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회 백상] '대상' 박은빈부터 '피식쇼'까지 수상 어떻게 정했나
박은빈의 대상 수상과 더불어 수상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수상 결과들이 올해 '백상예술대상'엔 유난히 많았다.
후보를 선정하는 1차 심사 전, K콘텐트를 제공하고 소비하는 형태의 변화를 어떻게 심사에 반영할지 심사 기준에 대한 논의부터 열띤 이야기가 오갔다. 올해부터는 TV 부문에 기존 TV와 OTT 콘텐트를 넘어 웹, 동영상 플랫폼까지 시선을 넓혔다. 여기에 다채로운 장르와 소재의 흥행작도 많아 후보 선정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1차 심사는 예년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약 5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올해로 데뷔 28년 차를 맞은 박은빈은 지난해 방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서 단 1회 만에 우영우가 왜 박은빈이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입증했다. 어눌한 말투, 손짓, 눈빛, 발걸음 그 자체가 박은빈이 아닌 우영우였다. 박은빈은 '대상' 트로피의 주인공이었다.
심사위원 김교석 칼럼니스트는 "박은빈이란 배우가 우영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영우는 없었을 것이다. 여성 원톱의 작품에서 크게 활약했다. 세대교체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 박호식 바람픽쳐스 대표는 "기획 단계 때 시놉시스를 보고 업계에선 이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나 스토리가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과연 누가 맡을지, 어떤 배우가 도전한다고 할지, 한다고 나서는 배우가 있을지 물음표였다. 젊은 배우가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이후 행보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며 "주인공 캐스팅에서 가장 큰 불안한 물음표가 있었던 작품을 박은빈이 선택한 용기, 상상 그 이상으로 시청자 모두에게 응원받는 사랑스러운 우영우를 완성해 낸 노력을 보면 대상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했다.
교양 작품상은 그 어느 해보다 의견이 팽팽해 긴 시간 논의가 진행됐다. 그만큼 심사의 방향성이나 기준을 잃지 않고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사회적 파급력을 자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와 MBC경남 '어른 김장하'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최종 트로피는 이 시대가 바라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담아낸 '어른 김장하'에게 돌아갔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지역 방송사 작품이 후보로 오른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인데 수상의 영광까지 누리게 됐다. 5대 2로 결과가 정해졌다.
심사위원장 김옥영 대표는 "다큐멘터리는 시대의 결핍을 꿰뚫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른 김장하'는 그런 걸 보여줬다. 요즘 시대에 이런 어른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어른을 기대하지 않나. 사람들의 결핍을 꿰뚫어 본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어른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꽤 있었는데 '어른 김장하'는 다르다. 이 사람의 철학이 녹여져 있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만드는 사람의 기획 자세가 중요하다. 어떤 소재를 말해야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지점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른이 부재한 시대에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 의미가 있었고 지역 방송사에서 한 인물을 취재, 충분한 가치가 있는 콘텐트를 제작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인상 깊었다"라고 평했다.
올해 예능 파트에선 변화의 바람이 크게 일었다. 콘텐트를 즐기는 시청자들의 이용 패턴 변화에 발맞춰 TV와 OTT 플랫폼에서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뿐 아니라 1인 크리에이터들의 웹 콘텐트를 포함한 웹 예능까지 심사 범위를 넓히자 더욱 다채로운 후보들이 1차부터 거론됐다. 이 중 예능 작품상을 수상한 '피식대학-피식쇼'는 백상예술대상 웹 예능 첫 후보이자 첫 수상작이었다. 심사위원 6인의 지지를 받았다.
