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천국 中, 드디어 '부동산세' 준비…성공할 수 있을까 [김지산의 '군맹무中']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중국의 강산은 우리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 후손들이 이를 계승해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8대 원로 중 한 명인 천윈 전 부총리는 생전에 덩샤오핑 주석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대대손손 권력과 부의 세습을 제의했더니 덩 주석이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에 방문교수를 다녀간 베이징대 외국경제학설연구센터 샤예랑 부주임이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폭로한 내용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 공산당 혁명에 성공한 중국이지만 천윈의 말에는 봉건적 색채가 깊이 스며 있다. 마오쩌둥과 장제스라는 영웅들이 천하의 주인 자리를 놓고 다툰 끝에 마오쩌둥이 승리하면서 중국을 쟁취했으니, 공산당이라는 이름의 마오쩌둥 일파가 중국의 주인인 게 당연하다는 식의 사고다. 유방과 항우 대결에서 유방이 승리하고 한나라를 세우면서 유방 일파가 중국을 접수한 것과 같다.
단순히 천윈의 말 한마디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중국에서 부의 세습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최소한의 기회의 평등을 담보하기 위한 재산세나 상속세, 증여세 같은 것들이 중국에 없는 건 지배와 피지배의 항구적인 구분을 위한 장치나 다름없다.
'부익부 빈익빈' 중국에서 최근 주목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부동산 등기 통일 시스템 구축 뉴스다.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25일 기사에서 왕광화 자원자연부 부장을 인용해 "지난 10년간 노력해온 모든 부동산 물권의 통일등기 제도를 전면 실현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2013년부터 지방정부마다 제각각이던 부동산 등기 업무와 자료, 정보 플랫폼 등을 통일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2013년은 시진핑 주석이 후진타오에 이어 최고 권력자로 우뚝 선 해다. 시 주석은 권력 쟁취와 동시에 재산세 도입을 추진해온 것이다. 시 주석의 핵심 정책 과제 '공동부유'가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다.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제일재경은 관련 연구기관인 중위안부동산 장다웨이 수석분석가를 인용해 "이번 부동산 통일 등기의 전면적 실현으로 보유세 도입 요건이 모두 갖춰졌다"며 "당장 제도 시행은 어렵겠지만 점점 도입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부동산세가 집값을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한 블로거는 부동산세 도입에 대한 저항이 너무 커 부과하더라도 낮은 세율이 될 거라고 주장했다. 징수 강도가 강할수록 조세저항이 강할 거라고도 했다.
조세 감면 조건을 예측하기도 한다. 1인당 최소 면세 조건이 있어야 기본 주거 수요가 보장된다는 이유에서다. 부동산세 시범 도시인 상하이와 충칭의 경우 1인당 60㎡, 3인 가족의 경우 180㎡ 이상 면적에만 과세한다. 집값이 평균 가격을 넘어서면 가중치를 부여하는 기준도 있다. 한국의 종합부동산세와 일정 부분 맥락이 통한다.
부동산세를 도입한들 집값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희망 섞인 기대를 내비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서울을 예로 들었는데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다양한 집값 억제 도구들이 있었지만 2005년 이후 서울 집값은 연평균 13%씩 상승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주춤했다고 했다.
단, 비인기 지역은 얘기가 다르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경우 단돈 1달러에 빌라를 내놔도 팔리지 않는 곳들이 많은데 이유는 구매 이후의 '세금 폭탄' 때문이라고 한다. 1달러에 집을 사더라도 3년 전 가치인 6만달러가 과세 기준으로 책정돼 부동산세 6.82%가 부과된다. 연간 4091달러를 보유세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류의 글은 권력층, 부유층이 주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1선 도시와 톈진, 충칭 등 직할시에 거주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부동산세 도입이 재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만큼 저항이 강할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소지가 다분하다. 중국은 지난 1994년 재정 시스템 개혁을 통해 지방정부 세수의 절반 이상을 중앙정부로 상납하게끔 했다. 중앙정부 살림의 80%를 떠받치고 자신들은 알거지로 전락하게 되자 지방정부들의 조세 저항이 시작됐다. 당시 주룽지 총리는 지방정부들과 타협점을 찾았는데 지방정부 재량으로 토지를 판매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런 세입 구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지방정부 땅장사가 시원치 않은 판에 부동산세를 도입할 경우 지방 세수는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된다. 버블의 끝이 뭐가 됐든, 부동산 경기가 식어서는 안 되는 위험천만한 행진인 셈이다. 지방정부들이 부동산 통합 등기 시스템 구축에 비협조적이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2023년 경제 정책 목표로 '안정 속 성장'을 택했다. 부동산세 도입과 부동산 경기 회복은 공존하기 어려운 시도다. 여기에 공산당원, 부유층 등 기득권의 조세저항과 지방정부의 세수 포함 수입 감소는 '안정'과 거리가 멀다. 이들에게 '안정 속 성장'은 '소리 없는 아우성'만큼이나 와닿지 않는 구호일 뿐이다.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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