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든 집 낙찰된 전세사기 피해자 “어디로 이사 갈지 막막”
이달 초·중순에 배당기일
공공임대 들어갈 여력 안 돼
긴급주거 신청 가능하지만
6개월 후 연장 심사 ‘걱정’
당장 금융지원 받을 길 없어
“돌 앞둔 아이에 미안할 뿐”
“돌잔치는 꿈도 안 꾸고 음식이라도 해서 지인들과 잠깐이라도 모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힘들겠죠.” 지난 29일 인천 미추홀구 자택에서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 한신혜씨(39·가명)는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딸의 첫 생일을 생각하면 미안함이 앞선다. 한씨 부부는 이미 집이 경매에 넘어간 ‘낙찰 피해자’이다. 지난해 12월, 3차 경매에서 집이 낙찰된 이들은 오는 5월 초·중순 배당기일을 앞두고 있다. 태어난 지 10개월 된 딸의 첫 생일을 어디서 보내게 될까.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만 나가야 하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런가 했는데, 정부 대책에서도, 뉴스에서도 우리 같은 낙찰 피해자 얘기는 잘 없더라고요.” 지난 27일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한씨처럼 이미 경매가 끝난 피해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경매가 완료된 이들에 대해선 공공임대 우선 입주기회 부여, 다른 주택 구입 시 금융지원이 대책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이미 전세보증금으로 전 재산이 묶인 이들이 새로운 집을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 공공임대에 들어가는 경우 시세보다 싸다고는 해도 월세나 보증금이 드는 데다 연고가 없는 인천에서 20년간 살아야 해 녹록지 않다.
한씨 부부는 2019년 치솟던 집값에 못 견뎌 연고가 없는 인천으로 왔다. 남편 직장이 자리를 잡으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계획이었다. 입주 당시 근저당을 문의하는 한씨에게 공인중개사는 “임대인이 부자라 걱정 없다”는 말과 함께 이행보증서를 내밀었다. 은행 창구에서도 별말 없이 보증금의 90%까지 전세대출을 내줬다.
사기 피해를 실감한 건 지난해 4월 임신한 한씨가 만삭이 됐을 즈음이었다. 아이가 태어날 예정인데 하루아침에 6000만원 빚이 생겼고 함께 살 집은 사라졌다. “제대로 된 장난감은커녕 엄마, 아빠가 환하게 웃으면서 놀아주지 못하는 게 가장 미안해요.” 한씨 남편은 전세사기가 터진 뒤 본업인 스포츠 강습으로 시작해 청소 알바와 배달 대행으로 하루를 보낸다.
경매 절차가 완료된 한씨는 긴급주거 지원을 신청해 희망 날짜를 적으면 이사하게 된다. 하지만 긴급주거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입주 6개월 후에는 연장 심사를 받아야 하고, 심사를 거쳐야만 최장 2년간 머물 수 있다. 아기가 있다 보니 소음 문제로 심사에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크다.
긴급주거에서 퇴거한 뒤에야 금융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벽이다. 긴급주거에서 나오면 당장살 집이 있어야 하는데, 정작 이 집을 구하는 데 필요한 금융지원은 긴급주거에서 나온 뒤에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지원센터에 퇴거 확약서라도 내면 주거지원과 금융지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한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했다. 피해센터가 지원하는 마음돌봄도 받았다. 하지만 비용을 자비로 선 결제하고 추후 증빙해 돌려받는 식이다 보니 하루 만원이라도 더 벌겠다고 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덜컥 상담받기 어렵다.
한씨는 ‘무엇이 최선인지’ 도돌이표처럼 고민하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낙찰자가 사기 피해 소식을 듣고선 낙찰 취소 의향을 밝혔지만 법원 규정상 취소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제는 정부가 방법을 찾을 때가 아니라 실행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 한씨에겐 열흘 남짓한 시간만 남아 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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