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폭스뉴스와 편집증적 세계관
대선 조작설을 퍼뜨린 폭스뉴스가 투표기 업체인 도미니언에 1조원이 넘는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하기 불과 닷새 전이었다.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부모님 심부름으로 동생을 데리러가던 16세 흑인 소년이 주소를 착각해 엉뚱한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가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집주인인 84세 백인 남성 앤드루 레스터는 현관 밖에 낯선 흑인 소년이 서 있는 것을 보자마자 총을 두 발 쐈고, 그중 한 발이 유리를 뚫고 소년의 머리로 날아갔다. 소년은 중상을 입었지만,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레스터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왜 레스터는 집 밖에 낯선 이가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소년에게까지 다짜고짜 총을 쏜 것일까.
그는 폭스뉴스 중독자였다. 그의 손자는 현지 언론인 캔자스시티스타와 인터뷰하면서 예전에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았지만, 그가 폭스뉴스 같은 극우 케이블 채널을 보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5~6년 정도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폭스뉴스 패널들이 아버지 없는 흑인 가정이 이 나라에 범죄가 존재하는 이유라면서 네 집을 지키려면 스스로 총을 들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를 끊임없이 외쳐댔던 것이 떠오르자, ‘할아버지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폭스뉴스의 대선 조작설과 코로나19 음모론을 완전히 믿으면서 우익의 토끼굴로 더 깊이 빠져드셨어요. 24시간 내내 공포와 편집증의 뉴스 사이클 속에 사셨습니다.”
폭스뉴스는 1996년 첫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별 영향력 없는 여러 케이블 뉴스 채널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주의 노선으로 전환한 후 2000년대 초반에는 공화당 지지자 3분의 1 이상이 시청하는 채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현재 폭스뉴스의 프라임타임 평균 시청자 수는 220만명으로 MSNBC와 CNN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CNN, CBS, NBC, 뉴욕타임스 등 다양한 소스를 통해 뉴스를 접하지만, 상당수 공화당 지지자들은 지역 TV채널과 폭스뉴스 단 두 곳만 보기 때문이다.
이는 “공포와 편집증의 뉴스 사이클”이라는 레스터 손자의 표현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뉴스를 24시간 내보내 시청자를 끌어모은 덕분이기도 하다. 테러에 대한 공포, 무슬림에 대한 혐오, 이민자에 대한 분노. 흑인 범죄자가 당신의 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동성애가 청교도정신 위에 세워진 미국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편집증.
그래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정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그는 폭스뉴스가 착실히 쌓아올린 편집증적 세계관을 가장 잘 구현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을 막는 것뿐 아니라 아예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테러 단체와 연관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무슬림뿐 아니라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폭스뉴스가 만든 세계관은 이제 거꾸로 폭스뉴스까지 위협하고 있다. 가디언은 도미니언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폭로된 폭스뉴스 내부 e메일과 문자 등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폭스뉴스가 스스로 만든 괴물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폭스뉴스가 처음부터 대선 결과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폭스뉴스는 격전지였던 애리조나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를 선언하고, 트럼프의 거짓 주장에 대한 팩트 체크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오히려 폭스뉴스에 화를 내면서 다른 극우 채널인 원아메리카뉴스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폭스뉴스의 편집증적 세계관에 중독된 사람들이 어떻게 선거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미 연방통신위원회는 1987년까지만 해도 방송사들에 전파 사용을 허가하는 대가로 반드시 뉴스를 보도할 때 반대 견해를 소개하도록 하는 의무를 지웠다. 그러나 이 원칙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견에 따라 폐기됐다. 다양한 채널과 인터넷 매체의 등장으로 더 많은 시각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어느 한 매체에 균형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뉴스 소비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곳을 찾아 채널을 바꾼다. 그리고 이를 조장해온 미디어는 다시 이를 바탕으로 생존전략을 짠다. 이것이 어디 미국만의 문제일까.
정유진 국제부장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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