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해결사? 주범?…AI의 두 얼굴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공상과학(SF) 소설가이자 미래학자인 윌리엄 깁슨이 1993년 8월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 말입니다. 미래가 성큼 다가왔지만, 모두가 체감할 만큼 전파가 되지 않았다 뜻입니다. 깁슨의 표현을 빌리면 AI는 이미 와 있는 미래처럼 보입니다. ‘챗GPT(ChatGPT)’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생활 전반에 퍼져나가고 있어섭니다.
AI는 의료·법률·예술 등 다양한 부문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환경분야도 예외는 아닙니다. AI는 기후변화와 재난을 예측하기도 하고, 건물의 냉난방 시스템을 최적화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기술 발전으로 초래된 환경문제를 기술의 최정점에 있는 AI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AI 학습에 엄청난 전기가 사용돼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AI와 환경문제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을 짚어봅니다.
◆ 불법벌채 감시·농업부문 활용…'환경지킴이' 역할
영국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AI가 농업·물·에너지·운송 부문에 적용될 경우,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2.4Gt) 가량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는 호주·캐나다·일본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선 이미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AI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리만 듣고 불법 벌채를 잡아내는 AI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영리단체 ‘레인포레스트 커넥션’은 불법 토지 개간을 막기 위해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가디언’이라고 불리는 음향 모니터링 센서를 나무에 부착해, 숲소리를 녹음한 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합니다. 머신러닝 모델은 전송받은 녹음 파일을 분석해 전기톱이나 트럭 소음 등 불법 벌목과 관련한 잡음을 잡아내 관계 당국에 전달합니다. 이 기기는 브라질·인도네시아·콩고·필리핀 등 35개국에 걸쳐 600여대가 설치됐습니다.
아프리카 코뿔소를 지켜주는 AI 팔찌도 있습니다. 밀렵과 서식지 파괴 탓에 코뿔소는 대표적인 멸종 위기동물로 자리잡은지 오래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본사를 둔 ‘루셀 테크놀로지’는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팔찌를 개발했습니다. 팔찌는 코뿔소의 위치·행동 패턴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합니다. 코뿔소가 밀렵꾼으로부터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이 장치는 케냐·남아프리카 등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농업부문에서도 AI 활용도는 큽니다. 독일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인 애그볼루션(Agvolution)은 태양열로 작동하는 센서를 통해 온습도, 토양수분 등 미세한 기후정보를 수집합니다. 이를 토대로 작물의 생육상태를 파악한 뒤, 물과 비료의 적정 투입량을 계산합니다. 이를 통해 생태적, 경제적 효율성을 최대 40%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국내에도 환경부문에 AI기술을 사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재활용을 돕는 로봇 ‘네프론’입니다. 3월 기준 전국에 162대가 설치된 로봇은 페트병과 캔을 분리해서 버리면 포인트를 적립해줍니다. 로봇에 탑재된 AI ‘뉴로지니’는 학습한 데이터를 토대로 투입된 패트병과 캔의 재활용 가능 여부를 판단합니다.
◆ 훈련 과정서 막대한 양의 탄소 배출…'환경오염 주범' 지적도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AI를 훈련시키는 데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됩니다. AI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엠마 스트루벨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 연구진은 2019년 발표한 논문에서 AI모델을 한번 훈련시킬 때마다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총량을 계산했습니다. 구글의 AI모델 버트(BERT)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38파운드(652kg)에 이릅니다. 이는 비행기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왕복으로 오갈 때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같습니다. 미국 자동차 5대가 평생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총량과 맞먹는 양이기도 합니다.
버지니아 디그넘 스웨덴 우메아대 교수도 ‘AI의 환경 발자국’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AI를 이용할수록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음성인식 앱이나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콘텐츠를 알려주는 알고리즘조차 상당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밝혔습니다.
AI 컨설팅 회사인 알파벤처의 함마드 칸 CEO는 “AI 모델을 학습시킬 때 사용하는 프로세서와 칩에 대량의 실리콘·플라스틱·구리가 필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대량의 탄소 배출과 쓰레기가 나온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알고리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설계해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머신러닝 전문가인 크지슈토프 소플라는 “엔지니어들은 훈련과 추론에 사용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설계할 때 에너지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원을 사용해 전력을 공급하는 것도 방법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AI 개발에 뛰어든 테크기업들도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탄소 배출량 제로 혹은 중립’을 약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글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사무실과 데이터센터를 무탄소 에너지로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AI의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 영향을 측정하는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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