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조개껍질’은 되고 ‘돼지껍데기’는 안 된다
시인 신동엽이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한 4월이 지나갔다.
‘껍데기’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이다. 달걀, 호두, 소라 등의 단어 뒤에 껍데기가 붙는다. 껍데기는 “알맹이를 빼내고 겉에 남은 물건”을 뜻하기도 한다. ‘이불 껍데기’나 ‘빈 껍데기’처럼 쓰인다. 신동엽이 없어지기를 바란 것이 이런 껍데기다. 알맹이가 없는 거짓과 위선, 불의 같은 것들이다.
껍데기와 같은 듯하면서 다른 말이 ‘껍질’이다. 껍질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하지 않은 물질”로, 귤·양파 따위 말 뒤에 붙는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 의미와 달리 일반인들은 ‘조개껍질’이란 말을 많이 쓴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로 시작하는 노래의 영향이 큰 듯하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만큼 국립국어원도 ‘조개껍질’을 예외적으로 인정해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더 널리 쓰이는 ‘돼지껍데기’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다. 국립국어원은 ‘온라인 가나다’에서 ‘돼지 껍데기’보다 ‘돼지 껍질’로 쓰는 게 옳다고 밝히고 있다. 단단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사람들은 삼겹살과 갈빗살 같은 고기를 알맹이로 보고, 그와 대립하는 시각에서 돼지 껍데기를 쓴다. 특히 요즘에는 돈을 내고 사 먹지만, 예전에는 고기를 먹으면 맛보기로 거저 주던 먹거리여서 사람들에게는 ‘껍데기’가 훨씬 익숙하다. 음식점 차림표에도 대부분 그렇게 적혀 있다.
조개의 겉은 단단하지만 사람들이 널리 쓰므로 표준어가 된 ‘조개껍질’. 반면 사람들이 너나없이 쓰고 있음에도 단단하지 않다는 이유로 바른말로 인정받지 못한 ‘돼지 껍데기’. 이렇듯 모호한 기준은 마치 요즘의 정치를 보는 듯하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다고 하거나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판단 기준이 옳다고 고집하는 ‘껍데기 정치’가 4월과 함께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오직 국민을 생각하는 흙가슴만 남고 모든 정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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