심사위원 김교석 칼럼니스트는 "수상 결과가 백상 내에서는 급진적인 변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예능 트렌드가 바뀐 건 하루 아침에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TV를 벗어난 크리에이터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최근 몇 년에 걸쳐 몸소 증명했다. 예능이란 장르에서 코미디는 죽었지만 방송을 벗어나며 살아났다. 이전과 전혀 다른 코미디를 보여줬다. 부캐 놀이, 일상 관찰에 안주하지 않고 문화적인 결과물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심사위원들은 예능이 방송이란 틀을 벗어나며 예능 본연의 크리에이티브가 훨씬 더 잘 살아나고 있다며 앞으로 그러한 예능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지는 TV 예능부터 무대 코미디, 웹 예능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최종 5표를 획득했고, 다른 2명의 심사위원 지지 표는 주현영과 박세미에게 갔다. 심사위원 정덕현 대문문화평론가는 "예능인마다 특화된 특정 예능 장르가 있기 마련인데 이은지는 공개 코미디, 리얼리티 예능 뿐만 아니라 트렌디한 부캐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폭 넓게 예능을 하며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라고 전했다.
배우 이성민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2차 심사 때도 3파전이었는데, 3차 심사 때도 꾸준하게 세 사람의 이름이 거론됐다. 이성민·손석구·이병헌에 대한 이야기가 심도 깊게 오갔고 3차 심사 결과 4대 2(손석구)대 1(이병헌)이었다. 심사위원 전성희 한국드라마학회장은 이성민에 대해 "역대급 연기였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성민의 드라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연기 폭을 넘어 새롭게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라고 평했다. 심사위원장 김옥영 대표 역시 공감을 드러내며 "진양철이란 인물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인간의 양감을 가진 연기였다"라고 칭찬했다. 자신만의 색채 가득한 연기로 '구씨앓이'를 일으킨 손석구·"골라 골라"란 첫 대사부터 이전과 180도 다른 연기를 보여준 이병헌이 트로피를 두고 경쟁했지만 이성민에게 돌아갔다.
배우 조우진이 수상한 남자 조연상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틀에 박히지 않은 개성 넘치는 연기, 파트너 김신록과 차진 케미스트리를 보여준 '재벌집 막내아들' 김도현이었다. 조우진과 김도현은 끝까지 접전이었다. 2차 심사에선 김도현이 1표 차 우위를 점했지만, 3차 심사 결과는 4대 3. 조우진이 앞섰다. 심사위원 김교석 칼럼니스트는 "'수리남'이 낳은 유산이다. 존재감 자체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어려운 배역을 잘 소화했고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라고 치켜세웠다. 여자 조연상은 2차 심사 때부터 기울어졌다. '더 글로리'에서 데뷔 첫 악역 연기에 도전했던 임지연이 '연기력 재발견'이란 호평 속 김신록과의 경쟁구도를 5대 2로 따돌렸다.
여자 신인 연기상은 일찌감치 결정됐다. '만장일치'였다. 심사위원 윤석진 드라마평론가는 "'일타 스캔들' 전도연과 정경호 사이에서 재미를 높여준 건 딸 노윤서의 존재였다. 전작이었던 '우리들의 블루스'에선 배역 자체가 좋았다면, 여기서는 연기력을 입증했다. 확장성을 확인시켜 줬다"라며 지지했다. 심사위원들은 '2023년 발견된 가장 매력적인 배우'라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TV 부문 예술상은 '작은 아씨들' 류성희 미술 감독이었다. 이토록 치열한 예술상 심사는 처음이었다. 2차 심사 때 류성희 미술감독과 '인기가요' 촬영 감독(송낙훈·조진현·황인욱)의 팽팽한 경쟁이 펼쳐졌는데, 3차 심사 때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최종 결과 4대 3. 이 부문도 1표 차로 수상자가 결정됐다.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닫힌 방'이란 공간을 만들어냈는데, 그의 상상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공간 연출이었다는 의견에 좀 더 많은 힘이 실렸다.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은 업계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2월 22일부터 3월 3일까지 열흘 동안 지상파·종합편성채널·케이블 채널 주요 관계자·국내 및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주요 관계자, 드라마·예능·대중문화평론가·감독 등 각계각층 대중문화예술계 전문가 30인에게 사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 추천위원회를 거쳐 위촉된 부문별 심사위원이 전문가 30인의 사전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하며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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