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핸디캡 속에 핀 꽃 이다연!
[골프한국] 골프에서 유난히 많이 쓰이는 용어가 핸디캡(handicap)이다. 골프 범주에서만 풀이하면 기준 타수(18홀 기준 파 72)보다 얼마나 더 많이 치는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핸디캡이 낮을수록 실력이 뛰어남을, 핸디캡이 높을수록 기량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실력이 차이 나면 경기도 재미없다. 경기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서로 핸디캡을 주고받는다. 강한 사람이 매번 이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보완해 공정하게 경기를 즐기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잘 치는 사람이 미리 못 치는 사람에게 몇 타 접어주는 방식이다.
흔히 아마추어의 고수로 인정받는 싱글이라면 기준타에서 한 자릿수 이내의 스코어를 내는 것을 말한다. 파 72의 코스에서 기준 타수 플러스 9타 이내(81타)로 라운드를 마무리하면 싱글로 인정받는다. 아쉽게 10타를 더 치면 한자로 '열 십(十)'자가 한 자릿수인 것을 감안해 '차이니스 싱글(Chinese single)'로 위로받기도 한다.
오늘날 핸디캡이란 용어는 골프를 벗어나 어떤 분야에서건 자신에게 남보다 불리하게 작용하는 조건으로 통용되고 있다.
골프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와도 경기가 성립되는 것은 실력 차이를 인정해 핸디캡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실력이 10타 정도 차이 난다면 경기 전에 고수가 10타의 핸디캡을 떠안는 식이다.
이 핸디캡의 어원을 두고 두 가지 설이 팽팽하다. 골프의 본향인 스코틀랜드의 선술집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런던의 경마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스코틀랜드 사나이들이 라운드를 끝낸 뒤 선술집에 모여 위스키를 마시고 헤어지면서 누군가가 모자를 내밀며 "Hand in a cap"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면 일행은 자기가 낼 수 있는 돈을 주먹에 말아 쥐고 모자 속에 집어넣는다. 여유가 없으면 빈 주먹을 집어넣기도 한다. '핸드 인 어 캡'이 줄어서 핸디캡이 되었다는 설이다. 동반자의 사정을 감싸주는 배려가 바탕에 깔려있다.
경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꽤 설득력이 있다. 뛰어난 기수와 훌륭한 말이 우승을 독식하자 경마의 인기가 떨어졌다. 그러자 경마장을 외면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기량이 뛰어난 말에게 무거운 짐을 싣게 했다. 그러자 마주들이 서로 무거운 짐을 싣겠다고 나섰다. 무거운 짐을 싣고도 이길 수 있다는 자존심의 표시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여러 무게를 표시한 쪽지를 모자에 담아 기수들로 하여금 집게 했다. 이때 "Hand in a cap"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선술집이든 런던의 경마장이든 핸디캡의 바탕에 배려와 자존심이 깔려 있다는 게 절묘하다.
4월 30일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CC 산길·숲길 코스(파72)에서 막을 내린 K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리스에프앤씨 KLPGA 챔피언십(총상금 13억원) 최종 라운드에서 이다연(25)이 4언더파 68타를 쳐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로 우승했다. 2021년 한화클래식 이후 1년 8개월 만에 거둔 통산 7번째 우승이다. 우승 상금 2억3400만원을 받은 이다연은 상금랭킹도 2위(2억7165만원)로 뛰었다.
그는 '오뚜기'라는 별명답게 어려운 고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설 줄 아는 근성 있는 골퍼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그는 한순간도 핸디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키 157cm의 단신으로 장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2015년 데뷔 때부터 순탄치 않아 시드 지키기에 급급했다. 2016년엔 드라이버 입스로 13차례 대회에서 12차례 컷 탈락하는 고통을 겪었다. 시즌 막판 3개 대회에서 톱10에 두 번 들면서 간신히 상금 랭킹 60위 안에 들어 시드를 잃지 않았다. 2017년엔 시즌을 앞둔 3월 왼쪽 발목 인대가 파열됐다.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서 시즌을 맞아야 했다. 11개 대회를 거르고 필드에 나섰지만 기권과 컷 탈락이 이어졌다. 가까스로 출전한 팬텀 클래식에서 역전 우승을 하면서 시드를 지켰다.
2018년 두 번째 우승, 2019년에는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 등 3승, 2021년 메이저인 한화 클래식서 우승했으나 2022년 다시 시련이 닥쳤다. 팔 인대가 파열돼 10개 대회만 치르고 시즌을 접어야 했다. 수술 후 재활에 매달리느라 전지훈련도 못하고 시즌 개막 한 달을 앞두고서야 스윙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4번째 대회 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이번 대회 우승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국가대표 출신 신인 방신실(18)의 기세가 무서웠다. 프로 데뷔전인데도 뛰어난 기량을 과시하며 나흘 내내 선두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최종 라운드에서 방신실은 이다연과 공방전을 펼쳤으나 노련미와 집중도에서 이다연을 넘지 못하고 8언더파 280타로 공동 4위로 마감했다.
결과적으로 이다연이 안고 겪은 숱한 핸디캡이 오늘의 강한 그를 탄생시킨 셈이다. 짧은 비거리, 잦은 부상 등의 핸디캡을 체력 강화훈련, 정교한 어프로치, 자신에 대한 믿음과 고도의 집중력과 평정심 등으로 극복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골프란 핸디캡 없음이 핸디캡이 될 가능성이 높은 별난 스포츠라는 생각이 든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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