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1억' 핫플이 어쩌다가…일산 '라페스타'의 몰락 [현장+]
스타필드·이케아로 수요 분산…트렌드 둔감도 '한몫'
"2000년대 중반에 라페스타가 어땠냐고요? 지금의 스타필드와 비슷했다고 보면 될 거예요. 음식점, 옷 가게, 놀거리 등 없는 게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잘 안 오게 돼요. 인스타그램에서 관심이 많은 음식점이나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곳곳에 빈 상가들도 많아서 휑한 느낌도 들고요. '추억의 장소'가 됐죠."(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35세 최모씨)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달 28일. 기자가 찾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라페스타'는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다. 사람이 한창 붐빌 점심시간인데도 라페스타를 찾는 시민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메인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곳곳에 '임대문의'·'무권리 급 임대' 등 세입자를 찾는 안내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상가동 내부는 더 조용했다. 문을 열지 않은 상가들도 많은 데다 문을 열었더라도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가게가 더 많았다.
일명 '라페'라고 불리는 라페스타는 2001년 착공해 2003년에 개장한 일산신도시의 대표적인 상업지구다. 개장 20년을 맞았다. A동부터 F동까지 총 6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총길이는 약 300m, 폭 28m의 거리 양쪽에 상가건물이 3개씩 마주 보고 있다. 각 건물이 원형 구름다리로 연결된 구조다. 구름다리 밑엔 조명시설을 갖춘 야외 공연무대도 있다.
라페스타에서 만난 박모씨(34)는 "정말 오랜만에 라페스타에 왔다"며 "요즘엔 인근에 있는 스타필드나 이케아 등을 자주 가다 보니 라페스타 상권이 이렇게 무너진 지 몰랐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웨스턴돔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나마 근처에 일산 MBC 등이 남아있어 점심시간을 틈타 식사를 해결하러 나온 직장인들이 웨스턴돔에 있는 식당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인근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이모씨(38)는 "일산에 MBC 예능국이 있었을 땐 더 활기찼는데 상암으로 이전하면서 요즘은 많이 조용해졌다"고 설명했다.
'권리금'커녕…보증금·임대료 '반토막'
라페스타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라페스타 메인거리 1층에 있는 상가 중 통상 세입자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코너 상가' 실평수 15평형의 보증금은 5000만원, 임대료는 200만원 수준이다. 라페스타 전성기 시절엔 보증금이 1억원 가까이, 임대료는 600만원대에 육박하던 시기도 있었다.
권리금도 1억원 이상 붙은 곳이 많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차츰 권리금이 사라지고 보증금과 임대료도 급락했다는 게 현지 공인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사장님'을 기다리는 빈 상가도 여전하다. 라페스타쇼핑몰 관리단에 따르면 이달 기준 330여개 매장 가운데 45곳(13%)이 비어있다. 상가 10개 중 1개 이상이 비어있는 셈이다.
일산동구 장항동 A 공인 중개 대표는 "일부 상가의 경우 수년째 빈 상가로 방치된 곳도 있다"며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와야 장사가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임차인들도 잘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들어선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게 일대 공인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장항동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수년동안 상권이 침체하다보니 권리금도 없고, 임대료도 대폭 낮아진 상황"이라면서 "가격이 낮아지면서 최근 들어 월세 200만원 이하의 매물은 조금씩 거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페스타 '몰락'한 이유는
라페스타 상권이 위축된 시기는 인근에 스타필드, 이케아 등 대형 쇼핑몰과 볼거리가 있는 공간이 들어서면서다. 최근엔 파주시 야당동을 중심으로 '먹자골목'까지 생기면서 수요가 더 분산됐다. 라페스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일산신도시 인근엔 '복합쇼핑공간'이 없었다. 라페스타에 이어 웨스턴돔, 원마운트 등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일산신도시를 조성한 것은 당시 과열됐던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를 해소하기 위한 '베드타운' 성격이었다"며 "라페스타가 처음 들어설 때만 해도 주변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주변이 개발되면서 볼거리, 먹을거리가 늘어나면서 라페스타를 찾는 수요가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도 라페스타가 침체한 배경으로 꼽힌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운영하는 스타필드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주기적으로 입점사를 바꾼다. 최근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있는 맛집 골목은 '고메 스트리트'로 리뉴얼하면서 MZ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샤브샤브&스키야키 다이닝 브랜드 '노야샤브' 1호점, 줄서는 중식당 '무탄'의 2호점이 입점했고, 오는 6월엔 샌프란시스코 대표 수제 버거 브랜드 '슈퍼두퍼', 페이스트리 장인 나인경 셰프가 메인으로 선보이는 '소울마켓 베이커리' 등도 문을 열 예정이다.
또 다른 상업용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라페스타의 경우 상점을 개인에게 분양하고 소유권을 넘기는 방식"이라면서 "처음 분양할 때는 다양한 업종을 입점시킬 수 있지만 수년 동안 유지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사가 잘될 땐 몰라도 상가가 침체하기 시작하는데 임차인을 가려 받을 수 있겠느냐"면서 "그러다 보니 '트렌드 둔감→관심도 하락→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했다.
라페스타를 활성화하려면 지역에 맞는 특화 시설을 유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전무는 "시작은 복합 쇼핑몰이었다고 해도 이곳을 찾는 수요가 줄어든 만큼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성격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기 고양=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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