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 인터뷰] “尹, 北 올인했던 지난 5년에 ‘지각생’ 신세…한미 동맹 강화 방향 적절”
“미-중의 한중간이 균형외교는 아냐…우선순위 고려한 균형외교 외쳐야”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 복원을 강조하는 외교정책이 다시 시험대에 섰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기간 중인 4월26일 시사저널은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북한·중국과의 관계에 치중한 전임 정부와 달리, 틈이 벌어졌던 한미 동맹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외교안보의 방향타를 제대로 잡았다고 평가했다. 신 전 대사는 "한미 동맹을 핵심축으로 해서 한일 관계를 강화하고, 한중, 한·러시아 관계를 관리하는 접근방식은 맞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신 전 차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라면서 결코 먼 땅의 남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해서는 '간접지원'이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적정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신 전 차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1·2차관과 장관 직무대행을 역임한 38년 외교 베테랑이다. 주일대사도 역임해 일본통으로도 통한다.
"중·러 자극할 필요는 없어…비상시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미·일을 상대로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만큼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일 텐데, 어떤 맥락과 흐름으로 봐야 할까.
"'복합대전환의 소용돌이'라고 할 만큼 실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와 세계 정세엔 큰 변화가 있다. 미·중 격돌 심화로 동아시아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구축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물론 정보화와 세계화 등을 이끌었는데, 중국의 거대한 도전으로 인해 그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조차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자국 우선주의에 나서며 그 질서를 흔들고 있다. 여기에 팬데믹과 기후위기, 그에 따른 자원 가격 급등과 에너지 전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구절벽 등 세계경제 질서에 엄청난 변화를 줄 수 있는 충격들이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은 포스트 탈냉전 시대 복합대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돈 상태다."
그만큼 지금의 외교적 선택이 중요하겠다.
"지금 대한민국 외교는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가장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물론 국력은 주요 10개국(G10)에 속해 있다고 할 만큼 역사상 가장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측면은 바로 우리의 취약성이다. 우리에겐 G10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취약한 점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취약점들이 있나.
"먼저 우린 분단국이다. 또 대외의존도가 너무 높다. 무역과 자원, 에너지 의존도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북핵이라는 안보 이슈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의존도 크다. '전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한국과 폴란드'라는 브레진스키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말은 과언이 아니다. 세계 10위권 국가가 됐지만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 1~4위가 다 한반도 주변에 몰려 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좌표와 방향은 어떻게 평가하나.
"큰 방향에서 대체로 국제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고, 우리 국력에 걸맞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금은 한국의 생존 기반이 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국·일본·유럽·호주·캐나다 등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를 잘 유지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생존과 평화, 번영을 확보해야 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한미 동맹을 핵심축으로 해서 한일 관계를 강화하고, 한중, 한·러시아 관계를 관리하는 접근방식은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외교전략이 지나친 '미국 일변도'로 읽혀 중국·러시아의 반발을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우라고 본다. 한미 동맹을 강화한다는 게 한중 관계를 버린다는 '제로섬 관계'라고 한다면 그런 염려는 타당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한미 관계를 축으로 한중 관계도 상호존중과 협력을 통해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지각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간 국제질서가 크게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북한 이슈에 올인해 큰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 지각생인 윤석열 정부는 압축적으로 서둘러 해야 할 숙제가 많다 보니 현재 여러 어려움이 있다."
"우크라 전쟁, 결코 먼 땅의 남의 일 아냐…무기 '간접지원' 해야"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한 '균형외교'가 더 국익을 위한 전략 아니냐는 반문도 상당하다.
"균형외교를 말할 때 그 균형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미·중의 한중간에 서있는 걸 균형외교라고 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 미국은 동맹국이고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다. 우선순위를 고려한 균형외교를 외쳐야 한다."
오늘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보나.
"문재인 정부 5년간 틈을 보였던 한미 동맹을 복원하는 작업이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 이뤄졌다고 본다. 이번 회담을 통해서는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양국이 전 세계에 동맹의 굳건함을 알렸다고 본다. 미국의 70여 동맹 관계 가운데 역사상 가장 성과가 있는 동맹이 한미 동맹이 아닐까 싶다. 그 기틀을 미래를 향해 다졌다는 의미가 있다. 동시에 복원된 한미 동맹이라는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고 본다."
회담 전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을 두고 큰 논란이 일었다.
