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확천금 노리는 투기 문화가 나라 경제 발목 잡는다
중견 상장 기업 8곳의 무더기 주가 폭락 사태가 주가조작 범죄의 결과물로 드러나고 있다. 주가조작 일당은 연예인, 기업 오너, 의사 등 자산가들에게 투자금을 모은 뒤, 투자자 명의 휴대폰을 활용한 대리 투자로 자기들끼리 주식을 사고파는 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주가조작에 동원된 자산가들의 투자금은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조작 일당은 종잣돈의 2.5배까지 주식에 투자한 뒤 나중에 시세 차익만 정산하는 고위험 파생 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를 주가조작 수단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투자금을 제공한 자산가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주가조작 일당은 알음알음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은 뒤, 일임 매매(주식 투자를 대신해주는 일)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일임 매매는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사업자만 할 수 있는데, 이들은 그런 자격이 없었다. 모든 거래 자체가 불법이었다. 이런 음성적 거래에 동의한 자산가들은 결과적으로 손실을 봤기 때문에 자기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가조작 과정에 실탄을 제공하고, 주가 띄우기에 편승해 일확천금을 노렸다는 점에서 사실상 공범에 가깝다.
이번 사건 배경엔 과도한 위험을 무릅쓰고 ‘대박’을 노리는 후진적 투자 문화가 있다. 금융 당국이 2019년 고위험 CFD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투자자 자격을 투자금 5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낮추자 CFD 거래 참여자가 3000명에서 2만4000명으로 늘고, 한 해 거래 규모가 2019년 8조원대에서 2021년 70조원으로 급증했다. 코로나 사태 후 증시 급등락기에 수많은 투자자가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로 코인·주식·부동산 투자에 나섰다가 파산 위기에 몰린 바 있다.
교훈을 얻는가 했더니 올 들어 이차전지 종목을 중심으로 주가가 급등하자 2030세대의 빚투 행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 융자 잔액이 20조원을 웃돌고, 공매도 대기 자금으로 분류되는 대차 잔액도 79조원에 이르고 있다. 모두 작년 말 대비 30%가량 폭증한 것이다. 단타 위주의 투기적 거래 행태는 한국 증시의 변동성을 키우고,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에 일조하면서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건전한 중장기 투자 문화로 자본 시장을 성장시켜 경제의 확대 재생산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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