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의 현장에서] 전세보증금도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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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취재하다보면 전셋방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지난 1월이 떠오른다.
마음에 드는 오피스텔 원룸을 발견했지만 집주인이 요구한 전세보증금은 1억7000만원.
집주인의 상황과 관계없이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고 세입자가 보증금 반환을 요구한다면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2년이 지난 현재 집값이 급락하고 한 곳의 돈줄이 막히면 우르르 무너지는 '다단계식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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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취재하다보면 전셋방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지난 1월이 떠오른다. 마음에 드는 오피스텔 원룸을 발견했지만 집주인이 요구한 전세보증금은 1억7000만원. 해당 오피스텔의 옆방 매매가인 1억5000만원보다 2000만원 비싼 ‘깡통전세’였다. 집주인이 매매가보다도 더 비싼 보증금을 요구한 건 전 세입자가 해당 금액을 주고 살았다는 이유였다. “매매가보다 보증금이 더 높은 게 말이 되냐”며 조금 깎아달라 했지만 부동산 사장은 “이전 세입자가 그 돈을 주고 들어갔기에 보증금을 돌려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차기간이 만료됐는데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 임차인은 보증금반환 청구 소송의 확정판결이나 그 밖의 집행권원에 기한 경매를 신청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다. 집주인의 상황과 관계없이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고 세입자가 보증금 반환을 요구한다면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내 부동산시장이 법을 잘 반영하고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개월 전 계약 종료를 통보했음에도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돌려주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집주인이 허다하다. “나도 줄 수 있으면 주고 싶다”는 식의 적반하장을 당했다는 경우도 많다. 전세보증금을 상식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돌려줘야 마땅한 채권으로 인식하지 않고 ‘내 집 마련’의 종잣돈으로 인식하는 통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통념은 특히 지금같이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는 시기에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집값이 급등하던 지난 2020년 말~2021년 초, 많은 이가 무자본 상태로 ‘갭투자’를 했다. 임차인들은 월세보다 낮은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집주인의 갭투자 수단으로 제공했다. 2년이 지난 현재 집값이 급락하고 한 곳의 돈줄이 막히면 우르르 무너지는 ‘다단계식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원인이다. 유형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인천, 동탄, 구리, 서울 등에서 줄줄이 전세사기 피해가 터지며 범정부는 ‘전세사기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는 힘들다. 사후적·선별적 조치에 초점이 맞춰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우선매수권·피해자 저리 대출 등 기본적인 원칙을 정하고 세부 사례에 대해선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판단해 나가겠다는 그림이다.
“사인 간의 채권·채무관계에서 피해자들이 처한 유형과 요구사항이 너무 다양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각각 채무자와 채권자라면 전세보증금은 분명 ‘빚’이다. 은행의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낮춰 대출을 어렵게 만드는 안부터 신용보험을 활성화하는 안까지 다양한 금융대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전세 피해를 막기 위해선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대하는 인식부터 달라져야 할 것 같다.
h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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