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주문에 꽃 배달, 중고차거래까지… 비금융 사업 영토 넓히는 은행
하나은행, 스포츠·엔터로 보폭 넓혀
비금융 사업, 브랜드 경쟁력 강화 도움
日 은행, 농장 운영에 핀테크 자회사 설립
최근 은행이 본업인 금융 서비스 이외에 다양한 업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음식 배달 앱 ‘땡겨요’를, KB국민은행이 알뜰폰 사업인 ‘리브엠’을 선보이며 첫발을 뗀 가운데 다른 시중은행도 여러 제휴사와 손잡고 비금융 사업 진출을 모색 중이다.
은행이 비금융 사업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 중심의 전통적 사업 방식에만 집중해서는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금리 인상이 마무리되면서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어진 데다, 예대마진을 줄이라는 정부와 금융 당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어 은행의 고민이 더욱 깊어진 상황이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 금융 당국의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이 농업과 관광업, 환경 등 여러 업종의 비금융 자회사를 설립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 금융 당국도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쳐 국내 은행의 비금융 사업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 신한·NH농협, 통합 플랫폼 구축 박차
비금융 사업에 가장 활발하게 뛰어들고 있는 곳은 시중은행은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이다. 두 은행은 단순히 본업에 비금융 사업을 일부 추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금융을 중심으로 여러 생활 밀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21년 12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땡겨요를 출범하며 비금융 사업에 첫발을 뗀 후 현재 마켓플레이스 뱅킹 플랫폼 구축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마켓플레이스 뱅킹 플랫폼은 비금융 회사가 자사 플랫폼에 예금과 대출, 결제 등 금융 기능을 접목하는 형태의 ‘BaaS(Banking as a Service) 모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은행이 주가 돼 다양한 비금융 서비스를 융합해 확장하는 형태를 뜻한다.
신한은행이 지난해 11월 국내 은행 가운데 최초로 선보인 메타버스 뱅킹 플랫폼 ‘시나몬’은 현재 신한은행 모바일 앱인 ‘쏠(SOL)’을 중심으로 땡겨요 외에 GS25(편의점), 종근당건강(헬스케어), KBO(프로야구), 서울옥션(예술품) 등 여러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비금융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시나몬은 출범 5개월 만에 가입자 수 10만명을 넘어섰다.
NH농협은행은 종합금융플랫폼인 ‘NH올원뱅크’에 카드, 보험, 증권 등 비은행 금융 거래 외에 다양한 생활 편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플랫폼에는 온라인 쇼핑과 꽃 배달, 축산물 구매·배송, 택배, 부동산 거래 정보 등의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
하나은행도 최근 비금융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21년 8월 자동차 경매 전문업체인 카옥션과 손잡고 비대면 중고차 거래 서비스인 ‘원더카 직거래’를 출시했고 스포츠와 음악, 라이브커머스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하나은행의 모바일앱 ‘하나원큐’에 지난해 7월 뮤직박스, 9월에는 스포츠 카테고리를 신설해 앱에서 금융 거래를 하면서 경기 입장권이나 공연 좌석 등을 구매하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의 경우 경쟁사에 비해 비금융 사업 진출이 다소 더딘 편이다. 우리은행은 2021년 8월 택배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아직 이렇다 할 신규 사업 추진 실적이 없다. KB국민은행 역시 2019년 기존 통신사 망을 임대해 알뜰폰 사업을 시작한 후 별다른 추가 서비스는 선보이지 않았다.
◇ 비금융 사업 ‘땡겨요·리브엠’ 아직 적자 허덕
매년 수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는 시중은행의 실적에서 비금융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출범 3년째를 맞는 신한은행 땡겨요의 경우 월간 활성이용자수(MAU)는 50만명대로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에 이어 배달 앱 순위 4위에 올랐고 지난달 가입자 수 192만명을 돌파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의 리브엠 역시 지난 2020년 139억원, 2021년에는 18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이 적자와 더딘 성장에도 비금융 사업 확대를 모색하는 것은 본업인 은행의 안정적인 경영 여건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식음료 배달과 스포츠·공연 예매, 택배 등 여러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추가해 은행 앱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상공인 등과의 상생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땡겨요의 경우 가맹점에 별도의 입점 수수료와 광고비를 받지 않고 있으며 중개 수수료도 업계 최저 수준인 2%를 적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수수료를 절감하고 신속한 정산과 소상공인·배달라이더에 대한 전용 대출을 실행하는 등 여러 성과를 올렸다”라며 땡겨요에 대한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기간을 2년 연장하기도 했다.
◇ 日, 은행이 농장 만들고 관광상품도 개발
다만 아직 은행들이 비금융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이 서로의 영역을 교차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은행이 비금융 자회사를 설립하는데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금융 당국이 지난 2016년 이후 은행법을 두 차례 개정해 은행이 자체 또는 자회사 설립을 통해 비금융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일본 금융 당국은 지역경제 활성화, 은행업 고도화, 기업 생산성 향상 등 여러 세부유형에 따라 은행의 비금융 자회사 설립을 허용했고 업무 범위에 대한 규제도 완화했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20년까지 일본에서는 14곳의 은행 소유 핀테크 회사가 출범했으며, 홋카이도은행 등 20여개의 지방은행들은 지역 특산품 제조·판매 관련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미야자키은행은 자회사를 통해 농장을 운영하며 농작물을 직접 재배해 판매 중이다.
김혜미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국내의 경우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들은 은행을 포함한 금융업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지만, 은행은 금융과 관련된 업무만 하도록 규제를 받고 있다”며 “은행도 디지털 전환이나 사회적 기여에 도움이 될 만한 비금융 자회사 운영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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