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트리플 포스트’는 완성될 수 있을까?
농구는 높이의 싸움이다. 골대에서 가까울수록 슛 성공률도 올라가고 리바운드, 블록슛 등 승패에 영향을 끼치는 대부분 영역에서 유리해진다.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키 큰 선수로 라인업을 도배하면 강해질듯 싶지만 실제 경기는 온라임 게임과는 다르다. 각 포지션 별로 밸런스가 맞고 그로인해 시너지가 발생해야만 승리를 가져갈 공산이 높아진다.
높이의 스포츠임은 맞지만 키큰 선수에 더해 빠른 선수, 슛 좋은 선수, 패스잘하는 선수 등 골고루 필요하다. 빅맨급으로 키가 크면서도 그러한 능력치를 두루 갖췄다면 금상첨화겠으나 현실적으로 그런 사기 캐릭터는 전 세계 어떤 리그에서도 찾아보기 쉽지않다.
높이를 중심하는 국내 리그에서는 많은 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스템 중 하나는 ‘트윈타워’다. 4~5번 포지션에서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주면 나머지 1~3번은 상대적으로 수월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장신자가 귀한 현실인데다 외국인선수 1인 출전제에서 트윈타워 구성은 결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포스트에서 활약할 장신 외국인선수는 무조건 1명 정도 함께 가지만 호흡을 함께 맞출 주전급 토종 빅맨이 귀하다. 역대로 따져봐도 여기에 해당되는 선수는 서장훈, 김주성, 김종규, 오세근, 이승현, 하윤기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신인드래프트시에도 주전급 혹은 성장가능성있는 빅맨자원이 선호되는 이유다.
주전급 토종빅맨이 있어도 호흡이 잘 맞는 트윈타워를 구성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과거 국가대표센터 서장훈(49‧207cm)을 보유했던 팀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딜레마가 대표적 예다. 서장훈은 외국인선수급 공격력을 자랑하는 흔치않은 빅맨이었다. 수비등 궂은 일, 팀 플레이보다는 본인이 볼을 독점하면서 슈팅을 통해 공격하는 플레이를 선호했다.
대부분 공격 역시 주고받는 플레이에서 나오기보다는 혼자 이리저리 드리블을 치다가 던지는 미들슛, 3점슛 위주인지라 호불호가 갈렸다. 자신에게 패스를 주지않으면 경기중에도 후배들에게 서슴없이 삿대질을 하면서 호통을 치는가하면, 경기에서 이기고있어도 자신의 그날 개인 기록이 좋지않으면 덕아웃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일관해 팀 분위기를 흐리기 일쑤였다.
경기가 끝난후 기록지를 확인한후 자신이 계산한 것과 다르다고 생각되면 종종 확인 작업에 들어가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일반적인 선수들같은 경우 경기에 몰두하다보면 자신의 파울이 몇개인지 작전타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서장훈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기록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서장훈과 함께하는 외국선수는 주인공 본능이 너무 강하면 곤란했다. 서장훈의 성향상 본인 중심으로 맞춰줘야 했다. 에릭 마틴처럼 궂은일 위주로 플레이하던가 다재다능함을 살려 전방위로 서장훈은 살려주는 재키 존스같은 플레이가 요구됐다. 때문에 서장훈 보유팀은 외국선수를 뽑을 때 더 많은 고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국내리그에서 서장훈과 같은 빅맨의 가치는 엄청난지라 팀을 바꾸는 경우는 흔치않다. 신인시절 자신을 뽑아준 팀에서 프랜차이즈로 남은 김주성, 하승진, 오세근 등이 대표적이다. 아쉽게도 서장훈은 많은 팀을 옮겨다녔는데 여기에는 어려운 사용법도 큰 이유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뛰어난 토종 빅맨이 있다고 해도 팀 상황에 따라 트윈타워가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현재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놓고 경합 중인 안양 KGC와 서울 SK가 그렇다. 양팀은 오세근(35‧199.8cm)과 최부경(33‧200cm)이라는 주전급 빅맨이 있다. 4~5번 포지션의 사이즈만 놓고보면 큰틀에서는 트윈타워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정통적인 의미에서의 그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높이로 상대를 압박하는 조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수비시에는 상대 높이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가운데 공격력이 좋은 외국인선수의 장점을 살리는 패턴이 돋보인다. SK의 자밀 워니(29‧199cm)는 공간을 넓게쓰며 포스트 인근에서 위력적인 훅슛과 플로터를 구사하며 KGC 오마리 스펠맨(25‧206cm)은 한술 더떠 외곽슛이 주무기중 하나다.
볼없는 움직임이 좋은 최부경은 워니에게 수비가 집중되었을시 빈틈을 찾아들어가 받아먹는 플레이에 능하다. 테크니션 빅맨 오세근은 스펠맨이 상대 장신 외국인선수를 외곽으로 끌고가면 비어있는 포스트에서 토종 선수들을 상대하며 우위를 가져간다.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오세근을 감당할 수 있는 토종 선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렇듯 트윈타워도 어려울진데 하물며 ‘트리플 포스트’의 난이도는 더욱 높을 수 밖에 없다. 트리플 포스트하면 지금도 언급되는 것 중 하나는 안양 KGC 전신 SBS의 데니스 에드워즈(51‧192cm), 표필상(55‧200cm), 리온 데릭스(48‧204cm) 조합이다. 주전급 센터로 아쉬운 표필상이 끼어있는 것이 인상적인 라인업이었다.
