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야구장에 신의 능력이 나타난 순간들

백종인 2023. 5.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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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부산, 이석우 기자] 3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올시즌 첫 만원을 기록한 사직야구장에서 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2023.04.30 / foto0307@osen.co.kr

[OSEN=백종인 객원기자] 원정 팀이 0-2로 끌려간다. 이대로 가면 스윕이다. 5회 초 2사 2루. 4번 애디슨 웨인 러셀의 타석이다. 카운트 2-0에서 타임이 걸린다. 포수 유강남의 마운드 방문이다. 한현희를 다독인다. 피하지 말고 승부하라는 얘기 같다. 왜 아니겠나. 앞서 두 번은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 타자다. (4월 30일 사직구장, 롯데-키움전)

그리고 3구째. 또 다시 커브(125㎞)다. 3개 연속 같은 공이다. 이번에는 어정쩡한 높이에 걸렸다. 가만히 있으면 타자도 아니다. 분노의 스윙이 발사된다. 완벽한 타이밍에 걸렸다. 맞는 순간 타자가 포효한다. 사직 구장이 쩌렁쩌렁 울린다. 아차차. 배터리는 낭패한 표정이다.

우아하고, 멋진 빠던이 시전된다. 느릿느릿. 다이아몬드 산책이 시작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좌익수(안권수)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타구를 계속 따라붙는다. 급기야 펜스에 붙어 점프까지 뛴다. 거의 잡을 뻔했다. 담장 윗부분에 맞고 공이 다시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온다. 부랴부랴. 타자의 걸음이 빨라진다. 달리기는 2루에서 멈춰야 했다.

맞다. 유명한 그 장면이 떠오른다. 자이언츠의 좌익수가 월드 스타로 등극한 사건이다. 벌써 10년 전이다. 5월 15일 다이노스전 때다. 강렬한 파열음. 곧바로 화려한 배트 플립과 검지로 누군가를 가리키는 멋진 세리머니가 이어진다. 그러나 멋진 장면은 역대급 설레발로 남게 됐다. 이 동영상은 mlb.com에서도 큰 화제였다. 모두의 염원이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룬 셈이다.

이번 러셀의 작품은 아쉬움이 남는다. 완성도가 원작에 못 미친다. (좌익수에게 잡히는) 극적인 반전도 없었다. 하지만 신묘함은 충분하다. 분명 완벽한 타구였다.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대단한 맞바람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을 멈춘다. 미스터리가 한 가득이다. 2루에 멈춘 당사자도 어이없는 표정이다.

[OSEN=부산, 이석우 기자] 3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키움 히어로즈 러셀이 5회초 2사 2루 1타점 적시타를 치고 포효하고 있다. 2023.04.30 / foto0307@osen.co.kr

그 순간이다. 어쩌면 월드 스타는 가슴이 철렁했을 지 모른다. 혹시나 더 뛰어난 작품이 탄생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원작이 잊혀지는 것 아닌가. 그런 긴장감 탓이리라.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이윽고 작품 활동 재개를 결심한다.

그런 7회 말이다. 안타 2개로 만든 2사 1, 3루다. 이 때 부터다. 또 다시 신비한 기운이 사직동 일대에 감돌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상대는 뭔가에 홀린 것 같다. 3루수도 없는데(베이스에 붙어 있지 않은데) 투수가 견제 동작이다. 허무한 보크다. 힘 안들이고 동점에 성공한다.

하늘이 허락한 때다. 이걸 놓칠 리 없다. 잭 랙스의 결정력이 빛을 발한다. 우익수 쪽 2루타다. 2루에 있던 고승민이 홈을 밟는다. 드디어 4-3 역전이다.

그러나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 진짜는 그 다음이다. 계속된 2사 2루다. 5번 타자 월드 스타의 타석이다. 2구째 먼 쪽 슬라이더(134㎞)에 스윙이 간신히 걸렸다. 평범한 그라운드 볼이 1루쪽으로 흐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타구에 갑자기 마법이 걸린다. 마치 유령의 변화구 같다. 급격한 브레이크가 작동하며 방향이 꺾인다. 따라가던 1루수(이원석)가 허둥거린다. 글러브 반대손을 내밀었지만 소용없다. 공은 우익수 앞까지 빠져나간다. 통산 2600루타(33번째)는 승리를 확정짓는 결정타였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이번 주말 3연전의 키워드는 ‘드림’이었다. 연고지역 청춘들의 꿈을 응원한다는 취지다. 특히 마지막 날은 ‘SKY BLUE DAY’로 펼쳐졌다. 팬들이 ‘우주 드림 유니폼’으로 부르는 저지를 입는 날이었다. 하늘색 뒷모습에는 우주의 신비로움이 새겨진 디자인이다.

4705일 만의 8연승, 3949일 만의 단독 1위. 우주의 경이로움이 기적을 일으켰다. 와중에 신비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마치 누군가의 가호를 받은 것 같다. 모두가 홈런인 줄 알았던 타구가 무슨 일인지 펜스에 맞고 떨어진다. 멀쩡하던 투수가 갑자기 보크를 범한다. 평범한 땅볼이 마세이(프랑스식 당구 용어 Masse)처럼 꺾이며 수비를 나뒹굴게 만든다.

사직동 야구장에 2만 명이 넘게 모였다. 그들의 염원이 모여 꿈 같은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부디 봄날의 달콤함만으로는 끝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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