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사회복무요원은 노동자가 아닌 노예인가"

김예리 기자 2023. 4. 30. 18: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회복무노조·이주노조 집회…청년학생단체들 "갈라치기 거부한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세계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곳곳에서 집회가 열렸다. 사회복무요원과 이주노동자 등 권리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은 이날 한국 정부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비준하고도 이를 위반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청년학생단체들은 문화제를 열고 '노동자와 학생 갈라치기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은 30일 낮 서울 영등포 서울지방병무청 정문 앞에서 첫 사회복무요원 노동자의 날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이 자리에서 사회복무요원을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병무청과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회복무요원들은 일방 배치되는 복무기관에서 무리하거나 부당한 노동 환경에 놓였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사회복무요원도 노동자, 아무도 관심 없었을 뿐”

김희중 사회복무노조 집행위원은 “병무청은 사회복무요원이 보조지원 업무만 할 뿐 온전한 근로자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그렇다면 이태원 참사 뒤 직원들 대신 위험천만하게 압사 방지와 안전문 수리 업무를 한 지하철 사회복무요원은 노동자 아닌 노예인가”라고 했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병무청은) 심각한 허리디스크를 가진 이에게 육체노동을 강요하고,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에게 민원 응대를 강요하며, 뇌종양으로 손가락이 절단되고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은 30일 낮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정문 앞에서 첫 사회복무요원 노동자의 날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희중 사회복무노조 집행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현 사회복무요원들은 직접 피해 증언에 나섰다. 이진훈(가명)씨는 휴식 시간 없는 민원 응대 업무 등을 하다 우울증을 진단 받고 복무기관 재지정을 요청했지만 거부 당했다. 담당 복무지도관은 그에게 “이 정도로도 재지정을 받지 못한다”며 다른 사회복무요원의 자해 사진을 '샘플'로 보여줬다고 한다.

장민수씨는 가정폭력을 피해 기존 집을 나와 주거대출을 거부 당한 뒤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9시 퇴근하면서도 살곳을 백방으로 알아봤다. 그러나 찜질방 대량결제를 하려 해도 50만 원의 월급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했다.

▲사회복무요원노조 조합원들이 30일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일터 괴롭힘 방지법 통과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사회복무요원노조 조합원들이 30일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일터 괴롭힘 방지법 통과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조 설립신고 반려 처분에 취소 소송을 대리하는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아주 이상한 제도”라며 “특히 법에 의해 노동의 제공이 강제되고, 복무기관 재지정 허가 없이는 근무지를 바꿀 수 없는 등 취약한 처지에 있지만 권리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했다.

하은성 사회복무노조 사무처장은 '현역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국가와 사회의 물음 속에 사회복무요원들이 권리를 빼앗겨왔다고 했다. 그는 “사회복무요원들을 더욱 괴롭게 한 것은 정상적 몸이 아니라는 사회의 차별적 시선”이라며 “사회복무는 국가가 정책으로 만들어낸 노동착취 제도이며 ILO의 강제노동 금지 협약이 발효된 지금 정당성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30일을 시작으로 3주 동안 사회복무요원들의 복무 환경과 괴롬힘 피해에 최초로 실태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주노조 “정부 숫자 늘리기 급급, 강제노동 제도는 그대로”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수원이주민센터 등은 서울 용산역 앞 광장에서 낮 2시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대회를 열었다. 이주노조는 “윤석열 정부는 전 산업에 거쳐 이주노동자 유입을 확대하겠다며 선행돼야 할 임시 가건물 기숙사 환경, 산업재해,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 등 착취와 차별을 근본 개선할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정부는 이주노동자 숫자를 늘려 인력 공급하는 데만 신경쓰고 권리 보장에 아무 관심이 없다”며 “직장을 바꾸고 선택할 권리, 쉴 권리, 인간다운 숙소에 살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예술 활동가 니샤와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래 '처음처럼'에 맞추어 마임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주 승인을 받아야만 일터를 옮길 수 있도록 규정해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주노조는 농업 노동자들의 경우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를 집이 아닌 곳에 살게 하며 '숙소 사용료'를 명분으로 30~40만원씩 강제로 공제해 최저임금도 보장하지 않는 현실도 지적한다.

네팔의 산티 씨는 “인천에 소재한 닭고기를 자르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사장에게 사업장 변경을 승인해달라고 한 뒤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너무나 추운 곳에서 하루 종일 손에 힘주고 일해야 한다. 일한 지 한두 달 뒤부터 손과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며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자 견딜 수 없어 사장에게 사업장 변경을 (승인)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변경을 해주지 않고,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 이제는 이것이 고용허가제에 의한 강제노동임을 안다”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한국 사업주들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를 숙소로 강제 배정한다고 사진과 함께 증언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주노조 조합원들이 고용허가제를 노동자를 구속하는 쇠사슬에 비유한 퍼포먼스를 해보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크메르노동권협회의 속파오시다 대표는 한국 사업주들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를 숙소로 강제 배정한다고 증언했다. 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 활동가는 “정부는 69시간도 괜찮지 않느냐고 헛소리를 하지만 정작 농업 노동자의 노동에 어떤 데이터도 갖고 있지 않다”며 “농업노동자는 여름이면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 가까이 밭에 있고, 한 달에 이틀 쉰다. 해마다 수만 명을 한국으로 불러 일하게 하면서 죽든 말든 방치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예술 활동가 니샤 등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래 '처음처럼'에 맞추어 마임 공연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일어나 춤을 추며 마임 동작을 따라했다. 참가자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예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거듭 외쳤다. 집회 끝무렵에는 고용허가제라는 이름의 족쇄를 깨겠다는 의미를 담아 쇠사슬로 팔을 묶어 들어보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가 끝난 뒤 민주노총, 사회복무노조와 이주노조 조합원들과 집회 참가자들은 대통령실 앞으로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주노조는 이날 △사업주에만 권리를 부여하는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도입 △단속 추방 중단 △미등록 이주민 체류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주노조는 “노동절은 노동자들에게 쉬는 날이지만 이주노조의 많은 조합원들은 내일 쉴 수 있을지 막판까지 알 수 없다. 사장이 일이 있다고 말하면 일하러 가야 하는, 선택권이 없는 처지”라며 “조합원들이 많이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매년 일요일에 메이데이 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후 3시께 집회를 마친 뒤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했다. 사회복무노조와 다른 노동조합들도 이에 합류해 함께 행진을 이어갔다.

25개 청년학생 단체 “노동자와 청년 갈라치기 말라”

전국 25개 청년학생 단체들은 오후 5시 용산역 앞 광장에서 노동절 전야 청년학생문화제를 열었다. 사회를 맡은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의 이경희씨는 “최근 노동자와 학생 갈라치기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고 했다.

▲전국 25개 청년학생 단체들은 30일 오후 5시 용산역 광장에서 노동절 전야 청년학생문화제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동절 전야 청년학생문화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씨는 “연세대에선 청소노동자들이 샤워실 설치와 임금 430원 인상을 요구하며 진행한 집회에 학생이 노동자를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덕성여대에선 청소노동자들이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자 올초까지 대화를 거부하며 질질 끌던 김건희 총장이 학생과 노동자를 갈라치기하는 담화문을 내보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노동자와 청년들은 경계 지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노동으로 연결돼 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