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가 두 달이면 ‘뚝딱’…모듈러주택이 뭐기에
탄소 배출·폐기물·노동력 절감 ‘친환경’ 장점
[주간경향] 목조 모듈러주택을 만드는 충남 당진 자이가이스트 공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안쪽 첫 번째 라인에서는 목재를 재단하고 못을 박아 바닥과 벽체 등을 만든다. 가운데 라인에서 여기에 합판을 붙여 상자 형태로 만들고 투습방수지인 ‘인텔로’를 붙인다. 글라스울 등 단열재를 벽체에 충전하고, 뒤퐁사의 방수지인 타이벡 등을 바깥에 두른다. 완성된 모듈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마지막 라인에 있는 레일을 타고 출고된다. 이후 현장에 설치한 후 내장 등 마무리 공사를 한다.
지난 4월 25일 이곳을 찾았다. 작업자들이 자동화 설비를 이용해 목재를 재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목재가 레일을 타고 기계실 안으로 들어가면 톱니가 내려와 순식간에 잘라냈다. 설비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폐쇄된 형태로 작동하거나, 철망 가드로 둘러쳐져 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다. 공장을 안내해준 배고운 자이가이스트 전임은 “기계가 오차 없이 재단하기 때문에 작업자의 숙련도와 상관없이 균질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자재 손실이 거의 없다”면서 “현장 작업을 최소화해 안전사고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듈러 건축은 표준화된 실내 공간을 모듈 형태로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으로 운송·조립해 완성하는 건축 기법이다. 공사 기간을 기존 공법 대비 35~44%까지 줄일 수 있다. 모듈러 단독주택의 경우 설계와 인허가 기간을 제외하고 빠르면 2개월 내에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설계·인허가, 기초공사, 골조공사, 마감공사로 진행되는 기존의 선형 과정을 벗어나 기초공사와 동시에 공장에서 모듈을 제작하는 ‘병렬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원과 시간 아끼고, 품질과 안전 더한다
GS 건설이 만든 목조 모듈러 단독주택 브랜드인 자이가이스트의 샘플하우스를 보면 일반적인 단독주택과 내외관상의 차이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기밀 등 주택의 성능은 기존 주택과 유사하거나 오히려 좋다고 회사 측은 강조했다. 공장 한쪽에 있는 35.9평과 54.9평의 샘플하우스는 각각 6개, 10개의 모듈을 조립해 완성했다. 당연하지만 모듈 간 연결부는 전혀 티나지 않을 정도로 매끈하게 마감됐다. 전체적으로 창이 크고 작게 여러 곳에 나 있어 확 트인 느낌이 들었다. 2층에 있는 포치와 넓은 데크에선 단독주택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옆에 새로 완성된 ‘탈부착가능주거유닛(ADU)’ 모듈의 쓰임새가 좋아 보였다. 모듈 하나에 창가 소파와 책상이 딸린 거실, 싱크대, 화장실, 침실 등이 알차게 들어 있다. 8.74평의 공간이지만 데크까지 더해지니 훨씬 더 넓어 보였다. 오도이촌(五都二村·닷새는 도시, 이틀은 시골)하면서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은 세컨하우스 수요나 일과 휴가를 함께하고 싶어하는 ‘워케이션족’들의 수요를 노리고 만든 상품이다. 배 전임은 “토지를 구매했지만 크게 단독주택을 짓기는 부담되는 분들이 우선 모듈을 하나 설치해놓고 세컨하우스로 쓸 수 있도록 했다”면서 “향후 ADU 모듈을 조금만 고치면 확장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약 50개의 표준 모듈을 만들었다. 이런 표준 모듈을 조합해 고객이 원하는 주택을 직접 설계할 수 있도록 ‘자이가이스트 컨피규레이터’라는 프로그램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배 전임은 “모듈러주택은 설계의 자유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데 완전히 창의적인 집을 건축하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다 맞춤형으로 제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건축비는 평당 600만~700만원이다. 이 회사는 5년 내 매출 2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잡고 있다. 수도권으로의 교통망 확충과 함께 은퇴 후 단독주택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 단독주택 시장 규모가 충분히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모듈을 제작해 용접하고 접합하는 공법인 모듈공법(블록공법)은 이미 조선과 해양플랜트 산업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적용해왔다. 대형항공기의 동체 제작에도 유사한 기술이 적용된다. 건축 분야에는 영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복구를 위해 최초로 개발해 사용했다. 일본의 경우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1955년 정부가 주택공단을 만들고 콘크리트 패널을 이용한 아파트를 개발하면서 발전했다. 최근에는 초고층 건물에도 모듈공법이 도입되고 있다. 자원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안전사고가 줄어드는 이점이 있는 데다 건축 폐기물도 최소화하는 등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에 건축 전 분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다만 목조를 이용한 모듈 단독주택과 달리 고층 건물에는 철골조의 모듈러가 필요하다.
