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마이카 선생, 수고 많았구려” 50년전 시청역에 남겨진 방명록[선데이서울로 본 50년전 오늘]
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4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동굴도 아니고 탄광도 아닌 것이 땅 속 역사(驛舍)가 이렇게 휘황찬란할 줄 누가 알았을까. 50년전, 지하에 반듯하게 지어진 전철 역사에 처음 와본 시민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경탄이었다.
‘선데이서울’ 237호(1973년 4월 29일)에는 1973년4월13일 서울시민들에게 첫 선을 보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을 방문한 시민들의 방명록 중 걸작선이 소개됐다. 50년 전 서울시민들의 눈에 비친 지하철은 어떤 모습이었고,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천만 서울시민의 발로 불리는 지하철, 출퇴근 시간 살인적인 인구밀도 덕에 요즘 사람들에게는 ‘지옥철’이라는 오명으로 불리지만 50년전 첫 공개됐을 때만 해도 지하를 고속으로 달리는 신통방통한 물건이었다. 당시 시민들의 놀라운 심경은 방명록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실제 지하철 개통보다 1년4개월 앞서 이뤄진 ‘가오픈’에는 무려 10만명이 다녀갔다. 개통도 하기 전에 시민공개를 결정한 이유는 잦은 민원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상 구조물 공사는 올라가는 모습으로 진척도를 확인도 하고 짐작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하철 공사는 달랐다. 공사를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지하철 공사는 도로 차선을 막고 땅을 파는 식이었다. 공사 구간은 자주 교통이 막히는 등 시민 불편이 컸다. 지각이라도 하게 될 것 같으면 대놓고 투덜대기도 했다. 두더지처럼 땅 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니 짐작은 커녕 궁금하기만 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했는지 1973년 4월 13일 서울시는 한창 건설 중이지만 우선 모양을 갖춘 서울 시청역 역사를 공개했다. 일단 한 번 와서 눈으로 보라는 것. 무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직접 현장을 찾아 지하철 시설을 구경했다고 하니 관심이 보통 뜨거웠던게 아니다.
땅 속이라면 탄광을 생각하던 시대였으니 현대식 시청역 시설에 감탄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 방명록을 놓고 소감을 적도록 했는데 이게 히트였다. 생생한 감탄과 자부심이 듬뿍 묻어나는 글이 많았다. ‘민심의 소리’였던 당시 방명록에 남겨진 소감들이다.
“지하세계에 펼쳐진 모습을 보고 입이 닫히지 않는구려. 호마이카 선생 수고 많았구려” ‘호마이카’ 선생은 머리숱이 적어 정수리가 빛났던(?)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을 일컫는 별칭이었다고 기사는 덧붙였다. 서울의 지하철 시대를 열었던 그는 지난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지하로 쭉뻗은 레일을 보며 멀고도 가까운 북녘땅을 떠올린 사람도 많았다. “이 레일을 따라 피양(평양)까지 가게 해 주구례” “5월 초 평양 사람들이 오면 이것을 보여주어 콧대를 꺾어 줍시다” 등의 글이 눈에 띈다.
실제로 그해 5월 9~10일에는 제6차 남북 적십자 회담 본회담이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때 이것을 보여주자는 것인데, 그 당시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평양 지하철이 곧 개통을 앞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에 따르면 평양 지하철은 서울보다 1년여 빠른 1973년 9월에 개통했다.
언젠가 지하철 요금을 언급한 적이 있었던지 “세금을 낸 보람을 느끼도록 25원 요금을 꼭 지켜주오”라는 글도 있었다. 1974년 지하철 개통 당시 기본요금은 30원, 그런대로 그 시민의 요구가 지켜진 셈이었다.
“지독하게 잘 된 지하철, 진주 촌놈 눈 튀어나오겠다”
경남 진주에서 온 사람이 이런 감탄사를 쓴 것이리라.
“어제 등교 버스길 막고 땅을 파더니 오늘 호화스러운 전당을 이룩했군요”
그동안 불편했지만, 눈앞에 나타난 결과에 감탄하는 목소리다.
“입이 닫히지 않는다”, “너 과연 일품”, “시원해서 좋군요. 한더위에 피서도 즐기자” 등등 시설이 얼마나 좋고 마음에 들었으면 이런 극찬이 나왔을까 싶다.
당시는 한문 세대였던 터라 한문으로 된 소감도 많았다. “掀天動地”(흔천동지·큰 소리로 천지를 뒤흔들다) “50년 전 서울을 돌아보니 今昔之感(금석지감·지금과 옛날을 비교할 때 떠오르는 감회)”
누군가는 알 듯 말듯 ‘電妙의 力盡’(전묘의 역진)이란 글도 남겼다.
지하철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시민들은 이처럼 기대와 희망에 차 있었다. 대중교통의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 목표 아래 들어간 이 구간 공사비는 약 316억원. 그해 우리나라 총예산이 6600억원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돈이 지하철 공사에 들어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74년 서울 지하철이 개통되면 하루 56만4000명을 실어나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시내버스 1100여 대가 수송해야 할 규모로 붐비는 출퇴근 시간대에 버스로 45분 걸리는 서울역-청량리역 구간을 지하철은 18분이면 주파할 것이라고 했다. 가히 수송 혁명이라 할 만했다.
5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울 지하철의 수송 능력이나 노선, 시설 등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변모했다. 교통에 관한 한 서울은 땅 위보다 땅 속이 훨씬 붐비고 있다.
다만 5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 하나, 당시 홍보문에 서울역에서 청량리역을 18분에 달릴 거라고 했는데 지금도 18분쯤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이 운행시간도 GTX가 개통하는 날이면 깨질 것이다.
당시 공사 중에 있었던 숱한 비화도 담겼다. 대형 폭발물이 나와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고, 택시나 버스가 길을 잘못 들어 지하 공사장으로 돌진하는 등 사고도 많았다. 그러나 공사는 착착 진행됐고, 이듬해 8월15일 바야흐로 서울 지하철 시대를 열었다.
내년 8월이면 서울 지하철이 개통된지 50년이 된다. 그날이 광복절이기에, 더구나 그 해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서거한 충격적인 날이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시대의 개막은 경축과 비운이 동시에 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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