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광화문 월대를 되살린 기억과 의지
100년 만에 2023년 10월까지 복원
日 박물관엔 약탈 韓 유물 가득
빼앗긴 문화재 제자리 찾길 기대
강점기 시절 일제의 조선 궁궐 훼손은 집요했다. 정궁(正宮)인 경복궁에는 총독부청사가, ‘창경원’으로 격하된 창경궁에는 동물원이 들어섰다. 고종의 거처였던 덕수궁은 옆으로 큰 도로가 생기면서 크게 쪼그라들었다. 조선 왕조 지배를 상징하는 궁궐을 파괴함으로써 일제의 새로운 지배를 알리겠다는 심산이 빚은 결과였다. 지금 우리가 보는 궁궐에는 그때의 상처가 크든 작든 남아 있다.
한국사를 왜곡, 부정하고 그 긴 시간의 증거인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데 일제는 주저함이 없었다. 일제강점기가 남긴 흔적을 지우는 게 이렇게 어렵다. 워낙에 짙은 것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가 부족했던 것도 고백해야 한다.
광화문 월대 관련 소식은 일본에 남아 있는 강점기의 흔적을 떠올리게 했다. 약탈문화재의 대표 격으로 꼽히기도 하는 오구라컬렉션은 도쿄국립박물관 한국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강점기에 전기사업으로 큰 재산을 일군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수집품인 이 컬렉션에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유물이 적지 않다. 일본 ‘중요문화재’(한국의 ‘보물’에 해당)로 지정된 것 중에는 가야의 고분에서 도굴된 것으로 보이는 금관, 귀걸이 등이 있다. 그러나 컬렉션 형성의 불법성, 부도덕성에 대한 고백이나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소장 중인 다른 중국 유물 컬렉션과 함께 오구라컬렉션을 해외 문화 수용에 대한 일본의 적극성, 해외 유래 문화재에 대한 일본의 사랑의 징표로 소개하고 있다. 불법적 유출이 명백한, 혹은 그런 점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본 내 한국 문화재는 오구라컬렉션 말고도 숱하다.
이런 문화재들도 광화문 월대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날이 올까. 외국에 있고, 외교 문제까지 얽혀 있는지라 훨씬 어려운 건 분명하다. 중요한 건 기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되살리려는 의지다. 이런 게 없었다면 광화문 월대가 한 세기 만에 제모습을 찾을 수 있었을 리 만무하다.
교토에 고려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다. 재일교포 정재문이 1988년 세운 곳이다. 여덟 살이던 1925년 부모와 함께 일본에 건너온 그는 사업가로 성공한 뒤 일본 내 한국 문화재를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의지의 산물인 고려미술관 소장 1700여점의 한국 문화재는 고대로부터 이어진 한·일 교류사, 강점기로 대표되는 아픈 역사의 증거이다. 생전에 그는 고려미술관을 통해 “조선이나 한국의 풍토 속에서 성숙한 아름다움은 일본에서도 언어, 사상, 이념을 넘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억하길 바랐다. 관람객들이 적은 미술관 방명록에서 그런 마음이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소중히 해야 할 것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아들과 와서 설명해주며 공감하는 시간을 꼭 갖고 싶다.”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기억이 긴 시간이 흘러 어떤 결과로 꽃피게 될지를 상상해 본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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