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변에서도 찾았다…고대 인간 게놈 해독 1만명 돌파

곽노필 2023. 5.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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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첫 해독 성공한 지 12년 만
수만년 전 배설물에서도 DNA 분리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연구원인 토양 시료에서 DNA를 분리하고 있다.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올해는 인류가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지 70년, 인간 게놈(유전체 전체)을 처음으로 해독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훗날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디엔에이 구조 논문이 발표된 건 1953년 4월25일, 인간 게놈 해독 성과가 발표된 것은 2003년 4월14일이었다.

인간 게놈을 처음으로 해독하는 데는 무려 13년의 시간과 27억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인간 게놈 해독 프로젝트를 완료한 지 7년 후인 2010년 과학자들은 고대 인간 게놈 해독에도 성공했다.

당시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이 처음으로 게놈을 해독한 대상은 그린란드 영구동토층에서 발견한 4천년 전의 남성 머리카락이었다. 이후 분석 기술이 향상되면서 고대 인간 게놈 해독 건수가 크게 늘었다. 미국의 기술매체 는 올해 초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10대 미래 기술’의 하나로 고대 게놈 분석 기술을 꼽았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그동안 200개 이상 논문에서 고대 인간 게놈 해독 데이터가 보고됐으며 첫 해독 이후 12년만에 고대 인간 게놈 해독 건수가 1만건(2022년 11월 기준)을 돌파했다”고 사전출판 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했다.

화석 없어도 용변 퇴적물에서 DNA 분리

연구진에 따르면 2010년 이전의 고대 게놈 연구는 전체 31억 염기쌍의 극히 일부이거나 염기쌍이 1만6500개 정도인 미토콘드리아에 국한돼 있었다. 이후 염기서열 해독 기술 발전으로 게놈 전체를 해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초기엔 작업이 노동집약적이고 보존 상태도 아주 좋은 표본이라야 전체 해독이 가능했다. 2010~2014년엔 한 해 고작 10여명의 게놈 해독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자동 해독 기술이 등장하면서 2015~2017년엔 그 숫자가 한 해 약 200명으로 늘어났다. 속도에 더욱 탄력이 붙은 건 2018년부터였다. 염기서열을 읽는 방식을 바꾼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학자들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전체 게놈 대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염기서열 부분은 제외하고 사람마다 다른 부분을 해독하는 데 집중했다. 이때부터 한 해 1천명 이상의 고대 게놈 데이터가 쏟아졌다.

이제는 치아나 뼈 같은 단단한 물질의 화석이 없더라도 인간의 흔적이 담긴 퇴적물에서 DNA를 추출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예컨대 과학자들은 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벨기에 동굴에서 그들이 용변을 본 흙더미에서 DNA를 분리해냈다.

고대 게놈의 지역별 분포. biorxiv

지역 편중 문제…75%가 유라시아 서부

문제는 게놈 데이터가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분석한 고대 인간 게놈의 75%는 유럽과 러시아, 중동을 포함한 서부 유라시아에 살았던 사람들의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지역 편중도가 완화돼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의 고대 게놈 분석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특히 호모 사피엔스의 고향인 아프리카 고대 게놈 분석 비율이 증가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지난 3월 <네이처>에 아프리카 동남부 스와힐리 해안지역의 80명 게놈을 해독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1250~1800년 사이에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것이었다.

게놈 분석 연구가 소수의 기관에 집중돼 있는 것도 분석의 다양성을 해치는 요인이다. <네이처>에 따르면 고대 인간 게놈 염기서열의 거의 80%는 하버드대 의대와 코펜하겐대,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하버드대 의대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스반테 페보 박사는 고유전체학을 개척한 공로로 202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제공

현대 인류의 질병 연구에도 기여

고대 게놈은 그 자체로 인류 진화와 교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정보 창고라는 의미를 넘어, 그 과정에서 획득한 현대 인류의 생리와 질병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준다.

노벨위원회가 202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의과학자가 아닌 고유전학자 스반테 페보 박사(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를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벨위원회는 “페보 박사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현생 인류와 유전자를 나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했다”며 “고유전학은 현대 인류의 몸에 남아 있는 고대 인류의 유전자가 면역 체계가 감염에 대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페보 교수는 2021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코로나19 환자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한테서 물려받은 12번 염색체의 특정 유전자가 코로나19 감염시 중증으로 발전할 위험을 낮춰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2020년엔 <네이처>에 코로나19 중증환자의 3번 염색체에 남아 있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호흡부전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내놓았다. 이 유전자는 남아시아인의 50%, 유럽인의 16%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과학자들은 700년 전 중세시대 영국인과 덴마크인의 게놈에서 흑사병에서 생존할 가능성을 40% 더 높이는 돌연변이를 확인했다. 티베트인들이 산소가 희박한 해발 수천미터의 고산지대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데는 과거 이 지역에 살았던 데니소바인한테서 물펴받은 유전자(EPAS1)의 힘이 크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101/2023.04.06.535797

The Allen Ancient DNA Resource (AADR): A curated compendium of ancient human genomes

biorxiv(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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