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기본법` 국회 문턱 넘었지만…셈법 복잡해지는 가상자산 업계
'글로벌 1위 거래소' 바이낸스 韓 진출 놓고 금융당국 고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상자산 시장은 제도권 내로 진입하는 과정에서도 부침을 겪을 전망이다. 최근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관련 법안이 국회 첫 문턱을 겨우 넘었지만, 여전히 산적한 문제들이 많아서다.
현재(30일 오후 4시 코인마켓캡 기준)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은 2만9200달러(약 3910만원)선에서 거래 중이다. 전통금융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가상자산이 대체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관련 제도 정비는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상자산 거래소 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시작이 반?…가상자산법 제정안, 첫 관문 통과=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그간 발의돼있던 18개 가상자산법 제정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통합안으로 정리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의결했다. 지난 2021년 5월 첫 제정안이 발의된 이후 약 2년여 만이다. 이용자 자산 보호를 비롯해 불공정거래 규제와 처벌, 감독 및 검사 등을 골자로 한다.
세부적으로는 가상화폐, 암호화폐, 암호자산, 디지털자산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던 용어를 '가상자산'으로 통일하고 금융위원장에게 가상자산을 자문하는 가상자산위원회를 신설키로 했다.
더불어 가상자산사업자의 책임도 강화했다. 거래소가 이용자 자산을 보관할 때는 이용자로부터 위탁받은 종류와 수량의 가상자산을 현실적으로 보유해야 하고, 해킹·전산장애 등 사고에 대비해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 불공정거래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는 투자자 보호에만 초점을 맞춘 '1단계' 입법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의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은 늦어도 5월 초쯤엔 가능하지만, 최종 관문인 본회의 통과까지는 수개월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또 2단계, 3단계 입법을 거쳐 법안을 '완성'하려면 추가로 1년 이상이 더 걸리는 셈이다. 법안이 통과한 후 실제 시행까지도 격차가 있다.
이석준 서울회생법원 판사는 지난 28일 바이낸스와 블록체인법학회가 주최한 디지털혁신학술포럼에서 "법원 시스템에 나와있는 가상자산 관련 판결 건수가 1만건 이상으로, 민사·형사·행정 분쟁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무소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질문에는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대체불가능토큰(NFT)·스테이블 코인 등 가상자산 시장의 각 개념에 대해 여러 겹치는 부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또 어떤 법률로 규율할 것인지 명확한 규정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같은날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도 "이대로 라면 미래 디지털 경제 시대에 우리의 암호화 자산 결제 서비스를 가지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거대 메기' 바이낸스 들어올까…고심하는 금융당국= 이와 별개로 시장 내에서는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글로벌 1위 거래소 바이낸스의 한국 진출을 두고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면서다.
바이낸스는 지난달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의 운영사 스트리미의 지분 41.22%를 인수하고 가상자산 사업자 변경신고서를 제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레온 풍 바이낸스 아태지역 대표가 고팍스 대표도 함께 맡고 있다.
FIU는 당초 이달 19일까지 결론을 내려야 했으나, 현재 추가 보완 서류 검토를 이유로 심사 기간을 연장한 상태다. 글로벌 거래소 진입에 따른 각종 리스크가 걸리는 셈이다. 바이낸스는 무국적 거래소인 데다가 자금세탁 위험이나 투자자 보호 등 이슈 발생 시 당국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바이낸스 코리아'를 통해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가 2021년 철수한 바이낸스는 재진출 하려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좌(실명계좌)를 획득하는 등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준수해야 하지만, 국내 거래소를 인수하는 방식의 우회로를 선택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바이낸스 입장에선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체 시가총액 23조원, 가상자산 거래가능 이용자 690만명 수준의 국내 시장에 손쉽게 진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고팍스로서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국내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 있다.
글로벌 거래소의 진입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기존 국내 원화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들도 당국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승인을 거절하기엔 고팍스에 물려있는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국내 5위권 가상자산거래소인 고팍스는 지난해 글로벌 3위 가상자산거래소 FTX 파산 여파로 자체 예치 서비스 '고파이' 상품에 투자자 자금 566억원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낸스와 고팍스 측이 '투자자 자금 보호'에 소구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레온 풍 바이낸스 아태 총괄 겸 고팍스 대표는 디지털혁신 학술 포럼에서 "한국에는 글로벌 유동성이 부족하고, 원화 위주의 거래만이 이뤄지고 있어 결국 자전 거래나 시세조종의 타깃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바이낸스와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향후 글로벌 오더북 공유, 기관 투자자 거래 허용 등을 통해 전체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현재 가상자산 관련 규제가 공백 상태인 만큼 (당국에서도) 바이낸스의 진출에 더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각에서는 바이낸스의 국내 진출이 오히려 국내 시장 전체 파이를 확대하거나 반대로 국내 거래소의 해외 진출 허용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고 말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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