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가조작일당, 투자자 몰래 계좌 만들어 멋대로 매매”… 피해 키워
제보 2주 지난 뒤에야 압수수색
작전세력, 그사이 눈치 채고 물량처분 나서… 주가 폭락 불러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에 대한 검찰과 금융당국의 수사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뒤늦은 대응이 이번 사태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4월 초·중순 작전 세력이 일부 종목의 주가를 비정상적으로 띄우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 전까지 코스피와 코스닥 8개 종목의 문제점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SG증권발 폭락 사태 관련 인지 시점에 대해 “제가 들은 건 아주 최근”이라고 지난달 27일 말했다.
금융위는 제보를 받은 직후부터 수사에 나섰지만 작전 세력에 대한 압수수색은 4월 말에야 진행됐다. 8개 종목의 주가는 24일부터 폭락했는데, 제보 시점과 비교하면 2주가량 뒤다. 그사이 당국의 움직임을 눈치챈 주가조작 세력들이 물량 처분에 나서 주가 폭락 사태가 빚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폭락세를 거듭한 8개 종목의 28일 기준 시가총액은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21일 대비 7조8492억 원 급감했다. 금융위의 본격 대처 여부에 따라 폭락 직전에 들어갔던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통상 금융위는 중대한 사안의 경우 금융감독원과 공동 조사를 벌인 뒤 패스트트랙(신속 수사 전환)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긴다. 그러나 금융위는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금감원과 자료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제보 직후부터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서울남부지검 등과 공조해 빠르게 수사해 왔다”며 “24일 관련자를 출국 금지시키고 27일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이 이를 보여준다”고 해명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수사를 이어가면서 연관된 기업 대주주의 사전 인지 여부와 공매도 세력 연루 가능성 등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작전 세력이 장기간 주가를 띄운 이번 사건에서는 매수, 매도가를 정해서 사고팔며 주가를 높이는 통정거래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 수사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와 더불어 주가 폭락 이전에 주식을 대거 매도하거나 공매도에 나서면서 ‘누가 이익을 취했는지’를 보는 것 역시 주요한 수사 대상인 것이다. 실제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과 김영민 서울가스 회장은 주가 폭락 직전에 일부 주식을 처분했다. 선광의 경우 평소 10주 미만이었던 공매도 물량이 폭락 직전인 19일 4만 주 이상 나오는 등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SG증권發 주가폭락’ 파문 확산
“회장님 상속주식 찾아 투자” 유인
임창정 투자설명회서 “번 돈 다 투자”
피해자 100명 “9일 사기죄 고소”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 배후에서 주가조작을 저지른 것으로 지목된 일당이 투자자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거나 체크카드를 만든 후 자체 회식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개인정보와 휴대전화를 모두 넘긴 탓에 “체크카드와 계좌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 “개인정보 이용해 마음대로 계좌 개설”
피해자 A 씨는 2019년 지인을 통해 주가조작 의혹을 받는 H투자컨설팅 업체를 알게 됐다. 그는 “업체 관계자가 ‘저평가된 주식을 검토해 안전하게 투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해 3000만 원을 처음 맡겼다”고 말했다.
A 씨는 “매주 수익률을 보내줬지만 어떤 종목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며 “투자 종목을 물어보니 ‘회장님들이 상속하는 주식을 잘 찾아 투자 중이다. 소문나면 안 된다. 종목을 알려 하지 말라’고만 했다”고 설명했다.
초반에 수익이 나자 H투자컨설팅 업체 측은 절반을 수수료로 챙기고 “지금 투자하면 더 큰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며 남은 수익에 돈을 보태 재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이 과정에서 업체 측은 A 씨가 넘긴 개인정보와 휴대전화를 이용해 추가로 차액거래결제(CFD) 계좌를 만들고 임의로 거래를 반복했다. A 씨는 “가족 명의까지 동원해 재투자를 반복한 끝에 3년 만에 총 50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했다. H투자컨설팅 업체에 투자해 약 30억 원의 피해를 봤다는 피해자 B 씨도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주민등록번호 등을 물어봤는데 이를 이용해 마음대로 계좌를 만들어 고지 없이 거래를 반복했다”고 했다.
● “체크카드 받아 회식비 등으로 사용”
H투자컨설팅 업체는 “수수료 정산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체크카드를 만들게 한 후 회식비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A 씨는 “지난해 10월경 수수료 정산에 필요하다며 계좌를 만들라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체크카드를 만들어 넘기라고 했다”며 “이후 서울 건국대 앞의 한 마라탕 집에서 체크카드로 수백만 원을 결제했다”고 말했다.
업체 측은 2021년 12월부터 수수료 대신이라며 일당 중 한 명인 프로골퍼 안모 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골프아카데미 회원권을 네 번에 걸쳐 구입하도록 했는데 한 번에 1억 원씩, 총 4억, 5억 원가량을 송금했다. 이 골프 아카데미의 평생회원권 보증금은 최대 6억 원에 달했는데 금융당국은 일당이 보증금으로 받은 돈을 현금화해 유용했을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이 외에도 업체가 지정한 갤러리, 피부 미용 업체 등에도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송금하도록 했다.
● “CJ 포함 9개 업체 투자해 큰 손실”
H투자컨설팅 업체 라덕연 대표는 30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투자 종목 등을 밝히지 않고 회사에 일임하게 한 건 잘못했다. 벌을 주신다면 달게 받겠다”고 했다. 이어 “회원권이나 그림은 수익에 대한 답례로 받은 것”이라며 “CJ를 포함해 총 9개 종목에 투자했는데 저도 큰 손실을 입었다. 이득을 본 기업 오너와 대주주 거래 내역과 자금 출처 등을 추적하면 주가조작 진범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투자자들은 라 대표를 비롯해 주가조작 세력으로 지목된 일당을 상대로 9일 서울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피해자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대건 관계자는 “업무상 배임죄와 사기죄로 고소할 예정”이라며 “참여한 피해자는 100여 명, 손실액은 1000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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