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4시]인도-태평양 新지정학의 도전
북핵 위협은 우리의 지정학적 리스크…자율성도 제약
판 바뀌는 세계질서 속 정교한 국가전략 모색해야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강조하는 미국과 함께하려는 나라들과, 국익을 내세우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익균형을 찾으려는 나라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세계가 자본주의로 통합됨에 따라 이념과 가치에 기초한 진영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규칙기반질서를 내세우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중국 약화시키기’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맞선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통적 유대를 공고히 하면서, 일대일로를 통한 영향력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말에 공개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3대 원칙으로 포용, 신뢰, 호혜를 제시하고,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공고한 상호 신뢰에 기반해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을 추구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3월에 공개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을 위한 새로운 계획’에서 다양성, 포용성, 개방성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대화를 통한 규칙 만들기’를 강조하고, 지정학적 경쟁을 추진하지 않고 ‘국가 사이의 평등한 파트너십’과 ‘사람에 초점을 맞춘 접근’을 추구한다고 밝힌 점이다. 미국 주도의 규칙에 무조건 추종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일본의 새로운 계획인 것이다.
미국은 중국 약화시키기에 초점을 맞춘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을 추진하려고 하지만, 한국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고 북한을 겨냥한 ‘비확산·대테러 협력 강화’를 위해 역내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을 증진하고자 한다. 그리고 경제안보 네트워크 확충 차원에서 개방적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는 등 보호주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 국가들이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지정학의 축을 옮기려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미도 있지만, 인도와 아세안 국가들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규칙은 다른 말로 표준을 의미한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미·중 전략경쟁은 워싱턴 컨센서스와 베이징 컨센서스 사이의 표준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인도가 어느 편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세계표준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비동맹중립주의를 견지해온 인도는 미국과 중국 심지어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 사이의 복합적 상호의존성을 고려할 때 신냉전과 지정학적 관점에서 지역전략을 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은 모든 나라가 국익의 관점에서 지정학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핵을 가진 북한과 강 대 강 대치를 하고 있는 핵을 갖지 못한 대한민국의 정책적 자율성이 제한받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의미의 `안미경중`(安美經中)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보와 경제 모두 미국이라는 의미의 `안미경미`(安美經美)란 말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에 따른 우리의 정책적 자율성이 제한받은 결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력으로 공포의 균형을 잡을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미국 주도의 규칙기반질서와 가치사슬에 편승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위협은 우리의 지정학적 리스크이며 대외전략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근원이다.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 부상한 것은 냉전구조의 지정학에 편승해서 미국이 선도하고 북한이 채찍질했으며, 탈냉전의 지정학에 편승해 중국과의 노동분업을 심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우리의 발전을 촉진했던 요소들이 신지정학의 도전으로 작용할 것이다. 판이 바뀌는 세계질서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정교한 국가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권오석 (kwon032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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