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전쟁과 판타지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며 꽃 파는 아가씨/ 그 꽃만 사 가시는 그리운 영란꽃/ 아 꽃잎같이 다정스런 그 사람이면/ 그 가슴 품에 안겨 가고 싶어요.”
1954년 전쟁이 막 끝났을 때 ‘홍콩 아가씨’가 유행했다. 홍콩에 가본 적도 없는 가수 금사향(사진)은 전국을 누비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과 전쟁 직후에 유행한 이국적인 정서를 담은 노래는 한두 곡이 아니었다. 그 무렵 백설희는 “아메리카 타국 땅에 차이나거리/ 란탄 등불 밤은 깊어/ 아 바람에 깜박깜박/ 라이라이 호궁이 운다”(아메리카 차이나타운)라고 노래하면서 미국 땅을 소환했다.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현인도 전쟁통에 이국풍(異國風)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 ‘인도의 향불’과 ‘페르시아 왕자’ 등을 비롯하여 ‘서부의 사나이’와 ‘인디언 토막촌’에 이르기까지 그 소재는 대륙을 넘나들면서 전 세계를 관통한다.
“공작새 날개를 휘감는 염불 소리/ 갠지스강 푸른 물에 찰랑거린다/ 무릎 꿇고 하늘에다 두 손 비는 인디아 처녀/ 파고다의 사랑이냐, 향불의 노래냐.”
그가 부른 ‘인도의 향불’의 노랫말은 뭔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냥 인도나 페르시아, 인디언을 소환해 전쟁이 몰고 온 허기와 공포를 잠시라도 잊고 싶었던 것이다. 명국환의 ‘애리조나 카우보이’(1955년), 김정애의 ‘늴리리 맘보’(1957년) 등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국풍 노래들이 유행했다. 그로부터 수십년 후에야 미국 이민을 떠나는 임을 그리워하는 세샘트리오의 ‘나성(羅城)에 가면’(1978년)이 발표됐다. 나성은 원래 로스앤젤레스(LA)였지만 영어 금지정책 때문에 음차한 제목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해외여행객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촌엔 전쟁과 기아의 공포 속에서 노래 한 곡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잊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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