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의 그녀' 독립기념관 5월의 독립운동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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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지를 올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1924년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졌던 의열단원 김지섭을 변호했고, 1926년 법정투쟁을 벌이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변론을 맡아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옥중에서 가네코 후미코가 사망하자 가매장된 그녀의 유해를 되찾는 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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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가네코 후미코,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함께
오는 31일까지 공훈 야외 전시
[천안=뉴시스]박우경 기자 =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지를 올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독립기념관은 오는 31일까지 야외 특별 전시장에서 이들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연다.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를 받다가 9세 때 한국의 고모부 집으로 보내졌다.
한국에서도 천대와 무관심 속에 자란 가네코 후미코는 1919년 3월 충북 청주군의 3·1운동을 목격하고 한국인의 처지에 깊이 공감했다. 일본으로 돌아와 1922년 박열과 만났으며 흑우회, 불령사 등의 아나키스트 단체에 참여해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글 등을 발표했다.
특히, 1926년 2월26일 대심원 1차 공판에서 박열과 함께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등 법정투쟁을 전개했으며 1926년 3월25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일제는 회유목적으로 형을 줄이는 은사령을 내렸지만 그녀는 문서를 찢어버리는 방식으로 저항했고 1926년 7월 옥중 사망했다. 정부는 그녀의 공훈을 기리어 2018년 애국장을 추서했다.
후세 다쓰지는 1879년 일본 미야기현에서 태어나 1899년 도쿄 메이지법률학교에 입학해 1903년 변호사가 됐다. 1919년 2·8독립선언으로 붙잡힌 재일 한인 유학생을 변호한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지지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재일 한인 학살의 진상을 조사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조사결과를 발표할 수 없었다.
1924년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졌던 의열단원 김지섭을 변호했고, 1926년 법정투쟁을 벌이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변론을 맡아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옥중에서 가네코 후미코가 사망하자 가매장된 그녀의 유해를 되찾는 데 역할을 했다. 이후 1926년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봉건 지주층을 상대로 한 전남 나주군 농민들의 토지반환 투쟁을 도와 한국 농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4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pacedust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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