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의 나락 한 알] 시장이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지난달 유엔 세계기상기구(WMO)가 공개한 ‘2022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이 관측 역사상 가장 더웠다. 1970년 이후 빙하 두께는 30m가량 줄었고, 해수면 상승 속도는 최근 10년 동안 2배 빨라졌다. 모두 지구온난화로 일어난 결과인데,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15도 높아졌다. 기상이변도 심해져 지난해 동아프리카는 가뭄으로, 파키스탄은 대홍수로, 유럽과 중국은 폭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2021년 기준 23억명이 식량위기를 겪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놀라운 사실이 울리는 경고에 놀라지 않는다. 위기가 일상이 되었는지 기존 삶의 방식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개발’은 여전히 힘이 세다.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사회간접자본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을 총 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완화하는 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가결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도로, 철도, 항만 건설 같은 ‘선심성 개발사업’을 쉽게 만들려는 양대 정당의 짬짜미라는 비판으로 법안 처리는 미뤄졌지만, 기회만 되면 처리할 태세다.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는 시행 반년 만에 유명무실해졌다. 석유화학 공장 같은 온실가스 대량 배출 시설이 평가 대상에서 빠진 탓이다. 가덕도 신공항과 제주 제2공항도 유예 조치로 평가를 면했다.
온실가스 배출 거래·상쇄가 문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도 여전히 힘이 세다. 지난 4월 확정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줄이고 국제감축과 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 의존도를 늘렸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줄어든 산업부문 감축량에도 국제감축이 들어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상쇄 배출권’ 한도를 기존 5%에서 10%로 늘리는 방안을 산업부문 감축에 넣은 것이다. 상쇄 배출권 확대로 늘어난 국제감축분을 산업부문에 넣어서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꼼수도 문제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거래’하고 ‘상쇄’할 수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문제다.
배출권거래제와 상쇄 배출권은 온실가스 감축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상품을 거래하므로 이들 제도는 온실가스를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간주하고 대기라는 공공재를 사유화한다. 배출권거래제는 업체에 연간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실제 배출량을 평가하여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업체들이 서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건데, 과연 돈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 대기를 오염할 권리를 살 수 있는가? 상쇄 배출권은 한 업체가 외부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이것을 자기의 감축량으로 인정받는 건데, 과연 밖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면 안에서는 그만큼 더 배출할 권리, 지구온난화를 촉진할 권리를 얻을 수 있는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삶의 편익 축소와 연결된다. 국제감축을 늘린다는 것은 우리는 현재의 편익을 계속 누릴 테니 너희는 불편을 감수하라는 뜻이다. 국제감축의 실제 효과를 떠나서 이런 태도가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나라와 기업이 보이는 이런 태도가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대량 생산과 소비로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는 산실 역할을 하는 시장에 기대는 대책으론 ‘적기에 필요한 만큼’ 감축할 수 없다. 온실가스 감축을 시장에 맡길지는 정치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나, 문제는 정치가 기후위기에 깊이 숙고하며 개입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가 그렇다.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에 힘을 소진한다. ‘지성주의’를 표방하는 대통령은 반지성적 말로 끊임없이 설화를 낳는다. 그의 독단적이고 이원론적인 가치 판단이 초래한 외교 굴욕과 참사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대화를 외면한 강대강 대립으로 남북관계는 파탄이고, 한반도에 전쟁 기운이 짙어진다. 이런 와중에 정작 긴급한 기후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 현실이다.
오존층 복원은 그나마 무력감을 떨치게 해줄 성공 사례다. 올해 초 세계기상기구가 밝힌 ‘2022 오존층 고갈에 대한 과학적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몬트리올 의정서’ 발효 33년 만에 지구의 오존층이 분명하게 회복되고 있다. 오존층은 온난화 억제 효과도 있어, 예정대로 회복되면 2100년까지 0.3~0.5도가량 온난화를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 사무총장은 오존층 복구가 “기후행동의 선례”라고 했다. 희망을 놓지 말고 할 일을 하자는 뜻이겠다.
변수 만들지 말고 자연에 따라야
자연은 정직하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언제나 자신의 이치대로 움직인다. 인간이 돌발 변수를 만들면 그것도 포함하여 자신의 이치대로 움직인다. 그 변수로 생겨날 위험 따위는 일절 고려하지 않는 자연은 그래서 무정하다. 그러니 우리는 위험 변수를 더 만들지 말고 자연의 질서에 따라야 한다. 겸손하게 살라는 뜻이겠다. 자업자득이라는 뜻도 되겠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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