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나의 삶 내가 쓰기, 그 짜릿한 매력
‘자기에 대한 글쓰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책자 형태로부터 최근의 SNS 블로그 홈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자기를 표현하는 글쓰기는 날로 확산세다. 그 대표적 장르는 역시 자서전과 자전적 에세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는 1300여 권의 ‘자서전’과 ‘자서전 쓰기’를 권하는 실용서가 넘쳐난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자서전 강좌도 온-오프라인에서 두루 활발하다. 자서전, Autobiographie=auto(나)+bio(삶)+graphie(쓰다), 곧 내가 나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의 매력은 그만큼 크다.
오늘날 자서전 쓰기는 저명인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영역에서도 잦다. 국내에서 축구 야구 배구 선수나 트로트 가수가 그들의 고난과 투혼을 기록하거나, 평범한 이웃이 삶을 진정성 있게 회고한 기록도 많다.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아(自我)를 알고 성찰한다는 것, 자서전의 진정한 가치이기도 하다.
자서전 쓰기에는 독특한 특성이 필요하다.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대상으로, 오직 진실만을 충실하게 고백할 것을 전제해야 한다”는 필립 르죈(자서전 이론가)의 규약이 있다. 그 글을 쓰는 동기, 곧 자기 인식의 욕구, 자기 정당화의 욕구, 증언의 욕구를 주목할 때, 그 글쓰기는 당연히 진실의 담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며 진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 자서전은 자신의 ‘신화’를 넘어 ‘사실’에 기반해야 할 특별한 유형의 글이다.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 되던 해 가을, 어머님 돌아가시고 힘든 마음에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 지면 서러움이 더해요’라고 썼다. 가수가 되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을 때다. 마흔 중반 저무는 청춘이 아쉬워 ‘낭만에 대하여’라고 썼다. 그것들이 노래가 된 덕분에 지금까지 가수로 살고 있다….”
부산 출신 ‘낭만가객’ 최백호는 최근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에서, 나름 진정성을 잃지 않고 살아온 옛이야기를 담담하게 적고 있다.
문학평론가 강인숙의 신간 ‘글로 지은 집’, 동갑내기 이어령과 64년을 부부로 살며 성북동 단칸방에서 평창동 집까지 7번을 이사한 주택 연대기다. 그 자전적 에세이는 당대 서민의 생활상과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기억과 고백은 너무나 세세하고 절절해서, 읽는 이의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명연설의 대가’를 넘어 ‘기록의 대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백악관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틈틈이 기록을 남기고 일기를 썼다. 만나는 사람의 인상·성격·어투에, 나눈 대화와 농담, 최애 음식·관심사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 그 기록의 빛나는 결실이 회고록 ‘약속의 땅’이다. 그는 직접 회고록을 썼고,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회고록의 군계일학’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건 단연 탄탄한 메모와 일기의 힘이다.
‘버킷 리스트’, 미국 영화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이후, 널리 유행하는 말이다. 이 말은 이제 단순한 유행어 수준을 넘어, 삶을 돌아보며 내일을 준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서전 쓰기 역시 누구에게나 삶에의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버킷 리스트일 수 있으리. 그렇다. 누구인들, 자신의 기억을 도울 메모나 일기 한 줄 없기야 하겠나.
그 개인적·역사적 기억과 사건의 디테일(detail)을 적은 기록, 그건 ‘자기’를 쓸 수 있는 탄탄한 바탕이다. 일본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역저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에서 강조했다. “개인의 역사는 곧 세계사”라고. 역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록이고, 사람들은 기록을 통해 기억하며, 그 기억은 역사로 남는 것이다. 자서전, 그 나와 세상의 기록은 ‘나에게 주는 인생 최대의 선물’이라는 찬사도 있다.
자서전 안에 생애 가장 충실했던 삶을 오래 남기고 싶은 꿈, 그건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버킷 리스트일 수 있으리. 그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삶의 정직성과 충만함을 한껏 실감하고 다짐할 수 있기도 하다. 자서전 연구가 유호식은 말한다, “자서전을 쓰는 것은 삶을 디자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그 자기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분명, 한때의 취향을 넘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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