ESG경영, 건설 부문 탄소 배출 저감 장점
모듈공법을 활용한 대표적인 초고층 프로젝트로 38층, 44층 높이의 쌍둥이 건물로 세워진 영국 런던의 ‘크로이던 타워’와 호주 멜버른의 44층 높이의 ‘라 트로브 타워’를 들 수 있다. 국내의 경우 2014년 이후 모듈공법을 활용한 공동주택을 연구·도입했지만 7층 이하가 대부분이었다. 기존 최고층은 12층 높이의 포스코 광양생활관 기가타운이었다. 이 기록은 최근 깨졌다. 지난해 1월 착공해 지난 4월 20일 준공된 경기도 용인영덕의 ‘경기행복주택’은 13층 높이의 모듈러주택으로 건설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이 경기주택도시공사와 함께 진행한 국가 R&D 중고층 모듈러 실증사업으로, 3시간 내화(耐火)구조를 처음으로 적용한 건물이다.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코어는 기존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인데, 여기에 전이보(Transfer Girder)를 연결해 틀을 만들고 모듈을 쌓았다. 모듈은 빌트인 가전 설치와 내부 인테리어 공사까지 마친 상태로 공장에서 출고된다. 전체 공정의 70% 이상이 공장에서 이뤄진다.
지난 4월 26일 현장을 찾았다. 경기행복주택 뒤쪽 건너편을 보니 기존 공법의 대단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쓰임새를 찾지 못해 버려진 석고보드가 높이 쌓여 있고, 목재와 돌 등 여러 건축 폐기물이 한 트럭 담겨 있었다. 작업용 엘리베이터가 쉴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폐기물 배출을 최소화한 모듈공법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만난 김경수 현대엔지니어링 책임매니저(중고층 모듈러주택 실증사업 현장소장)는 “왜 모듈러여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종국적으로는 ESG경영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모듈러주택의 장점을 말하자면 하루종일이라도 말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현장에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집을 만들어 내놓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이렇다.
“건설이 여태까진 환경과 다소 대척점인 점에서 진행됐지만, 모듈공법은 탄소 배출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기존에 집을 지을 땐 상당수의 자재가 현장에 개별적으로 운송돼 오죠. 건축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품질이 균일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석고보드를 붙이면 이런 오차 때문에 조금 크게 주문하고, 결국 남는 건 버리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건축 자재의 20% 정도는 버려집니다. 만들고, 운송하고, 시공하는 과정이 다 탄소 배출과 직결되는데 공장에서 만들어오면 제조단계부터 딱 맞게 납품하니 버릴 게 없고, 현장에서 두세 번 일할 필요가 없죠. 기계로 공장에서 만드니 집마다 품질이 균일해지고 하자가 줄어듭니다.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현장 공사가 줄고, 공사기간이 줄어드니 당연히 다칠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오가는 차량도 줄어 차량 통행에 의한 사고도 줄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주요 부분을 공장에서 만들어 싣고 오니 현장에서 뚝딱거리지 않아 소음과 분진이 줄어 그만큼 (민원도 줄고) 친환경적이죠. 집을 다 썼을 땐 모듈을 떼 재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내고 건물을 철거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르죠. 이동이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으니 재난대응 주택으로도 팔면 되죠. 우크라이나는 우리를 비롯해 국제사회에 전쟁 복구 과정에서 모듈러주택을 지원해주길 요청했습니다. 앞단은 조금 비쌀지라도 건축 폐기물 문제를 줄일 수 있고 재난대응의 장점, 복지적 관점을 동시에 고려하면 상당히 괜찮은 모델입니다. 노동력 부족으로 인건비가 상승하고, 건축 폐기물 처리 비용이 갈수록 올라가는 추세를 감안하면, 그리고 모듈 대량생산으로 비용이 하락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머지 않아 모듈공법과 기존공법의 경제성도 역전될 때가 올 것입니다.”
