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증권발 주가 폭락…”금융위 조사 지체로 정보 새 나가 사태 커져"
"①CFD로 주가 급등→ ②수사 정보 취득
→ ③대량 매도→ ④주가 폭락" 분석 지배적
"현재로선 유명인 혐의 특정 어려워"
금융위원회의 늑장 대응이 프랑스계 증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는 평소 주가 변동성이 크지 않던 8개 종목(다올투자증권·다우데이타·대성홀딩스·삼천리·서울가스·선광·세방·하림지주)이 지난해부터 급등했다가 지난달 24일부터 급락하면서 8조원에 가까운 시가총액이 증발한 사건이다. 연예계 재계 등 유명인사들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CFD로 주가 급등→수사 정보 취득→대량 매도→주가 폭락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금융위원회가 주가조작 제보를 받은 게 4월 초순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초기에 금융감독원 및 남부지검과 공조하지 않고 단독조사를 했다고 한다”며 “제보 후에 조사 본격 착수까지 시간이 지체되면서 당국의 움직임을 눈치 챈 주가조작 세력들이 물량 처분에 나서면서 주가 폭락 사태가 빚어진 게 확실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금융당국 수사 관련) 정보가 샌 것은 분명하다”며 “ 그렇지 않다면 이번 사태가 이렇게 갑자기 급격하게 터져서 피해가 일시에 몰리지는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위원회의 늑장 대응 여부, 귀책사유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상 금융위는 중대한 사안의 경우 금융감독원과 공동 조사를 벌인 뒤 패스트트랙(신속 수사전환)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보 자료들을 쥐고 있다가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금감원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는 주가조작 세력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하는 파생 금융 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Contract for Difference)를 활용해 주가를 띄웠다가 금융 당국이 조사에 나설 것이란 정보를 듣고 주식을 대량으로 팔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폭락 직전인 지난달 20일 시간외매매(블록릭)로 다우데이타 주식 140만 주(3.65%)를 주당 4만 3,245원에 처분해 605억 원을 확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영민 서울가스 회장도 같은 달 17일 시간외매매로 주당 45만6,950원에 10만 주(지분 2%)를 팔았다고 공시했다. 매도 금액은 456억 원에 이른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대표적 주가조작 사건이었던 지난 2007년 루보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조회공시요구나 이상 급등 종목 지정 등 주가조작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응과 함께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했지만 동일한 수법의 주가조작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번 사태는 한국거래소 금감원 금융위가 허수아비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신뢰 주는 사람 다수 존재했을 것... 아직 혐의 특정 어려워"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의심 받는 투자업체의 라덕연(42) 대표는 투자 차익을 미끼로 1,000명 넘는 투자자들로부터 1조원 넘게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점조직 형식으로 투자자를 유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유명인들을 동원하고 의사 연예인 재계 인사 등 믿을 만한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해도 괜찮겠네’ 그렇게 해서 따라가다 보니까 범죄행위에 부지불식간에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며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한두 명이 아니라 다수가 존재했고 활동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대규모로 피해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에서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 점조직에 의해서 그들끼리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그런 행태가 분명히 여러 군데에서 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고 덧붙였다.
임창정씨 등 이 사태에 연루된 연예인들이 피해자인지 주가조작 가담자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그게 조금 애매한데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는 조사를 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개개인에 대한 혐의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긴 어렵다고 본다”며 “다들 안타까운 사연도 있을 것이고 또 억울하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빚내서 투자하는 CFD "아예 없애야"
또 차액결제거래(CFD)라는 파생금융상품이 사태를 키운 핵심이라고 이 대표는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주가조작 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정 주가 조작으로 인해 이렇게 8개 종목이 무더기 하한가로 직행한 것은 아마도 사상 초유의 일이지 싶다”며 “이번 폭락 원인은 차액결제거래를 뜻하는 CFD상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CFD는 투자자가 낸 돈의 일정 비율만큼 증권사가 빌려줘서 더 많은 주식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빚투(빚 내서 투자)’ 상품이다. 그는 “10만 원짜리 주식을 4만 원만 내고 6만 원은 증권사에서 빌려서 투자한 뒤에 주가가 오르면 수익을 가져가는, 즉 자기 자금에 2.5배 이상 투자하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런데 CFD는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이 제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반대매매가 일어날 경우 추가로 돈을 물어내야 하는 구조”라며 “현재 주가가 하락하는 바람에 많은 투자자들이 원금 전액 손실은 물론이고 졸지에 추가로 증권사에 거액의 빚을 진 사례가 속출한 상태다. CFD는 정말 문제가 많은 상품”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CFD 투자 요건을 대폭 완화한 것도 화를 키웠다. 정부는 금융투자상품 잔고 기준 ‘5억원 이상’이던 CFD 전문투자자 요건을 2019년11월 ‘5,000만원 이상’으로 10분의 1로 대폭 낮췄다. 이 대표는 “요즘 5,000만원 가진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느냐”며 “이렇게 문턱이 낮아진 이후 3년 만에 CFD 투자자가 8배나 증가했다. 부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너무나 섣부른 규제 완화였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CFD가 사태의 진원지라는 지적에 증권사들은 CFD 신규가입과 신규 매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금융 당국이 CFD의 장단점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그래서 단점과 폐해를 없앤 다음에 다시 도입하든가 아니면 없애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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