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 외손자' 격투기선수 "할아버지는 저주이자 축복"
오른팔에는 벌, 왼팔에는 나비 문신 새기고 종합격투기 데뷔
동생 니코는 복싱 선수로 활약…'피는 못 속여'
(서울=연합뉴스) 유지호 이대호 기자 = 2016년 세상을 떠난 무하마드 알리는 여전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싱 선수로 거론된다.
수없이 많은 거구를 쓰러트린 링 위에서의 모습도 위대했지만,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고 흑인 인권 운동에 힘을 쓰며 링 밖에서도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알리가 생전에 남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대로 오른팔에는 벌, 왼팔에는 나비 문신을 새기고 종합격투기에 뛰어든 비아지오 알리 월시(25)는 알리의 외손자다.
풋볼 선수로 뛰다가 2020년 뒤늦게 종합격투기에 입문한 알리 월시는 데뷔전에서 패배를 맛봤지만, 이후 3경기에서 모두 펀치로 KO승을 따내며 착실하게 경력을 다지는 아마추어 선수다.
알리 월시는 지난달 28일 연합뉴스와 화상 인터뷰에서 "올해가 끝나기 전에 두세 번 더 경기하고 싶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고 부상이 없다면 내년 중에는 프로 무대에 데뷔할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알리 월시가 속한 종합격투기 단체는 PFL(프로페셔널 파이터스 리그)이다.
그의 동생인 니코 알리 월시(23)는 좀 더 일찍 복싱 선수로 데뷔해서 현재 8전 전승(5KO)을 달리고 있다.
알리 월시는 '왜 복싱이 아니라 종합격투기 선수를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에 "아예 복싱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종합격투기 경기를 보는 걸 좋아했다. 하나의 무술보다는 다양한 무술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비숍 고먼 고등학교에서 풋볼 러닝백으로 활약하던 알리 월시는 대학 입학 과정에서 풋볼 선수의 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처음 입학한 학교는 자신을 영입한 코치가 곧바로 팀을 떠나는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고, 집 근처의 학교로 옮겨서도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알리 월시는 "체육관에서 보조 코치로 일하고 있을 때 선수들을 보면서 '난 22살인데 왜 코치를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종합격투기 선수의 길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알리 월시의 기억 속 '무하마드 알리'는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그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영화관에 갔던 날의 소중한 추억을 꺼내 보여줬다.
"할아버지는 파킨슨병 때문에 조금 행동이 느렸다. 함께 영화관에 갔던 날,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그 덕분에 나와 동생은 쉽게 팝콘을 살 수 있었다"고 떠올린 알리 월시는 "할아버지와 함께 영화 '킹콩'을 보는 내내 쓰다듬어 주셨던 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추억"이라고 했다.
이어 "할아버지와 함께 식당에 가니 손님들이 식사를 멈추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이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리워했다.
알리 월시는 '선수' 무하마드 알리보다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던 '인간' 무하마드 알리를 더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자신감과 야망, 확신을 가진 분이었다. (베트남전 징집 거부로) 정부가 할아버지의 모든 걸 빼앗았지만,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링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도 그는 진정한 투사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 막 한 명의 격투기 선수로 첫걸음을 내딛는 알리 월시에게 할아버지가 남긴 발자국은 너무나도 거대하다.
알리 월시는 "할아버지는 격투기 선수인 내게 저주이자 축복"이라고 이를 인정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쉽게 알아봐 주는 건 축복이다. 그렇지만 더 많은 압박감과 눈길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저주"라고 했다.
'역사상 가장 강한 사나이'였던 알리의 손자답게, 알리 월시는 모든 역경을 딛고 챔피언에 오르는 것만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내가 종합격투기 선수로 뛰는 걸 100% 지지하셨을 거라 믿는다"고 확신한 그는 "항상 '겸손하라'고 말씀해주셨고, 난 그걸 평생 새기고 살 것이다. 언젠가 챔피언이 된다면, 할아버지처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알리 월시가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활약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한국을 찾을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는 "한국에 가볼 기회가 없었지만 가보고 싶다. 한국인들은 최고의 좀비 영화와 드라마를 만든다"며 "나와 내 동생, 엄마까지 모두 한국의 좀비 영화를 즐겨 본다"고 했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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