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매서 ‘우선매수권’ 기회는 1번뿐…전세사기 피해자들 속 탄다
낙찰 후 비용 부담 크다면 보증금 손실에도 ‘LH 양도’ 검토를
‘전입 당시 선순위 근저당’은 직접 낙찰받아야 권리 소멸 막아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을 종합하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경·공매를 통한 주택 매입이 유일하다.
지난 27일 발의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는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비롯한 각종 특례를 주되, 세입자가 원치 않는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매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보증금은 반환하지 않지만 주거 안정은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매수권 행사가 모든 피해자에게 유리한 건 아니다. 우선매수권자는 ‘최고가 낙찰’이 원칙이다. 임차인(세입자)이 선순위인지 아닌지, 주변 시세 대비 낙찰가가 얼마인지에 따라 우선매수권을 쓰는 것이 오히려 손해일 수도 있다.
■ “살 만한 집인가”부터 생각해야
가장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은 ‘경·공매로 주택을 사는 것이 과연 유리한가’이다.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경매에서 주택을 낙찰받는 순간, 기존에 받았던 전세대출을 모두 상환해야 한다. 정부가 후속 대책으로 상환을 유예해준다 해도, 추가 대출을 받아 주택을 매입해야 하는 상황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해당 주택이 계속 거주할 만한지, 추후 주택가격이 상승할 여력이 있는지부터 따져 보는것이 좋다”며 “정부에서 저리대출을 지원해준다 해도, 자금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 입장에선 대출을 또 받아 우선매수권을 사용할 유인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낙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보증금 회수를 포기하더라도 LH에 우선매수권을 넘기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일단 경매를 통해 주택을 사기로 결정했다면, 최대한 낮은 가격에 낙찰받는 것이 유리하다. 한 번 유찰될 때마다 최저매각가격이 20~30%씩 낮아진 채로 다음 매각기일이 잡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여러 번 유찰돼 가격이 떨어진 상태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것이 낫다.
특별법에 따르면 우선매수권 행사는 1회로 제한하지만, 신고는 횟수 제한이 없다. 이론적으로는 매각기일 전에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겠다고 신고만 하고 경쟁자들을 참여하지 못하게 한 뒤, 입찰보증금을 내지 않아 유찰시키는 방식으로 낙찰가를 깎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법원 실무상으로는 우선매수권을 쓰겠다고 신고만 해도 행사를 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2008년 대법원은 1·2차 매각기일에 우선매수권을 쓰고 보증금을 내지 않은 뒤, 3차에서 낙찰받은 공유자에 대해 “매각의 적정한 실시를 방해했다”며 매각 불허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결론적으로 피해자들이 우선매수권을 쓰겠다고 손을 드는 것은 딱 한번만 가능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 낙찰가는 얼마인지를 신중히 검토한 후에 우선매수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매각기일 전 or 당일, 뭐가 더 유리할까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들이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매각기일(입찰일) 이전에 우선매수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임차인은 14일 전까지 법원에 우선매수권 신고서를 제출하고, 입찰 당일 전체 경매 참가자가 써낸 금액 중 ‘최고가’로 낙찰을 받게 된다. 낙찰가가 예상보다 너무 높으면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고 LH에 넘길 수도 있다. 이 경우 다음 매각기일에선 우선매수권을 쓸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매각기일 당일에 우선매수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임차인은 이날 경매 법원에 가서 다른 입찰자들이 써낸 가격을 본 후에 우선매수권을 행사할지 말지 결정한다. ‘최고가’가 정해지면 법원 집행관은 임차인에게 우선매수 신고 의향을 묻는데, 낙찰을 원할 경우 우선매수 신고서와 함께 보증금(낙찰대금의 10%)을 현금으로 낸다.
만약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다른 입찰자도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회차 매각기일이 잡힌다.
■ ‘선순위’ 화곡동과 ‘후순위’ 미추홀구
임차인이 선순위 채권자인지 아닌지에 따라서도 의사결정이 달라진다.
사실 선순위 채권자인 임차인들에겐 우선매수권이 큰 의미가 없다. ‘빌라왕’ 김모씨가 주로 활동했던 화곡동 피해자들이 여기 해당한다. 이들은 경매를 통해 집주인이 바뀌는 경우에도 대항력이 유지되기 때문에 새로운 집주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선순위 세입자들은 대부분 낙찰가가 보증금에 근접하는 ‘깡통주택’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보증금을 낙찰대금에서 상계처리할 수 있다. 다만 보증금보다 배당순위가 높은 ‘조세채권’(정부의 세금징수권한)이 얼마인지 확정된 후에야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순위 임차인, 즉 전입 당시 선순위 근저당이 있었던 피해자들은 경우의 수가 더 복잡하다. 인천 미추홀구 남모씨 피해자들이 여기 해당한다. 이들은 경매 종료와 동시에 임차인 대항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낙찰자가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의무가 없다. ‘전문 경매꾼’이 입찰에 뛰어들 확률도 커진다.
만약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주택을 매입할 경우, 경매 종료 후 30일 이내에 낙찰대금을 법원에 현금으로 내야 한다. 기존 전세대출도 곧바로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목돈이 더 늘어난다. 소액 임차인이 많은 미추홀구 피해자들로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지다.
이 선임연구원은 “그동안의 미추홀구 경매 신청건을 보면 통상 2회 유찰 후 최초 감정가보다 약 49% 떨어진 가격에 낙찰되어 왔다”며 “2차 매각기일 전 우선매수권을 쓰겠다고 신고해 다른 경매 참여자들의 입찰을 막은 뒤 낙찰을 받거나 LH에 넘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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