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워싱턴 선언’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2023. 5.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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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버린 북핵을 견제하려면 ‘남북 간 핵균형’이 필수다. 당장 핵무장을 강행할 입장이 아닌 현 단계에서는 ‘미국 핵역량을 통한 핵균형’이 정답이고, 상황이 더 나빠지면 동맹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핵무장이라는 제2단계 핵균형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은 4월 26일 윤석열-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미 전술핵의 한국 내 또는 주변 상시 배치’에 합의하는 조약 차원의 문건이 나오기를 기대했었다.

이런 목표에 비추어 본다면, ‘워싱턴 선언’은 ‘반 잔의 물’이었다. 즉, 올바른 방향을 향한 유의미한 출발이었지만 목표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실속 없는 과장이나 공연한 트집 잡기보다는 냉정한 평가를 바탕으로 나머지 ‘반 잔의 물’을 채워 나가는 데 합심해야 할 때다.

우선, 아쉬웠던 대목들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에도 ‘철통 같은 방위 공약,’ ‘강화된 연합방위 태세,’ ‘즉각적·압도적 대응’ 등 한국을 안심시키는 표현들이 쏟아졌고,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10월 ‘핵태세검토서(NPR)’와 11월 한미 국방장관회담 성명에 이어 또다시 ‘핵 사용 시 평양 정권의 종말’을 경고했다. 하지만 북핵 위협이 심각해진 상황에서 구체성과 실행력이 담보되지 않는 표현들은 ‘또 한 번의 말 잔치’로 치부되기 쉽다. 핵 위협이 해소되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남은 과제들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다. 회담 직후 백악관이 “어떤 나라와도 핵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나 전술핵 재배치에 선을 그은 것은 한국에서의 과장된 평가나 부풀린 보도들이 초래한 불편한 결과일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뉴클리어 셰어링(Nuclear Sharing)’이란 유럽 국가들이 유럽 배치 미 전술핵의 관리·기획·훈련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하며, 소유권과 발사권은 물론 운용 주도권도 당연히 미국에 있다. 그러니 한국이 미 핵무기를 공동 소유하는 것처럼 과장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 및 농축·재처리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나 핵무장과 관련해서 가능성이라도 열어두기를 원했던 전문가들의 실망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성과를 평가하는데 데에도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선언으로 한미가 북핵 대처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동맹 결속력과 북핵 억제력을 강화한 것이나 나토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한국이 핵정보를 공유하며 기획·훈련에 참여하게 되고 미국이 ‘핵을 포함한 역량을 총동원한 확장억제’를 재확인해준 것은 큰 성과다. 핵탑재 전략핵잠수함(SSBN)의 기항과 정례적인 미 전략자산의 현시를 약속한 것은 ‘핵우산의 구체성’을 보완한 진일보한 조치다. 핵협의그룹(NCG) 설치에 합의한 것도 유의미한 성과다. 이 협의체가 1.5트랙 기구로 운영되면서 전문성과 창의력으로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정부 간 기구들을 보완하고 여론을 선도한다면 한미가 북핵대응 전략을 합의해 나가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한국 국민이 풀어야 하는 숙제도 있다. 한국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180도로 바뀌는 나라라면 어느 동맹국이 핵무기를 배치하려 하겠는가. 사드(THAAD) 배치 후 5년이 지나도록 정상 가동을 할 수 없는 나라에 미국인들 전략자산들을 상시 배치하고 싶겠는가.

게다가 일부 정치인들은 북핵이 강요하는 안보 위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대북억제력 강화 노력을 “대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며 북핵을 두둔하고 있는데, 북한이 ‘핵탄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천명하고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까지 외치는 현실에 가슴을 졸이는 전문가들의 귀에는 ‘반역에 준하는 선동’으로 들린다. 국민은 정치적 안정성이 없으면 동맹 관리도 북핵 대응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정부는 이번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나머지 반 잔’을 채우는 데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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