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우선매수권 언제 써야 할까
권리관계 따라 경매회차 관계없이 우선매수 금액은 동일할 수도
개인마다 처한 상황 달라…시세·자금여력 등 고려해 득실 따져봐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앞으로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에 의해 우선매수권을 확보하는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은 우선매수권 행사 여부와 시기를 놓고 전략을 잘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매수권을 직접 행사할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넘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우선매수권 행사 시점과 적정 낙찰금액 등도 따져봐야 한다.
1일 국토교통부와 경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전세사기 피해자의 우선매수권 행사 요령을 살펴봤다.
임차인 전세보증금 날릴 위험 크면 우선매수권 적극 활용
전세사기 피해자는 현재 각자 피해 상황도, 자신의 경제력 등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다. 이에 따라 이번에 특별법을 통해 피해주택 경·공매 시 임차인에게 주어지는 우선매수권 행사 여부도 자신의 관리관계나 자금 여력 등에 따라 결정이 갈릴 전망이다.
일단 피해 임차인은 크게 '건축왕'과 '빌라왕'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건축왕 부류의 주택은 임대인이 임차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해당 주택을 지으면서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아 금융기관 또는 대부업체의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집값 하락으로 인해 낙찰가가 떨어지면서 임대인이 전세 계약 전에 체납한 국세 등 세금이 없더라도 선순위 근저당권 때문에 보증금 회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전세보증금이 1순위 근저당 설정 시점의 소액임대료 범위를 벗어나 최우선변제 대상에서 제외된 임차인은 경매에서 보증금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건축왕 피해자의 인천지역 주택들은 통상 2∼3회차 입찰에서 감정가의 50∼70%선에서 낙찰이 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의 전세사기 피해자 A아파트는 지난달 초 2회차 경매에서 감정가(1억5천800만원)의 70%(1억1천60만원)에 낙찰됐는데도 낙찰가보다 높은 1억2천350만원의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어 후순위인 임차인은 보증금 8천만원 가운데 최우선변제금 2천700만원만 배당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경매에서 피해 임차인이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할 때 우선매수권 행사를 고려할 만하다고 말한다.
일단 이론적으로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려면 낙찰가격이 낮을수록 유리하다. 최대한 싸게 사서 추후 시세차익을 통해 전세보증금 손실을 보전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특별법 통과로 임차인과 LH에 우선매수권이 부여돼 유찰이 거듭되면 저가 매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근저당권자 '방어입찰' 가능성 대비…우선매수권 행사시점도 전략 잘짜야
그러나 임차인 우선매수권 행사 시점은 유찰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경매에서 자신이 받아야 할 보증금으로 낙찰대금 상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추홀구 숭의동의 건축왕 피해주택 B연립은 현재 감정가가 3억4천100만원으로, 1회 유찰돼 최저가가 2억3천870만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 주택이 2회차 경매에서 최저가에 그대로 낙찰이 된다면 임차인은 선순위 근저당 금액 1억5천만원과 경매비용(400만원)을 제외하고 보증금(8천800만원)의 대부분인 8천470만원을 배당받게 된다.
만약 이 금액에 낙찰만 된다면 임차인은 보증금 대부분을 회수하기 때문에 굳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굳이 임차인이 직접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고 가정하면 자신의 보증금을 낙찰대금과 상계할 수 있어 법원에는 자신의 보증금을 제외하고 선순위 근저당권 1억5천만원만 납부하면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주택이 2회차에서 유찰되고 3회차 경매에서 감정가의 49%인 1억6천709만원에 낙찰되는 경우라면 어떨까.
이 경우 피해 임차인은 금융기관의 선순위 근저당권 1억5천만원과 경매비용을 제외하고 보증금 8천800만원에서 1천300만원밖에 돌려받지 못한다. 보증금 상당액을 날리는 것이다.
이때 경제적 여력이 되는 임차인이라면 정부의 저리 대출을 받아 직접 우선매수권 행사를 적극 검토할 만하다.
다만 3회차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해도 법원에는 선순위 근저당권 1억5천만원만 납부하면 돼 2회차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때와 임차인이 투입할 금액은 동일해진다.
어차피 임차인이 직접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면 2회차 경매에서 하든 3회차 경매에서 하든 부담해야 하는 실질 낙찰대금은 똑같은 것이다.
임차인이 자금 여력이 없는 경우에는 우선매수권을 LH에 양도하고, 해당 주택에 싼 임대료로 장기 거주할 수 있다.
통상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경우 임차인 입장에서 우선매수권으로 무조건 싸게 낙찰받는 게 유리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선순위 금융기관 또는 대부업체가 최저 매각가가 근저당 설정액 이하로 떨어지면 손실이 불가피해 이를 막으려고 채권자가 직접 낙찰받는 '방어입찰'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H경매연구소 강은현 소장은 "최저 경매가가 일정 수준으로 내려가면 채권은행의 방어입찰 외에도 싼값에 낙찰받아 비싼 값에 전세를 놓으려는 '무자본 갭투자자'들도 입찰에 가담할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 원리상 정부와 임차인의 기대처럼 유찰이 계속 거듭될 수만은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강 소장은 "결국 우선매수권은 낙찰가가 하락해 자신의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한 상황이 됐을 때 유용하지만, 보증금을 회수할 정도로 높은 금액에 낙찰되면 우선매수권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며 "자신의 보증금 회수가 어려울 때 자금 여력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직접 낙찰받을 것인지, LH에 우선매수권을 넘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LH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더라도 권리관계와 배당순위, 배당 가능금액을 벗어나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모두 보전해주는 것은 아니어서 우선매수권을 넘기는 일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LH는 선순위 채권액과 임차인의 보증금까지 모두 반환해줄 정도의 높은 가격에서는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매수권 잘 쓰면 손실 줄이고 시세차익 가능할 수도
경매 전문가들은 우선매수권 행사 여부를 고려할 때 시세차익 여부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세 1억5천만원짜리 건축왕 피해주택에 1억원의 선순위 근저당권이 있고, 임차인 보증금 1억원이 후순위인 경우, 9천600만원에 제3자 낙찰이 된다면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낙찰대금을 전액 배당받아 임차인은 전세보증금 1억원을 모두 날리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제3자가 써낸 9천600만원에 낙찰을 받으면 전세보증금 1억원에 9천600만원을 더해 총 1억9천600만원에 해당 주택을 매입하게 격이 된다.
이 경우 현재 시세(1억5천만원) 대비 4천600만원 손실이 생기지만, 우선매수권 없이 보증금 1억원을 고스란히 날리는 것에 비해서는 5천400만원의 손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만약 추후 집값이 1억9천600만원 이상으로 오른다면 시세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국세 체납액 외에 선순위 근저당권이 없는 '빌라왕' 부류의 세입자는 자신이 선순위 대항력을 갖추고 있어 임차인이 직접 보증금 회수를 위해 피해주택을 경매 신청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정부의 저리 대출을 받아 자신이 직접 '셀프 낙찰'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 물건은 낙찰자가 낙찰대금을 포함해 임차인의 보증금까지 모두 변제해야 해 경매 매각이 쉽지 않다.
지지옥션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 경우 응찰자 없이 유찰만 거듭돼 최저 매각가가 감정가의 4%대까지 떨어진 주택도 있다"며 "이 경우 시간만 길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시세차익을 기대할 만한 주택이라면 본인이 직접 낙찰받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sm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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