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너 혼자 그런다고 뭐가 바뀌니"에 대한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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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衣食住). 옷과 음식과 집.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 세 가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옷, 음식, 집을 생산하고 조달하는 방법은 각각 많이 다릅니다. 가장 마지막 항목인 집부터 생각해 볼까요? 집은 세 가지 가운데 생산과 이용이 가장 지역적입니다. 기본적으로 옮길 수 없는 재산이란 뜻의 부동산(不動産)이다 보니, 당연한 일입니다. 부동산 투자나 거래를 할 때도 돈과 사람이 오갈 뿐 집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음식은 집보다는 이동이 잦습니다. 다만 품목에 따라 신선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상품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큰 제약입니다. 신선도를 유지하며 음식을 옮기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물 건너온 먹을거리는 비싸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신토불이"하는 게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만, 돈을 아끼는 방법일 때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옷은 어떤가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생산지를 확인해 보시죠. 한국에서 생산한 옷보다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옷을 입고 계는 분이 더 많을 겁니다. 옷의 원단이나 원료의 산지까지 따지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브랜드는 국산 브랜드여도 옷을 어디서 만들었느냐를 따져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옷은 집보다 옮기기 훨씬 쉽고, 음식처럼 상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히 옷은 의식주 가운데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공급망이 가장 글로벌화된 항목입니다. 수입한 식재료는 보통 국산보다 비싼데, 옷은 외국에서 만든 옷이 보통 더 쌉니다. 값싸고 편리하니, 그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요?
[ https://premium.sbs.co.kr/article/7s58CxOAZq ]
의류 산업 공급망 곳곳에 만연한 강제 노역과 인권 유린의 실상을 폭로해 온 E. 벤자민 스키너는 위 칼럼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30년 전보다도 훨씬 싼 값에 옷을 살 수 있는 건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심한 경우 목숨까지 앗아가며 유지해 온 현실이므로, 심각한 문제라고 스키너는 지적합니다.
지난 24일은 방글라데시에서 라나 플라자라는 의류 공장 건물이 무너지면서 1천 명 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 건물에 심각한 균열이 보였고, 평소와 달리 건물이 이상하게 떨리고 흔들리는 걸 느낀 노동자들이 이를 사측에 알렸지만, 사측이 이를 철저히 묵살한 사실이 사고 이후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공분했습니다.
대리인 문제가 더 두드러지는 글로벌 공급망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주문을 처리하고 옷을 만들어 주는 나라의 공장에 물건을 발주하는 의류 브랜드들은 약속한 기일 안에 주문한 제품을 받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또 하청 업체는 발주하는 브랜드에서 원만히 돈만 받으면 됩니다. 전체 산업이 값싼 노동력에 기대고 있다 보니, 인건비가 오르는 것만큼은 노동자를 제외한 모두가 원치 않습니다.
정부의 규제와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강제 노역, 부당노동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독립적인 감사업체를 선정해 조사를 진행하는데, 누구도 그 비용을 부담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품을 주문한 브랜드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감사업체를 선정하는 비용은 관행상 의류 브랜드가 아닌 하청업체가 냅니다. 진상을 밝혀내고 진짜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문제를 적당히 덮어버리는 쪽이 여러모로 이득인 하청업체의 돈을 받는 감사업체(대리인)가 제대로 감사를 진행할 가능성은 매우 작습니다.
집이나 음식과 한 번 더 비교해 볼까요? 집을 잘못 지어서 문제가 생기면, 집을 지은 건설업체가 책임을 지면 됩니다. 음식도 문제가 생겼을 때 공급망 안에서 원인을 찾으면 됩니다. 먹을거리 공급망은 의류와 비교하면 지역 사회나 국가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문제의 원인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윤리적인 소비"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대리인 문제의 관점에서 의류 산업과 공급망의 구조를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청업체인 의류 공장에서 강제 노역 문제가 불거진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이때 공장이 노동 조건이나 환경 관련 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감사 비용을 하청업체 대신 원청업체나 주문을 낸 브랜드가 직접 부담하면 됩니다. 그러면 대리인인 감사업체는 비용을 대는 주인, 즉 브랜드의 요구에 따라 문제를 더 철저히 조사하고 노동법을 잘 지키고 있는 업체를 실제로 가려낼 유인이 생깁니다.
문제는 이 비용을 의류 브랜드가 부담하라고 누가 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개별 규제 당국이 엄연히 다른 나라 기업인 의류 브랜드에 특정 비용을 대라고 명령해 봤자 소용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키너는 의류 브랜드에 "행동에 나설 명분과 실리"를 다 챙겨주는 방법으로 개별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언급한 겁니다.
라나 플라자 참사가 난 직후 구조적인 문제의 원흉으로 꼽힌 패스트 패션 트렌드를 향한 규탄이 거세게 일자, 패션 브랜드들은 부랴부랴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안전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후 노동 환경은 일부 나아졌지만, 의류 공급망의 기본적인 생리는 크게 바뀌지 않았죠.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건물주와 공장주를 향해서는 비난과 규탄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들은 이내 값싸고 편리한 옷을 다시 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윤리적인 소비"가 허상이라면?
그런데 칼럼의 댓글만 봐도 일리 있는 반론이 눈에 띕니다. 바로 사람들이 설문조사에서 어떤 상황에 어떻게 행동하겠다고 내놓는 답과 실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하는 행동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 https://www.nytimes.com/2023/04/24/opinion/fast-fashion-apparel-worker-conditions-rana-plaza.html#commentsContainer ]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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