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아군뿐인 ‘치명적’ 윤석열 외교…북·중·러 반발 거세진다

신형철 2023. 4. 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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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미 정상회담]한-미 정상회담 이후 전문가 진단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출발에 앞서 공군 1호기 기내를 돌며 동행 기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외교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과 확장억제(핵우산) 강화에 치중한 나머지 경제안보 측면에서는 실익을 못 챙기고, 북·중·러의 반발 확대라는 도전을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30일 <한겨레>가 의견을 구한 전문가 6명은 이렇게 진단하고, 실리와 위기 관리를 추구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주문했다. 한·미 정상은 핵협의그룹(NCG)을 설립하고 핵잠수함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늘리기로 하는 등 대북 확장억제 수위를 높였는데, 전문가들은 북한의 무력시위와 핵개발이 오히려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진영론적 국제관계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미국이 제안하는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양대 진영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모양새다. 과연 현재 국제정치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경제안보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거의 없고, 한쪽 진영에 섰을 때의 부작용에 대한 고민이 안 보인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독재·전체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진영론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 결과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3국 협력 내지 준동맹에 편입됐다는 것”이라며 “외교를 완전히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는 관계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했다. 반면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미-중 대립과 북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 동맹 간 공조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진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대북 확장억제와 관련해 대통령실이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추켜세운 ‘워싱턴 선언’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상만 교수는 “확장억제는 이미 우리와 미국이 하고 있던 것인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새롭게 진전된 것은 없어 보인다. 문서 하나로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는 “확장억제는 이것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닌 ‘의지의 문제’”라며 “그러나 이 같은 의지의 문제는 아무리 상대 쪽에서 사전에 확인을 해준다고 해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말은 화려하게 동맹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다”며 “한국에서는 사실상 핵공유라고 하지만, 미국은 아니라고 하면서 이미 실상이 드러나버렸다”고 말했다.

확장억제를 강화한 방향성 자체는 옳다는 전문가도 있다. 위성락 전 대사는 “확장억제 강화에 대한 합의는 좋은 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일각에서 이번 합의로 핵무장 옵션이나 한반도 핵 재배치 옵션을 버렸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기 때문에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북한의 반발 수위는 높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남주 교수는 “전략핵잠수함(SSBN)이 한반도에 들어온다면 북한에 위협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북한은 이를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은 주변 환경을 감안은 하되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 같다”며 “(윤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은 먼 일이 되어버렸고, 북한 인권으로 압박하는 등 본심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만 교수는 “북한은 핵무기를 통해 체제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정상회담의 결과와 관계없이 강하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위성락 전 대사는 “대북 억제력 강화는 필요조건이지만 그걸로 충분하진 않다. 대화와 협상이 있어야만 타개가 가능하고, 그 부분이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 전 대사는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한국의 외교가 종래보다 훨씬 더 미국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보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중·러가 반발하는 것이고 한국으로서는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미사일 방어망이 정보체계에서 제일 민감하다”며 “미국 전략자산이 동해나 서해로 들어오면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흥규 소장은 중국과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까지 우려했다. 김 소장은 “서해에서의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 것”이라며 “보다 빈번하게 중국의 군함이 서해에 출연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이어도 해역에서의 충돌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 협력에 있어서 중국이 한국에 구체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불편해할 만한 점을 계속 건드릴 것”이라며 덧붙였다.

다만 이상만 교수는 “전략핵잠수함(의 한국 기항) 등에 대해 중국이 굉장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텐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양보를 한다면 중국이 우리를 우습게 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치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실리를 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흥규 소장은 “어떻게든 이익의 균형을 취하는 노력을 해야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정 교수는 “미국에만 편중된 ‘서방 외교’가 아닌 ‘사방 외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북·중·러와의 갈등 심화를 예상하면서 “상황 악화 방지가 중요하다. 사안에 따라 모호하거나 명확하게 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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