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책에 빠진 `다독왕` 출판사까지… "`더글로리` 제작사도 우리와 계약했죠"
10년 다니던 직장 접고 좋은 콘텐츠 나누려 출판계 뛰어들어
흥행작 줄잇는 스튜디오드래곤과 '은하수의 저주' 판권 계약
영화·웹툰 2차 저작물 계약 봇물… "IP전문 콘텐츠기업 목표"
"델피노 신간은 국내 출판시장에서도 주목하는 작품들이 많지만, 되레 해외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판권 계약을 하는 작품들도 적지 않습니다. 신인 작가 위주로 작품을 내다보니 해외시장에서는 그 부분이 더 신선하다고 반응하는 것 같아요. 덕분인지 드라마 등의 2차 저작물 판권 계약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
'도깨비', '사랑의불시착', '스위트홈' 등 흥행작을 잇따라 선보였던 국내 대표 제작사 중 한 곳인 스튜디오드래곤은 최근 다시 한번 'K 드라마 선도기업'이라는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학교 폭력을 소재로 배우 송혜교씨와 김은숙 작가가 호흡을 맞춘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 덕분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최근 한 신생 출판사의 작품에 주목했다. 작년 여름 도서출판 델피노에서 출간한 장편소설 '은하수의 저주'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 출판업계에서 작지만 탄탄한 실력을 갖춘 신생출판사인인 델피노 작품을 스튜디오드래곤이 드라마로 제작하기 위한 판권 계약을 한 것.
소설은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인 강해수가 심폐소생술(CPR)을 하던 도중 환자의 과거가 보이는 경험을 하게되면서 시작된다. 이 후 상황은 점점 꼬이다 환자들의 기억이 19년 전에 발생한 크루즈 화재 사고로 집중되면서 전개에 속도감이 붙는다.소재가 신선한데다 전래동화와 멜로드라마까지 더해진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독자들의 호흡을 단숨에 끌어들이는 전개가 추리물 장르까지 넘나든다.
이 소설은 드라마화 뿐만 아니라 이미 중화권 진출 준비도 마쳤다. 대만출판사와 중국어 번체자 출간 계약도 끝냈다.
도서출판 델피노의 이런 판권 계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 7번째다. 그리고 이런 두드러진 실적은 모두 2022년에 쏟아져 나왔다.
신생 출판사라면서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걸까. 우선 출판사 이름부터 우직하다. '델피노'를 듣자마자 강원도의 한 유명리조트를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피노(pino)는 스페인어로 소나무를 지칭한다.
도서출판 델피노(DELPINO)의 이경재 대표(44·사진)는 "소나무 한 그루를 심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책을 만들고, 훗날 그 책들이 모여 커다란 소나무 숲을 이룰 때를 생각하며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이었던 이 대표는 책을 많이 읽는 '다독왕'이었다. 책에 빠져들수록 훌륭한 콘텐츠를 사람들과 널리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이 더욱 굳어지게 되면서 출판업계로 자신의 미래를 투영시켰다. 주위에서는 기존 출판사를 인수해 편하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권했지만, 이 대표는 출판의 ABC부터 직접 배워 아예 출판사를 세웠다.
회사를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다만 원칙은 있었다.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 시간만을 오롯이 쏟아부은 것이다. 오랜 준비 끝에 2019년 도서출판 델피노의 사업자 등록을 마친 뒤 10여년 가까이 일해왔던 직장에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후 델피노는 세상에 유익한 콘텐츠를 소유한 이들을 찾아 출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득을 거듭하는 고군분투에 빠졌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자주 올리는 기성작가들도 접촉해봤지만, 당연히 쉽지 않았다. 이에 델피노는 신인 작가발굴에 주력, 이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신생 출판사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델피노 신간에는 유독 신인 작가들이 자주 이름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대표는 "국내 출판 시장의 소설 분야는 유독 베스트셀러 작가 위주로만 치우쳐있다"며 "때문에 좋은 콘텐츠를 보유한 신인 작가들이 출간 기회가 적다. 델피노에서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소재와 장르에 집중해 능력있는 신인 작가 발굴에 좀 더 힘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좋은 작품 선정 기준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우선 당연하게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델피노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참신한' 소재여야 한다. 이런 '신선한' 원고들은 이 대표가 작가의 '첫번째 독자'라는 태도로 직접 읽고 출간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공을 들여서인지 유독 드라마, 영화, 웹툰, 전자책 등 2차 저작물 계약이 많다. 여기부터는 이 대표의 경쟁력이 십분 발휘된다.
작가와 출간 계약 체결 직후부터 이 대표가 활약하는 필드인 셈. 작가와의 계약이 확정되자마자 2차 저작물 제작사들과 작품을 논의하는 미팅자리를 잡기 시작, 아예 출간 전에 드라마나 영화 제작 등 관련 계약부터 체결한 작품도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작품의 스토리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작가의 첫번째 독자'인 출판사 대표가 직접 미팅을 진행하는 노력 때문인지 작품의 장점을 적극 어필할 수 있기도 해 제작사들로부터의 반응도 즉각적인 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문학(K-콘텐츠)의 해외 진출 방안을 고민하다 작년 2월 아예 홍콩으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거주하면서 해외시장에서 K-콘텐츠의 매력을 알리는 등 하루가 멀게 구두축이 닳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작가들과의 미팅은 어떻게 진행하는지가 궁금해진다. 이에 이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시대이니 만큼 온라인 소통이 어렵지 않다. 신뢰가 쌓인 작가들과는 온라인(줌)을 통해서 적극 소통하고 있어서 큰 불편함 없이 신간 출간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본격적으로 홍콩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작년에는 17종을 선보인데 이어 올해는 20종이나 출간 계획이 잡혀있는 상태다.이 대표는 "단순히 책만 선보이는 출판사를 넘어서 한국문학(K-콘텐츠)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지적재산권(IP) 전문 콘텐츠 기업이 목표"라며 "올해 여름에는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릴 예정이다. 다국적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부터 디즈니플러스, 애플TV+ 등과 사업제휴 미팅을 계획 중"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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