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아이 3명 키우면 진료우선권·보조금…"나라흥망 중대사"

김지헌 2023. 4. 3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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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녀 강조 체제 선전…"자본주의선 자식 낳는 게 죄"
아이 많이 낳아 키우는 여성에 표창까지…현실 육아·성장 환경은 열악
북한 평양 경상유치원 어린이들 [조선의소리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nk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북한 선전매체가 바닥을 치는 출산율에 고심하는 남측 보란 듯 북한의 각종 다자녀 우대 정책과 제도를 홍보했다.

극소수 지배층을 제외한 북한 내 열악한 양육 환경과는 동떨어진 이론상의 제도를 열거해 체제 선전에 애쓰는 실상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오늘에서 나온 '다자녀 세대들에 베풀어지는 혜택'이라는 다자녀 가구 시책 기사를 보면, 북한에서 '다자녀 세대'는 직접 낳았거나 데려다 키우는 자식이 3명 이상인 세대다.

다자녀 세대의 모친에게는 '다산모치료권'이 발급된다. 이 치료권이 있으면 중앙급 병원 등에서 의료 봉사를 먼저 받을 권리를 가지며, 병원은 치료권 보유자의 치료 여건을 최대로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또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급중학교를 마치지 않은 자녀 3명 이상을 키우는 여성이 휴직을 요구할 때는 그대로 승인해준다.

다자녀 세대 자녀는 직업기술학교에 우선 추천되며, 모친은 막내가 고급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특별 보조금을 받는다.

북한 당국은 다자녀 세대를 모두 파악해 '다자녀 세대증'을 발급하고 있으며, 식량과 주택 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도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매체가 보도했다.

조선의오늘은 "여성이 아들딸을 많이 낳아 키우는 것은 나라 흥망, 민족 전도와 관련되는 중대사"라며 "우리 공화국에서는 자식을 많이 낳아 훌륭히 키우는 여성에게 온갖 사랑과 배려를 돌려준다"고 과시했다.

북한은 '아들딸을 많이 낳아 키우고 있는 여성'들에게 표창도 준다.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이에 해당하는 여성 3명에게 노력영웅 칭호, 6명에게 노력훈장, 138명에게 국기훈장 제2급, 507명에게 국기훈장 제3급, 2천917명에게 공로 메달을 줬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교실에서 수업받는 북한 어린이들 [평양 조선신보=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내에서만 사용 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

북한 다자녀 혜택은 외형만 보면 여느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저출산 대책에서 2자녀 이상 가구에 대한 지원책을 대거 포함해 다자녀 기준 폭을 넓혔다.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제 확대, 신혼부부 분양·임대주택 공급 확대, 만 2세 미만 자녀 입원진료비 본인부담률 제거 등이 저출산위 대책의 골자였다.

조선의오늘은 세계 최저 수준 출산율의 남측을 의식한 듯 "어머니가 되려는 것, 자식을 낳으려는 것이 죄가 돼 일자리마저 때우지 않으면 안 되는 자본주의 나라 여성들은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편안하다'는 말이 유행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림받는 수많은 여성의 처지는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더욱 절감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남측뿐 아니라 북한 역시 표창까지 줘가며 출산을 채근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녹록잖다.

유엔인구기금(UNFPA)에 따르면 2022년 북한 합계 출산율은 1.9명으로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보다 낮았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1.1 명으로 세계 198위, 꼴찌였다.

북한은 1970∼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산아제한 기조를 유지했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출산율이 꺾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인구 2천595만5천138명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75%를 차지, '고령화 사회' 기준인 7%를 넘었다.

출산 장려를 위한 여성권리보장법과 다자녀 세대 혜택 등에도 북한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 집안일과 육아를 대부분 전담하면서 장마당 활동으로 경제적 부양책임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육아 여건뿐 아니라 태어난 아동들이 살아가는 환경도 이미 알려진 대로 열악하다.

유엔 산하 합동 아동사망통계(UN IGME)에 나타난 2021년 5세 미만 영유아 1천 명당 사망률은 북한 15.4명으로 남측 3명, 미국 6명보다 월등히 높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조사에서 2020년 북한 내 5세 미만 아동의 발육 부진 비율이 18.2%에 달한다고 나타났고, 북한 내 아동 노동을 지적하는 국제 보고서도 꾸준히 나온다.

2021년 6월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특별명령서로 어린이 유제품 등 영양식품 공급을 노동당 정책으로 채택하기도 했는데, 역설적으로 어린이 식품 공급을 당 차원에서 다뤄야 할 정도라는 점을 노출했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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