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유일한 남미 친구 지켰다”…파라과이 대선 결과에 ‘일단’ 안도

김희원 2023. 5. 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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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대만' 집권당 후보, 큰 득표율 차이로 당선
'경제통' 당선인 외교에선 “중국보다 대만” 약속
대만, 환영했지만…中공세에 ‘단교’ 이슈 지속 전망

‘친중’(親中)과 ‘친 대만’의 대결로 관심을 끌었던 파라과이 대선에서 ‘친 대만’ 성향인 우파 집권당 산티아고 페냐(44) 후보가 승리했다. 70년간 대권을 잡아온 콜로라도당은 집권을 다시 연장하게 됐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수교를 맺고 있는 파라과이의 대선 결과에 촉각을 세웠던 대만은 페냐 후보의 당선을 환영했다.

◆70년 집권 벽 높았다…야권 표심 결집 ‘실패’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치러진 파라과이 대선에서 콜로라도당(공화국민연합당·ANR) 소속 페냐 후보가 43.07%를 득표해(개표율 92.24% 기준), 27.49%를 얻은 중도좌파 성향 에프라인 알레그레(60) 후보를 크게 따돌리며 당선됐다.

페냐 당선인은 이날 오후 7시 35분쯤 아순시온 당사에서 진행한 당선 수락 연설에서 “콜로라도당의 위대한 승리”라며 “여러분과 함께 조국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30일(현지시간) 치러진 파라과이 대선 및 총선에서 파라과이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집권 콜로라도당의 산티아고 페나 후보가 수도 아순시온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페냐 당선인은 개표 초반부터 앞서 나갔다. 10%포인트 이상 차이를 보이며 여유롭게 선두를 유지한 페냐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를 벌리며 승기를 굳혔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세 초·중반 여론조사에서 친중 좌파 성향의 야당 후보인 알레그레가 1위를 차지하며 지지자들로부터 ‘정권교체’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알레그레 후보는 유세 막판 야권 대분열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유력 야당들의 단일화 후보로 나선 알레그레는 자신의 부패 척결 의지를 밝히기 위해 수시로 여당을 마피아에 비유하며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발언들이 일부 야당 조직원과 중도파에 독으로 작용해 표심 결집에 실패한 것으로 분석된다.

페냐의 당선으로 콜로라도당은 장기 집권을 이어간다. 콜로라도당은 1947년 이후 4년(2008∼2012년)을 제외하고 71년간 대권을 지켜 왔다.

중간에 정권 교체를 이룬 인물은 중도 좌파 성향의 페르난도 루고(71) 전 대통령이었는데, 그조차 당시 기득권층 주도로 중도에 탄핵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남미 파라과이의 친중 성향 야당인 정통급진자유당(PLRA·급진자유당) 소속 에프라인 알레그레(60) 대선 후보가 지난 4월24일(현지시간) 수도 아순시온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IMF 출신 ‘경제통’ 페냐, “중국보다 대만”

페냐 당선인은 국가 예산을 책임졌던 ‘경제통’이다.

1978년 11월 아순시온에서 태어난 그는 파라과이 최고 명문인 아순시온가톨릭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파라과이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했다.

페냐의 정치 이력은 17세 때 정통급진자유당(PLRA)에 입당한 것으로 시작한다.

PLRA는 파라과이 대표적 야당인데, 페냐는 2016년 10월 전격적으로 콜로라도당을 당적을 옮기면서 비판을 받았다.

페냐는 당시 “이 결정은 저와 제 가족 모두 깊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내렸다”며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당에 소속됐다는 사실에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월30일(현지시간) 당선 확정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의 이적은 현 콜로라도당 대표인 오라시오 카르테스 전 대통령(2013∼2018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페냐는 카르테스라는 정치적 거물의 전폭적 지원 속에 입지를 넓혔다.

2017년 당내 대선 예비선거에선 마리오아브도 베니테스 현 대통령에게 밀렸지만, 이후 지지기반을 확보하며 몸집을 불렸다.

이후 카르테스파와 베니테스파로 나뉜 콜로라도당 파벌 다툼 속에서 베니테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으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페냐는 오는 8월 15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임기는 5년이다.

그는 급격한 변화 대신 세밀한 다듬기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외교 정책과 관련해 미국·대만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남미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국과 손 잡기보다는 대만과의 현 관계를 증진하는 게 우선이라는 뜻이다.

페냐는 지난 1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워싱턴(미국), 예루살렘(이스라엘), 대만이라는 지정학적 관계를 계속 안고 갈 것”이라며 “이 삼각형은 파라과이 발전을 위한 구도”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지난 4월30일(현지시간) 파라과이 람바레에 마련된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대선·총선 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만과 관계 유지” 약속했지만…앞으로는?

이번 파라과이 대선의 화두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대리전’이었다. ‘친중 성향’의 야당 후보 알레그레가 당선될 경우 대만과의 단교는 시간문제라는 국제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친 대만’ 성향의 집권당 후보가 승리하자 대만은 환영했다.

1일 대만 자유시보에 따르면 주파라과이 대만 대사관은 차이잉원 총통을 대신해 즉시 페냐 후보에 축하를 전하며 “성숙한 민주주의 자질을 보여주고 이번 대선을 성공적으로 마친 파라과이 국민에게 깊은 존경을 표한다”고 밝혔다. 대만 외교부는 파라과이와 생산적인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을 계속 강화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만 언론들은 “남미의 유일한 우방인 파라과이에서 ‘친 대만’ 후보가 승리했다”고 보도하며 “페냐 당선인은 후보 시절 대만과의 역사적 관계를 수호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고 거듭 상기시켰다.
파라과이 아순시온 주파라과이 대만 대사관 앞에 있는 대만과 파라과이 국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만은 일단 안도했지만 파라과이의 양안 외교관계 이슈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30일 중국시보 등 대만언론에 따르면 페르난도 마시 전 파라과이 산업통상부 및 재무부 수석 고문은 28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실이 개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파라과이는 중국 시장이 필요하다”면서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언젠가는 중국과 수교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라과이가 겪고 있는 국민의 삶의 질 저하, 재정 부족, 심각한 부패 등 3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마시 전 수석은 파라과이에 대한 대만의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없었으며 대만이 무상 원조한 공공건설자금은 파라과이에 실질적인 도움이 없는 ‘상징적 의미’만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황쿠이보 대만 정치대 외교학과 부교수는 “파라과이의 대만과 중국과의 교역액이 각각 2억달러와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로 큰 격차를 보임에 따라 단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대만은 2005~2014년까지 파라과이에 매년 400만 달러를 투자하고 1480만 달러(198억원)를 원조한 반면, 중국은 2005~2020년까지 1300억 달러(약 174조원)를 투자했다.

중국은 중남미 국가들에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지속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3월 온두라스, 2021년 니카라과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손을 잡았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서 대만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현재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전 세계 총 13곳이다. 중미 과테말라, 벨리즈, 아이티 등이 포함돼 있지만 남미로 범위를 좁히면 파라과이 한 곳 뿐이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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