"지원 여부를 논하기 전에 우크라이나 사태 전후 과정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다.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탈냉전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시작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태가 바로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유엔 상임이사국이자 핵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러시아가 유럽에서 두 번째로 땅이 넓은 나라를 침공했다. 이 전쟁이 어떻게 귀결되느냐가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다. 결코 먼 땅의 일이 아니다. 한국과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크라이나 사태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 즉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흐름으로 종결되는 게 우리의 최대 이익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16개국이 우리를 도와줬고, 그 덕분에 우린 공산화를 막고 지금의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우리 국력에 걸맞은 기여도 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국익 전반을 고려한 타당한 조치는 무기의 간접지원이라고 본다. 현 정부의 입장이 바로 그러하다. 적절한 스탠스를 취했다고 본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국익을 지키는 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속도 조절은 중요하다.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 전환에 있어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너무 급작스럽게 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은 유의해야 한다. 불필요하게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당당하게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을 설명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가면, 방향 조정에 따른 마찰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한한령 때처럼 중국·러시아의 보복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제재나 보복이 있을 때 우리가 얼마나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고 취약 요소를 사전에 대비할 필요는 있다. 결국 공급망 문제가 핵심일 텐데 사전에 위험 요소를 줄이고, 우리의 취약점을 미리 파악해 대안을 다각도로 준비해 놓는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 놓는 일은 중요하다."
한·미·일 공조 강화는 결국 북핵 문제 때문이다. 우리의 대북 기조는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겠다는 의지, 그 길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일은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협상장으로 나오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현실적으로 지금 이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의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 문제가 최우선 순위에 올라와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무장국 완성으로 가는 것에 대한 대비책 강구에 더 힘을 쏟을 때라고 본다. 결국은 억지와 방어 능력 강화가 핵심이다."
"여론과 멀어지면 정부 정책 추동력 잃어…尹, 대국민 소통에 더 힘써야"
주일대사를 역임했다. 윤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 이후 강제징용 해법에 대한 국내 반발 여론이 상당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 문제는 결국 정치적 결단에 의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사안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현안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충돌'이라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우리 정부는 1965년부터 50년 넘게 협정이라는 기준 속에 피해자 보상 등의 조치를 취해 왔는데 2018년 판결로 상호 충돌하게 됐다. 이에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인 한국에 '한국은 약속도 안 지키고, 국제법도 안 지키는 나라'라고 외치게 됐고, 국제적으로 도덕적 우위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뒤바뀌게 됐다. 한마디로 이번 결정은 윤 대통령이 커다란 전략적 이익과 목표를 위해 전술적 손해를 감수한 것이다. 그런 결단을 한 점은 평가한다."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아쉬운 점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득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모자랐다. 컵에 절반의 물이 채워졌고, 나머지가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으로 채워지고, 한일 관계 개선의 긍정적 효과가 가시화되어 국민의 지지를 얻게 된다면 매끄러운 해결로 이어져 훗날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레거시(유산)로 남을 수 있다고 본다."
엄중한 국제 정세 속에서 윤 대통령과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지금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국민과의 소통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의 지지는 매우 중요하다. 여론과 멀어지면 어떤 정책도 추동력을 받기 어렵다. 현대 외교의 특징 중 하나는 국내 문제가 국제 문제이고, 국제 문제가 국내 문제라는 점이다. 당연히 대국민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민과 다양한 채널로 소통하면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구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윤석열 정부가 충분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윤 대통령이 외교안보 인터뷰를 주로 외신과만 하고 있다. 물론 국제사회에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외신 인터뷰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언론과도 적절한 소통이 필요하다. 지금 현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큰 방향은 대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을 열심히 해놓고 국내적으로 평가를 못 받고, 오해를 살 이유가 무엇인가. 여론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 대한민국호의 방향키를 지난 정부 때와 다르게 바꾼다면, 그 배에 올라탄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줘야 불안하지 않고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여론의 지지가 있어야만 정부도 필요할 때 좀 더 과감한 조치에 나설 수 있다."
야당과의 소통도 중요하지 않나.
"물론이다. 외교는 최대한 초당적으로 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사법 리스크 때문에 직접 제1야당 대표와 접촉하기 어렵다면 원내대표 등의 채널을 통해 소통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민, 특히 중도층에 정부가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굉장히 호의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또 다른 제언을 한다면.
"최근 대통령의 외교안보 메시지가 입길에 많이 오르고 있다. 좋지 않은 신호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에 좋지 않다. 이번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메시지의 주요 취지는 틀리지 않았다. '과거사 때문에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전체 취지가 '무릎 꿇는' 등 일부 표현이 논란이 되면서 다 사라졌다.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의 메시지 관리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인터뷰가 효과를 내기는커녕 부담이 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처럼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방법론이 취약하면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대통령 발언은 정부 최후의 보루로서 무게가 있는 만큼 가급적 장관이나 고위급이 대외적 메시지를 발신하고 매우 선택적으로 무게를 실어 대통령이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좀 더 총리, 외교부 장관, 외교부 대변인 등을 활용해 다층적 발신을 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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