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우리의 집은 투자상품이 아니다
결혼하고 처음 얻은 전셋집 집주인은 집이 여섯 채라고 자랑했다. “그거 불법 아닌가요.” 집을 보고 나와서 나는 부동산 아저씨에게 불안한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중개업자는 껄껄 웃더니, 법이 바뀐 지 언제인데 그런 소릴 하냐며 집주인 할머니가 은행 다니다 퇴직한 양반이라 ‘이런 쪽으로 똑똑하시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세입자에겐 많은 선택지가 없어 결국 그 집으로 들어갔지만 사는 내내 꺼림칙했다. 민간 임대주택 사업의 법적 근거인 임대주택등록법은 1994년에 처음 도입됐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때였지만 여전히 ‘부동산 투자’라는 말보다 ‘땅투기’란 말이 더 익숙하고, 집으로 돈 버는 임대업자는 돈으로 돈 버는 사채업자만큼이나 부정적인 시선을 받던 때였다.
30년 만에 꺼림칙했던 것들은 합법적 투자 방법이 됐다. 건물을 사고팔면서 시세차익으로 큰돈을 번 연예인들은 지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재테크의 ‘금손’이고 ‘고수’로 불렸다. 유명인들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내 집 마련에 간절했다. 집을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낸 건 정책과 시장이었다. 오른 전셋값 때문에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월세 내고 나면 월급이 반토막이 나고, 집세 때문에 살던 집에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설움을 겪다 보면, 악착같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권을 악화시키고 공공복지를 취약하게 만들면서, 정부와 은행, 미디어는 빚내서 집 사라고 합창을 했다. 각자 삶은 각자 책임지라는 신자유주의 정책하에, 한국인들에겐 ‘집 한 채’가 연금이고, 보험이고, 노후대책이 되었고, 부채는 우리의 목줄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부 정책은 계속 ‘주택 시장’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유지했다. 사람들이 집이 없어 집을 못 사는 게 아닌데도, 더 많은 집을 짓는 것이 늘 정책의 1순위였다. 그 많은 집은 다 누가 샀을까? 2022년 상위 100명이 소유한 집은 2만2000여채(총가치 2조9534억원)였다. 한 사람이 226채의 집(295억원 가치)을 소유한 것이다.
주택공급정책은 건설기업과 금융자본, 부자들의 배만 불렸다. 집을 아무리 지어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집을 사지 못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무주택자 전·월세 주택 공급 방안으로 민간임대사업자 등록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구매력 있는 사람들이 집을 많이 사서 ‘주택 시장’에 전·월세 물량 공급을 늘리도록 유인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임대주택 등록 사업자들에게 각종 세제와 금융지원을 제공하고 규제를 풀어줬다. 우리가 아는 대로 정책은 대실패했다. 정책은 철회됐지만, 사람들은 ‘갭투자’를 배웠고, 거기서 ‘빌라왕’이 태어났다. 윤석열 정부는 이 제도를 부활시키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대규모 전세사기는 주택 상품화와 시장화에 매진했던 부동산 정책의 끝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참사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정책과 시장이 자행한 폭력이며,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주택 시장에는 ‘금융화’라는 또 다른 위험한 뇌관이 장착되어 있다. 월세 시장을 키운 결과, 주택임대 시장은 대기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었다. KT, SK, GS, 신세계 등 국내 유수 대기업을 비롯하여 KB국민은행과 NH농협 등 금융기관까지 여기에 뛰어들었다. 대기업이 수백~수천 가구의 주택을 소유하고 임대장사를 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주택 시장과 금융 시장의 연동이다.
대기업 주택임대 사업은 대부분 리츠(REITs)라 불리는 부동산 투자회사를 통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리츠는 투자자를 모집해서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에 투자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배당한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임대료와 자산가치의 단기 상승이다. 오늘날 주택, 에너지, 식량 등 실물 투자는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자산운용 포트폴리오에서 점점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혼합된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진다. 전세사기는 앞으로 닥쳐올 거대한 재난의 아주 작은 꼬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긴급한 피해 대책과 함께, 앞으로의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전세사기’는 주택의 상품화, 시장화, 금융화의 결과다. 2021년 임대료 폭등에 분노한 베를린 시민은 3000채 이상 주택을 소유한 부동산 기업의 임대주택 24만채를 강제 수용하여 공공임대로 전환하는 주택사회화 법안을 과반수로 통과시켰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 더 이상 부자들의 재산증식 수단이나 투기상품이 되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자.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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