모듈러공법은 기후위기 시대에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건축물의 건설 및 운영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37%에 달한다. 지금까지 주요 감축 방법으로 단열 성능 강화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식을 추진했지만, 모듈화로 생산 단계에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정찬우 한양대 ERICA 환경에너지연구원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생산, 시공, 운영, 해체 및 재사용 등 전 생애주기 관점에서 모듈러 건축물은 30년 단기 사용의 경우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건축물 대비 17.4%, 60년 사용의 경우 20.7% 적게 탄소를 배출한다. 에너지 효율 기술을 접목하기도 유리하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2022년)에 따르면 모듈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단계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경우 일반 주거단지에 설치할 때에 비해 40%까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연구됐다.
영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모듈러공법이 각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노동력 부족 때문이다. 건설업종은 힘들고 위험하다는 생각에 젊은 인력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고령화를 겪고 있다. 빈자리를 해외 인력으로도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모듈공법은 건축을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공장 중심의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탈바꿈시킨다. 박상열 경기주택도시공사 공공사업부장은 “현장의 일용직을 공장 정규직으로 흡수하면서 고용 전환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이곳 경기행복주택과 비슷한 규모의 공동주택을 지을 때 기존 최대 일 투입 인원이 120명 내외였다면, 모듈공법을 적용했을 땐 50명 내외로 줄었다고 한다. 현장 인력이 주는 대신 공장에서 일하는 인력이 늘었겠지만, 전체 투입 인력 규모는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규제 개선과 대량생산으로 비용 낮춰야
13층 이상으로 모듈러주택을 지은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이상의 초고층으로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실증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했을 때 4층/20m 이하는 1시간, 12층/50m 이하는 2시간, 그 이상의 건축물은 3시간 동안 주요 구조부가 견뎌야 한다. 화재 시에도 사람이 대피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 정도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다. 3시간 규제는 국내에만 있다. 업계에선 건축기술과 소방 관련 법령, 기술이 선진화된 상황을 감안하면 토론을 거쳐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방화 석고보드를 적용해 내화기준을 충족하긴 했지만, 더 효과적인 구조체를 찾았음에도 1년에서 1년 반이 걸리는 인정구조 탓에 실제 주되게 적용하진 못했다.
국내에서 모듈공법으로 초고층 주택을 지을 때 극복해야 하는 또 하나의 난점이 있다. 스팀 난방 방식인 서구와 달리 국내는 온돌 난방을 한다. 따라서 모듈 하나의 무게가 25t 내외(3×6m 기준)로 서구의 모듈 무게와 10t 이상 차이가 난다. 부윤섭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초고층 모듈러건물을 지을 때 내진과 풍하중 저항성 등 구조설계는 국내 수준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현장에서 모듈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양중 장비(크레인)를 확보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아파트를 건설할 때 쓰는 일반 크레인은 5t에서 10t까지만 감당할 수 있어서 조선업에서 쓰는 크레인을 빌려 쓰거나, 없다면 해외에서 따로 수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듈러주택으로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 공사비가 기존 공법에 비해 30% 내외로 상승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건축법상의 규정을 충족하고 모듈주택 제작과 양중, 운송에 필요한 특수 장비 등을 갖추는 데 비용이 꽤 들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 증가를 상쇄할 만큼의 사업성을 확보하는 게 모듈러주택 확산의 주요 과제다. 여러 이점에도 불구하고 금액 면에서 진입 장벽이 꽤 높아 아직 모듈러 아파트를 분양하는 모델을 구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업계에선 용적률, 건폐율, 높이 제한 등 건축기준을 완화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듈 사이 6~7㎝ 공간을 고려하면 10층만 높여도 같은 층의 기존 주택에 비해 상당한 손해를 보는 꼴이어서 모듈러주택의 경우 기존 주택보다 용적률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추려면 정부가 공공분야에서 꾸준히 모듈러주택을 발주할 필요도 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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