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숙 서울시장’은 안 된다 [한겨레 프리즘]

조혜정 2023. 5.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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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드라마 <퀸메이커>. 넷플릭스 제공

조혜정 ㅣ정치팀장

(*이 글은 드라마 <퀸메이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표를 마감하겠습니다. 10, 9, 8, 7, 6, 5, 4, 3, 2, 1!”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에 맞춰, 선거대책위 사무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던 관계자들이 카운트다운을 합창한다. “1!” 소리가 끝나자마자, 화면을 가득 메우는 건 오경숙 국민개혁당 후보가 득표율 84.2%로 당선됐다는 컴퓨터그래픽. 응? 개표 마감 카운트다운? 대한민국이 전자투표를 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99.9%의 확률로, ‘투표’ 마감과 그 직후 방송사들이 공개하는 ‘출구조사 결과’를 ‘개표’와 실제 ‘선거 결과’로 둔갑시킨 거다. 실소가 터졌다. 인권 변호사 오경숙이, 재벌가의 온갖 지저분한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던 해결사 황도희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장이 된다는 넷플릭스 드라마 <퀸메이커> 마지막회를 보다가 있었던 일이다.

구성과 설정, 캐릭터, 연출 같은 드라마 비평의 요소를 싹 빼고도, 이 드라마가 선거와 정치를 다룬 시각과 내용은 문제적이다. 가장 먼저, 이 드라마는 ‘깨끗한 정치’가 승리한다는 환상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기저에 흐르는 핵심적인 정서는 정치혐오다. 정치인은 정당을 가리지 않고 모두 협잡꾼에 썩어빠진 기득권층이라는 전제는, 필연적으로 이 판에 물들지 않은 ‘새 피’를 부른다. 정치 신인 오경숙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극적으로 압승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한다.

지난 4월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의 첫 토론회에 참석한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상민 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물론 현실 정치에서도 이런 기제가 작동한다. 주요한 선거를 앞두고 으레 등장하는 ‘제3지대론’이 대표적이다. 여당은 잘못했고 야당은 잘한 게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일 때, 그래서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이 늘어날 때 제3지대론은 힘을 얻는다. 최근엔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에서도 활동했던 금태섭 전 의원 등이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성찰과 모색)을 띄우고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30석 확보를 목표로 한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올 들어 30%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 마음 둘 곳 잃은 무당층을 겨냥한 것이다.

제3지대 신당 창당의 조건은 무르익은 듯하다. 유권자의 마음도 잘 파악한 것 같다. 그런데 빠진 게 있다.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거지? 금 전 의원은 지난 18일 성찰과 모색 토론회에서 신당이 “기존 정당들의 행태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반사체’가 되는 데서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비전을 제시하는 ‘발광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무당층이라 해도, 얘는 싫고 쟤는 아닌 것 같다는 감정만으로 투표하진 않는다. 기존의 얘와 쟤를 넘어서는 또 다른 세력이 나타난다 해도, 그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건지 가치와 비전을 보여줘야 동의하든 비판하든 태도를 결정한다. 최근 20년 동안 제3지대를 표방하는 정당과 인물이 끊임없이 등장했지만 정치개혁을 추동하거나 선거에서 크게 승리한 사례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 비×’라는 ‘반명제’(안티테제)만으로 정치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명제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반명제는 태생적으로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성찰과 모색은 아직 반명제에 머물러 있다. “지금 무당층은 과거와 다른 ‘학습된 무당층’이다. 이쪽저쪽에 (권력을) 줘도 소용없다는 무용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24일치 <동아일보> 인터뷰)는 금 전 의원의 말이 이를 보여준다.

드라마 속 오경숙은 서울시장 선거 내내 상대 후보인 백재민의 재개발에 반대한다는 반명제만 반복했고, ‘황제 육아 의혹’과 ‘불륜 폭로’ 등 네거티브 선거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걸 현실로 착각해선 안 된다. 반대와 비판은 언론과 시민단체의 영역일뿐더러, 이들도 틀에 박혔다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대안을 낸다. 하물며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정치는, 더더욱 가치와 비전으로 경쟁해야 한다. 오경숙은 서울시장이 될 수 없다.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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