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희망 아닌 실망이 된 노조...10명 중 5명 "불평등 해소·약자 보호 역할 못해"
노조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기여도엔 '갸우뚱'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로 촉발된 노조 편향 탓
"간극 메우려는 노조 자체 노력도 부족" 비판도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처럼 조합원이 아닌 대다수 직장인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해 노조의 기여가 적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대표로서 비조합원의 의견을 듣는 노력은 부족하다.
20대 직장인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직장 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현재의 노조는 사회통합이나 사회적 약자 보호 활동이 미흡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부문·대기업 중심으로 꾸려진 기업별 노조가 노조원의 임금인상·복리증진에 힘써도 이 과정에서 노조가 없는 86% 노동자의 권익은 외면당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 불평등 해소에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이른바 노동계는 기득권을 가진 '그들만의 리그'가 돼 노동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필요성 인정하지만, 지금 노조는 사회에 도움 안 돼"
30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달 초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자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2.7%가 직장 내 노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임금협상(80.5%) △복리후생제도 개선(86%) △업무 환경 개선(81.5%) 등에서 노조가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다.
반면 노조가 우리 사회 전반에 기여하는 바를 놓고는 반응이 냉담했다. '사회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9.5%로 절반에 가까웠고 경제발전(59.7%), 사회통합(58.7%), 사회적 취약계층 보호(54.8%)에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노동시장 내 약자인 비정규직일수록 노조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는 응답률이 정규직보다 높았다.
노조에 대한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300인 미만 민간 사업장 노동자들은 중소기업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불이익 걱정(60%)과 신뢰 부족(41.2%)을 꼽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최근 발표한 인식조사에서도 노조에 대해 '간부, 일부 노동자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응답이 51.4%로 가장 많았다.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운영된다'는 응답은 11%로 가장 적었다.
희망 아닌 실망스러운 존재가 된 노조... 왜?
노조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노조 활동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노조에 대한 실망으로 해석된다. 경험적으로 노조가 노동자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되는 희망적 존재라고 기대하는 반면, 지금의 노조는 노동자 전반의 권익보다는 전체 노동자의 14%에 불과한 조합원 이익 대변에만 몰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은 "한국의 노조는 1987년 민주화운동, 1996년과 1997년 노동법 개악 저항 운동을 펼치면서 단순히 조합원만을 위한 이익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노동계급 조직으로서 활동한 측면이 있다"면서 "시민들은 노조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됐는데, 지금의 노조 활동을 바라보면 중소기업·비정규직 등 대다수 노동자보다는 조합원인 공공부문·대기업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비치기 때문에 거리감과 실망감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가 의도해 대다수의 노동자와 멀어진 것은 아니다. 근본적 원인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화가 꼽힌다. 이전에는 일부 기업별 노조의 활동이 노조원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 권익 향상과 궤를 같이했다면, 노동시장을 대기업-중소기업, 원청-하청으로 나누는 이중구조화가 이뤄지면서 노조 활동의 범위 역시 노조원이 집중된 대기업·원청 노동자에게 국한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비조합원인 중소기업·하청 노동자, 비정규직 등은 노조활동과 분리되는 일종의 '노조의 이중구조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 탓만 하기에는 노조 스스로도 이중구조와 불평등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노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20여 년간 청년실업 심화, 비정규직 800만 명 돌파,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논란 등 노동 약자들은 끊임없이 문제에 맞닥뜨렸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노조의 움직임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노동운동가는 "노조가 조합원을 대변해야 하는 건 맞지만, 지금처럼 노조가 (노동시장 내) 상대적 우위에 있다면 약자를 포함한 전체 이익을 위한 투쟁을 해야 했다"면서 "코로나로 임금 체불·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운동이 필요했을 때 양대노총은 대정부 투쟁, 정치적 활동에만 집중했다. 약자의 분노가 노조에 몰리는 현상을 자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노동시장·지역사회 약자를 위한 활동은 총연맹 차원보다는 산하 노조, 시민단체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이더유니온은 2021년부터 저소득층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라눔(라이더 나눔)' 활동을 전국으로 확산했고, 케이블설치기사·콜센터상담원·방송스태프 등이 조합원인 희망연대본부는 '연대임금'이란 이름으로 하후상박형 임금 교섭을 원칙으로 삼는 등 사업장 내 비정규직 임금 상승에 기여하며 격차를 줄여가고 있다.
여기에 제도가 노조의 장벽을 높인다는 문제도 있다. 단체협약 등 교섭이 기업별로 이뤄지다 보니 결과물도 기업 내에만 주어지게 되고, 새로이 노조를 꾸려 활동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부정적 인식은 여전한 데다 까다로운 설립 절차로 새로운 노조 결성 자체가 어렵다 보니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산별교섭도 법제화되지 않아 노조가 공동체 연대 역할을 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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