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한미 기술동맹에서 경제 도약의 실리를 챙겨야 한다
중국의 경제발전 대장정
美, 중국 첨단기술 견제
5년만 늦었으면
한국은 중국에 다 밀렸을 것
윤대통령의 대미 외교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은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워싱턴 선언,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등 성과도, 화제도 낳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더 있다. 4대 그룹 총수를 포함해 122명의 경제 사절단이 동행한 이번 방미(訪美)에서 배터리·바이오·원전 등 첨단 산업에서 협력한다는 양해각서를 50건 체결했다. 대통령 방미에 앞서 지난 2월 초 박진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한미 과학기술협력협정’을 개정 연장하는 의정서에 서명했다.
44년 전인 1979년 1월 28일, 또 다른 대단한 방미 행차가 있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최초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이 미국을 방문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카터 대통령은 국빈 만찬을 개최했고, 중국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보여주려고 공화당 출신 닉슨 전 대통령까지 만찬장에 불렀다. 방미 기간 내내 덩샤오핑은 가난하고 기술도 후진적인 나라 중국이 미국의 선진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드러냈다. ‘죽의 장막’ 뒤에서 경제적 자급자족을 고집했던 마오쩌둥과는 확연히 달랐다. 포드 자동차 조립 공장, 휴스턴 휴스 공작소의 해양 원유 개발용 장비를 둘러보고, 보잉 공장도 견학했다. 휴스턴의 존슨 우주센터에서는 우주선 비행 시뮬레이터 조종석에 앉았다. 텍사스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 사진은 ‘공산주의자’ 이미지 탈색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타임지는 덩샤오핑을 두 차례나 표지 인물로 게재하며 환영했다.
소련 견제라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닿으면서 1970년대 초부터 미·중 화해 무드가 조성됐지만, 양국이 국교를 수립하고 본격적으로 손을 맞잡은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더 흘러서다. 덩샤오핑은 “기술이 경제 성장을 위한 최고의 생산적 역량’이라고 선언한 실용주의 지도자다. 소련을 견제하려고 미국은 덩샤오핑의 관심사에 적극 화답했다. 덩샤오핑의 방미를 전후로 중국이 챙긴 실익은 실로 엄청났다. 미·중 국교가 수립(1979년 1월 1일)되기도 전인 1978년 7월 카터 대통령은 프랭크 프레스 전 MIT대 교수가 이끄는 과학자 대표단을 중국에 파견했다. 프랭크 프레스는 케네디, 존슨, 닉슨, 카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의 과학 정책 브레인이었던 과학자다. 낙후한 과학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 과학자 700명을 미국이 받아달라고 요청하자 프레스는 워싱턴 시각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어 카터 대통령을 깨워서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이듬해 1월 덩샤오핑의 방미 중에는 팡이 국가과학기술위원장이 미국과 과학 교류 확대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첫 5년 동안에만 무려 1만9000명의 중국 학생이 미국 대학으로 유학 가 물리학, 공학 등을 전공했다. 이후로도 숫자는 계속 불어났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 마이클 필스버리는 저서 ‘백년의 마라톤’에서 “미국이 중국 과학자에게 이전한 과학기술 지식의 양이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라고 했다.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부시, 클린턴, 아들 부시, 오바마 등 8명 대통령이 재임한 40여 년간 미국의 대중 정책은 중국의 발전을 돕는 ‘건설적 포용’ 기조를 이어갔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민주화될 것이고 국제 정세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낙관론이었다. 중국 GDP가 미국의 78% 규모로 커지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위협적 존재로 부상하자 미국이 뒤늦게 대중 정책을 급선회했다. 중국이 1위 교역국이 된 우리에게 이 지각 변동은 상당한 위기와 도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의 첨단 기술 굴기를 몇 년만 더 방치했다면 우리에게는 더 큰 위기가 닥쳐왔을 것이다.
미·중 갈등의 핵심에는 기술 패권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경제적 자산을 넘어 안보의 ‘게임 체인저’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자랑하고 야당은 마구 깎아내린다. 폄하해서도 안 되지만 성급하게 자랑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경제 사절이 동행해 원님 행차에 나발 불듯 쏟아낸 경제·기술 분야 양해각서는 거품 꺼지듯 사라져버린 것이 적지 않았다.
이번 대통령의 방미 외교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어야 한다. 안보 동맹을 재확인한 것을 넘어서 기술 동맹으로 가겠다는 선언적 약속이 가시적 효과를 내도록 후속 작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미국을 설득해 반도체법, IRA법 등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도 완화해야만 한다.
40여 년전 덩샤오핑은 미국과 국제 안보에 중국의 발전이 절실하다는 점을 설득한 경제·기술 외교로 실익을 챙기고 부국강병의 길을 닦았다. 국제 정세 격변기에 우리에게도 이런 담대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중국·러시아와 마주한 대한민국만큼 미국과 아시아와 세계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중대한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겠나.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