표필상같은 경우 듬직한 체격과 파워외에는 당시에도 여러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을 지적받았던 빅맨이기 때문이다. 당시 SBS의 시스템은 특별히 준비되었다기보다는 시즌중 급조되었는데 의외로 효과를 보게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라인업이 연달아 실패하자 김인건 감독은 고심이 커질 수 밖에 없었고 그런 가운데 두 외국인선수를 살릴 최적의 수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표필상 주전카드를 꺼낸다.
데릭스는 원조 '포인트 센터'로 불렸을만큼 패싱센스가 좋은 빅맨이었으며 에드워즈같은 경우 국내에서는 4번으로 뛰었지만 빅맨보다는 그냥 공격력이 뛰어난 포워드라고 보는게 맞았다. 외곽슛이 안좋았던 관계로 전통적인 윙플레이어하고는 거리가 살짝있는 '닥돌형' 3.5번쯤 되는 선수로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포지션을 구분하기 애매한 스타일이었다.
어쨌거나 둘은 골밑수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포스트 인근에서의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다. 데릭스는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인해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으며 에드워즈는 플레이 스타일은 물론 성향 등에서도 골밑에서 투쟁한다는 느낌은 주지않았다. 둘다 탄력은 좋아 리바운드, 블록슛 등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박스아웃, 스크린, 상대 빅맨에 대한 '몸빵수비(?)'가 좋지못했다.
공교롭게도 표필상은 둘이 약했던 몸싸움에 특화된 센터였고 시험삼아 가져가본 조합이 예상외로 좋은 호흡을 보이면서 쭈욱 가게져가게된 케이스다. 이후 트리플 포스트라고 말할만한 조합은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 높이 농구로 유명한 DB가 김주성(44‧205cm)이 건재한 시절 외국인 빅맨에 더해 아비 스토리(46‧192.4cm)나 윤호영(38‧195.6cm) 등 3.5번형 포워드들과 함께한 경우가 가장 근접했다고 할 수 있다.
DB에 강상재(29‧200cm)가 영입된 순간 많은 팬들은 원주 산성의 재건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않았다. 기존 김종규(32‧206.3cm)와 장신 외국선수에 더해 그야말로 어느 팀도 범접못할 최고의 높이가 가능할 듯 했기 때문이다. 트윈타워를 넘어 트리플타워도 예상됐다. 김종규는 붙박이 국가대표 센터이며 강상재 또한 한팀의 주전급이자 언제 국가대표팀에 합류해도 이상하지않을 선수였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구성원들의 신장이 좋다고 뚝딱 조합이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높이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단점은 최소화할 수 있어야 트리플 포스트가 가능하다. 이를 입증하듯 아직까지 DB가 원했던 트리플 포스트는 완성되지않고 있다. 강상재가 슈팅이 좋은 스트레치형 빅맨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능할 듯도 싶었지만 그 것 외에는 크게 잘맞는 부분이 없는 상황이다. 슛은 그 까다롭다는 서장훈도 강상재 이상으로 좋았다.
일단 트리플 포스트 시스템안에서는 강상재가 3번으로 가는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강상재는 스몰포워드는 익숙치않다는 사실이다. 빅맨으로 뛰어온 기간이 많은데다 무엇보다 발이 빠르지않다. 운동능력과 기동력이 장점으로 꼽혔던 김종규 또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러한 부분에서 하향세가 뚜렷하다.
한창때 김주성급 스피드와 수비가담능력에 데릭스나 크리스 윌리엄스 뺨치는 리딩, 패싱능력을 겸비한 장신 외국인선수가 중심을 잡아주지않는한 동선정리 및 장단점 활용이 쉽지않아보인다. 물론 그런 선수는 매우 드물거니와 있다해도 국내리그에서 뛸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다.
그렇다고 김종규와 장신 외국인선수를 메인으로하고 강상재를 백업으로 하기에는 아쉽다. 강상재 또한 한팀의 주전급 전력이기 때문이다. 강상재가 선발로 함께 나오는 것과 벤치에서 출격하는 것은 상대에게 주는 위압감 자체가 다르다. 결국 강상재를 안고간다는 전제하에 이를 모두 활용한 조합과 전술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전임 이상범 감독 또한 이문제로 골머리를 썪었다.
김주성 감독은 현역 시절 높이 농구에 가장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어떤 유형의 외국인선수와도 기본 이상의 호흡을 맞출만큼 만능 치트키로 불렸다. 때문에 지도자로서도 자신이 가장 잘했던 쪽으로 팀을 꾸려나가고 싶을 공산이 크다. 신인급 선수도 아니고 강상재, 김종규는 플레이 스타일이 어느정도 고정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감독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가지다.
강상재, 김종규 둘중 한명을 포기하던가 아님 외국인선수를 최대한 거기에 맞추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강상재, 김종규를 4, 5번으로 쓰고 공수에서 내외곽을 부지런히 오갈 수 있는 장신 스윙맨 형태의 외국인선수를 파트너로 내세우는 그림도 연상된다. 외곽슛을 갖춘 에런 해인즈(42‧199cm)나 좀더 날렵해진 버전의 오마리 스펠맨(26‧206cm)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DB는 한때 리그를 대표하던 강팀중 하나였지만 최근 들어서 연일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현역 시절 팀을 명문의 반열에 올려놓은 김주성이 지도자로서도 업적을 이어갈 수 있을지…, 원주의 전설이 펼쳐나갈 고공 농구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이청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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