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아파트 청약도 투기인가
지난달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사람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논의될 예정이었다. 올해 초 정부에서 발표했던 사안인데, 관련 법 개정이 석 달 넘게 미뤄져 청약 당첨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도 법안을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면 다주택자의 투기성 갭 투자(전세 낀 주택 매매)를 부추길 수 있고, 전세 사기가 늘어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야권 주장이 타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시장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선,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사람은 절대 다수가 무주택자거나 이사갈 집을 구하는 1주택자다. 이런 사람들이 당첨된 아파트를 본인이 입주할 수 있을 때까지 전세로 임대하는 것을 투기라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전세 사기는 빌라·오피스텔에서 주로 발생했다. 규격화되지 않은 탓에 시세를 알기 어렵다는 점을 사기꾼들이 악용한 것이다. 아파트가 전세 사기에 동원된 사례는 거의 없다. 이렇게 ‘아파트 실거주 규제’와 ‘전세 사기’ 간에 별 연관성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인과관계로 엮은 것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 관련 입법이 지연되면서, 결국 피해는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간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사람 중에 입주 시점에 바로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전세를 주고 다른 곳에 살아도 되는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야당은 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흠집을 내기 위해 무리하게 ‘전세 사기’까지 갖다 붙이고 있다”며 “그것이 시장에 미칠 파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구나 최근 전세 사기의 배경에 2020년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밀어붙인 임대차 3법이 전세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전세 사기를 부추겼다는 주장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야권은 “지금 정부가 1년 가까이 방치했다”고 다그치기만 할 뿐, 반성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오히려 현실성 없고 국민적 합의를 얻기도 어려운 현금 살포 방식의 피해 보전을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주택 경매 우선권을 주고 대출, 세제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의 정부·여당의 특별법이 제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진정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책들부터 추진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만약 끝까지 전세 사기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다면, 어느 전직 의원이 했던 ‘역겹다’는 말을 온 국민으로부터 듣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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