고 절차를 거친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용자와 소비자단체들의 눈에는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복수 이동통신사 요금제 설계 담당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통신 요금제 설계의 첫번째 원칙이 ‘경쟁 사업자 요금제와 비교되지 않게 하라’라고 한다. 이용자가 이동통신 3사 요금제 가운데 어느 사업자 것이 더 싼 지를 비교하거나 알 수 없도록 요금제를 설계·배치하고, 이를 위해 복잡한 부대 조건을 단다는 것이다. 한 이통사 담당자는 “각 사업자별로 요금제를 세분화하면 수백가지에 이른다. 비교가 안되게 하려고 장군멍군 식으로 요금제를 내놓다 보니 늘어난 것이다. 사업자별로 어디가 비싸고 싼 지는 사실 통신사 요금 담당자와 전문가들도 비교 불가능하다. 이용자들과 접점에 있는 고객센터와 유통점 직원들도 회사가 마케팅 차원에서 앞세우는 것만 고객한테 소개할 뿐이다. 수백가지 가운데 대부분은 사장된 상태로 두면서, 가입자도 없으면서 요금제 비교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두번째 원칙은 매출 극대화(매출 영향 최소화), 세번째는 정부 정책당국자들이 생색을 내는데 필요한 명분과 논리 제공이란다. 이른바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면서, 요금인하 생색은 침소봉대될 수 있도록 모양새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동통신 3사가 이번에 대통령의 직접 주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중간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월 정액요금 시작점을 높게 잡아 매출 영향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특정 연령대 대상 요금제의 기본 제공 데이터량을 늘린 뒤 생색내기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과기정통부는 각 사업자들이 요금제를 공개할 때마다 ‘통신비 부담완화’란 어깨 제목을 단 보도자료를 따로 내는 방식으로 이통사들의 생색내기에 힘을 싣는다.
기업 마케팅 경쟁은 소비자 편익 향상을 지향해야 맞다. 하지만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번 중간요금제 출시 때도 그랬고, 과거 이용약관 개정 때도 자주 “소비자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지적을 받고는 했다. 통신사 임원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한겨레>에 “이동통신 3사의 시장 독과점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과기정통부가 경쟁 촉진을 통한 이용자 편익 증진보다 ‘관리경쟁’ 정책을 펴온 결과, 이용자 편익이 아닌 사업자 수익 우선 보호 함정에 빠진 꼴이다”라고 짚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3조(역무의 제공 의무 등)는 이동통신 3사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③항에 ‘전기통신역무 요금(통신요금)은 전기통신사업이 원활하게 발전할 수 있고 이용자가 편리하고 다양한 전기통신역무를 공평하고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용자들과 소비자단체들은 “현실은 이 법 조항과 거리가 멀다”고 하소연한다.
이동통신 3사는 지난해 4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탈통신’을 외치며 통신망 고도화 투자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한 때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던 통신망 품질은 자꾸 뒤로 밀리고 있고,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반경 역시 ‘계란 프라이 위 노른자’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이 원활하게 발전할 수 있고’란 법 취지와 한참 동떨어진 모습이다. 게다가 이동통신 3사가 내놓은 중간요금제를 놓고 눈속임·조삼모사·사기·담합 평가가 많다. 장삼이사 눈으로 봐도, ‘이용자가 편리하고 다양한 전기통신역무를 공평하고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법 조항 취지와 맞지 않다.
개선될 가능성도 잘 안 보인다. 이동통신 3사는 중간요금제에 대한 이용자들과 소비자단체 쪽 반응에 한결같이 “소비자들은 늘 불만을 제기하지 않냐. 좀 지나면 가라앉을 거다”라고 일축한다. 과기정통부 당국자는 “이통사들이 정부 말을 안듣는다. 요금 인가제 시절에는 그래도 정부가 힘을 좀 썼는데, 요즘은 이통사에 구걸을 해야 하는 처지다”라고 털어놓는다. 이용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면, 이통사들은 이용자들의 ‘욕심’을 탓하고, 정부는 무기력함을 앞세워 이통사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상황이 무한 반복되는 모습이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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