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넘어 뮤지컬로… 근정전에 다시 선 ‘세종’
뮤지컬 전막 공연, 궁 개방 후 처음
“나의 뜻을 보여주겠다, 나의 길을. 나의 길!”
29일 저녁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무대 위 금실 수를 놓은 붉은 곤룡포 차림의 ‘세종’(재위 1418~1450) 역 배우가 불끈 쥔 주먹을 들어 보이며 노래했다. 80여 명 배우들의 춤과 노래, 극의 진행에 따라 근정전의 전면이 색색 조명에 물들었다.
국보 근정전은 현존하는 국내 최대 목조 건축물 중 하나. 조선 왕조에선 왕에게 신년 하례를 하고 사신을 맞이하는 등 국가 주요 행사가 열린 곳이다. 그간 약식 음악극 공연이나 방탄소년단의 미 토크쇼 공연 등이 있었지만, 근정전 앞마당에서 야간 뮤지컬 전막 공연을 한 것은 1954년 경복궁 개방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드문드문 보슬비가 내려 더 쌀쌀했던 저녁, 왕이 걷던 어도(御道) 양편 간이 좌석 700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패딩이나 목도리로 추위를 달래며 찬 손을 호호 불면서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근정전 월대(月臺) 위에는 무대용 어좌(御座·임금의 의자)가 놓였고, 그 아래엔 가로 11m, 세로 8m의 임시 무대가 바닥 돌 훼손이 없도록 세심하게 설치됐다. 근정전을 배경으로 갖게 된 뮤지컬 무대는 600년의 세월을 건너 세종의 치세를 현재에 다시 불러내는 듯했다.
세종이 상왕으로 국정을 쥐락펴락했던 아버지 태종에게 맞서며 “이제 호랑이 등에서 내리겠다”고 노래하면 태종이 “등에서 내리는 순간 이리 떼에 물어뜯길 것”이라며 위협했다. 서슬퍼런 공신들이 세종의 뒤에서 “이 나라는 사대부의 나라”라며 용의 등에 올라 타 그 머리를 베어버리겠노라 작당할 땐 객석에도 탄식이 흘렀다.
세종이 그 모든 시련을 딛고 제도 정비와 기술 발전, 훈민정음 반포까지 끝내 자신이 꿈꿨던 정치를 이뤄낼 때, 관객들은 마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감탄하며 환호했다. 백스테이지가 없어 배우들은 좌우 회랑과 중앙 어도를 통해 등장·퇴장했는데, 이 때문에 무대 위 왕과 신하들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보였다.
‘세종, 1446′을 제작한 HJ컬쳐 한승원 대표는 “근정전이 뒤편에 있는 것만으로 어떤 무대 장치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많이 띄어 더 보람 있었다”고 했다. 이 뮤지컬은 지난 19일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지난 29일부터 2일까지 나흘간 4회 공연 2800석이 전석 매진됐다.
뮤지컬 공연은 오는 7일까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해 열고 있는 ‘2023 봄 궁중문화축전’ 프로그램 중 하나. 근정전에선 오는 16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의 ‘2024 크루즈 패션쇼’도 열린다. 근정전 앞마당을 중심으로 좌우 행각(行閣) 회랑 등을 런웨이로 활용한다. 구찌는 이전에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 궁전 등 각국 랜드마크 건축물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마르코 비차리 구찌 글로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경복궁 패션쇼 개최를 발표하며 “세계적 건축물인 경복궁을 통해 한국 문화, 그리고 이를 가꿔온 한국민과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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