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교의 시론]尹의 동맹 격상, 文의 종북 미련

2023. 5. 1. 11: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교 정치부장
워싱턴 선언은 균형 외교 종언
동북아 안보 새 시대로의 진입
文, 이념에 갇혀 종북친중 고집
尹, 핵우산 강화로 美에 밀착
북핵 위협과 미중 경쟁 속 결단
핵 주권 포기 비판은 어불성설

한국시간으로 4월 27일 발표된 워싱턴 선언은 균형외교의 종언을 알리는 포고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출범을 선포했다.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대만해협 평화·안정 및 인도·태평양지역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규탄했다. 일본을 의미하는 ‘유사 입장국’과의 협력도 약속했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렇게 미국 쪽으로 바짝 밀착한 적은 없었다. 한국은 북·중·러 전체주의 블록의 반대편에 섰다. 동북아 안보의 새 시대 진입이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판문점 선언 5주년 학술회의’가 열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서면 기념사에서 “판문점 선언은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평화의 이정표”라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중·러와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을 약속했다. 화기애애한 도보다리 회담 장면도 전 세계로 송출했다. 지금 판문점 선언은 휴지 조각이 됐고, 북한 핵무기는 실전 배치 단계까지 왔다. 아는지 모르는지 문 전 대통령은 “남과 북, 국제사회가 긴장 해소에 나서길 바란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진보 좌파 진영이 그렇듯, 문 전 대통령의 현실 외면은 놀라울 정도다. 경남 양산에서 그가 최근 문 연 평산책방 첫 개점 행사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저자인 정지아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작가는 장례식 조문객을 통해 실제로 빨치산 남부군 활동을 했던 아버지의 삶을 추적해 간다. 이념과 현실의 문제를 끈적한 남도 사투리와 세련된 구성으로 삶에 연결지으며 정치적 논쟁을 피하고 화해를 모색한다. 하지만 조국통일과 민족해방 외침을 잊지 못하는 사회주의자의 절절한 열망은 곳곳에 배어 있다. 문 전 대통령 의식의 중심에 뭐가 자리 잡고 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창원 간첩단 사건이 말해주듯 ‘혁명가’들이 곳곳에 건재하다. 한국은 중국의 눈치를 항상 봤다. 뼛속에 사대의 유전자가 박혀 있는지 중국 앞에만 가면 작아졌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은 큰 산, 우리는 작은 봉우리”라며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던가. 문 정권의 친중 노선은 초강대국 미국에 한국이 동맹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으로 호구 고객, ‘호갱’ 대접을 받는다는 불쾌감을 떨칠 수 없던 터였다. 한미동맹이 70년을 맞는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구소련은 망했어도 사회주의자는 패배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한국 외교의 판을 뒤집었다. 5박 7일 방미길에서 오랫동안 길들어져 뛰쳐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균형외교의 울타리를 부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출간을 앞둔 ‘대한민국 생존전략’에서 “미국은 한국이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건설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호소하지만, 패권 경쟁에 나선 강대국 틈에서 양쪽 모두와 좋은 관계를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역으로, 중국이 북핵 위기에 처한 한국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탈냉전을 끝내고 신냉전에 들어선 역사는 이제 한쪽 편에 서야 할 시점이라고 얘기한다. 그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워싱턴 선언은 요술램프에서 불쑥 튀어나오지 않았다.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라 한국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생존 방법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처럼 일각에서 제기하는 ‘핵주권 포기’ 비판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흰소리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 추진은 핵확산금지조약(NPT) 붕괴는 물론 미·러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을 무효로 만들 수 있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선택지에 없었다. 확장억제, 즉 핵우산의 강도 확대와 명문화 방식이 관건이었다. 북한과 중국의 반발에 대응하려면 한국은 NCG 한미일 확대 카드도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나토정상회의에서 이를 확인했다.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3월 강제징용 해법을 들고 일본 도쿄로 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지난 1년간 작성한 대한민국 안보일지인 셈이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은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