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범죄, 처벌 강화만이 답일까
[세상읽기]
[세상읽기]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알코올중독 의심, 난동을 피워 정상적인 의사소통 불가능, 수사 과정 중 욕을 하고 책상을 엎음.” 불과 열네살의 소년범에 대한 것치곤 이례적인 내용의 메모와 함께 경찰로부터 송치된 사건. 사법연수생 신분으로 검찰 실무 수습 중이던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소년 피의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소년 피의자는 의외로 자그마하고 동그란 것이 까만 콩 같았다. 어쨌든 본 메모가 있으니, 언제 저 까만 콩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걷어찰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피의자 신문을 시작했다. 오토바이 열쇠도 없이 오토바이를 훔쳤던데, 이건 어떻게 한 건가요?
놀랍게도 피의자는 진지하고도 신난 태도로 설명해 줬다. 전선들을 이어 붙이면 시동이 켜진다나, 열쇠 없이 오토바이 훔치는 법을 제대로 알게 된 후, 다른 범행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내친김에 어떻게 사는지,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도. 까만 콩 피의자는 오토바이를 훔친 것엔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동네 슈퍼에서 물건들을 수시로 훔친 것에 대해서는 주인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했다. 꼭 자기 할머니를 속이는 것 같아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나이가 어려 못 하는 것이 속상하고, 자신을 키워 주는 할머니를 가장 좋아하며, 크면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난 할머니께 음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범죄를 저질러선 안 된다고 말해 주었다. 피의자는 그러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하면서 슬쩍 물어봤다. 경찰서에서는 아주 난동을 피웠다던데, 왜 그랬나요? 내 얘기는 안 듣고 기분 나쁘게 구니까요.
여기까지 읽으면 흔하지만 이상적인 미담이다. 그 이후의 반전도 없다. 그 소년의 삶은 추적하지 못했다. 약속을 지켜 재범하지 않았을지 또는 무수히 재범하여 각종 소년보호처분에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나는 자신감 뿜뿜 상태였던 것 같다. ‘나는 소년범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나는 소년범들과도 소통할 수 있어.’
어린이에서 소년이 되어 가는 자녀들을 양육하며 그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이들은 선하다, 악하다를 논하기 이전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정하고 순수했으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했다. 놀랍도록 미성숙하기도 했는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며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특히 약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미성숙한 면, 이기적인 면, 무책임한 면도 같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서 본 미성숙함은 사실 익숙했다. 타고나길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숙도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을, 사람은 누구나 끊임없이 경험하고 배우며 성숙해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성숙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선 나부터 성숙해져야 한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반복되는 미성숙함이 성숙함으로 대체될 여지가 생긴다.
아동·청소년은 달리 말해 성년이 되지 못한 사람, ‘미성년자’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 그러나 경험하고 배우면 성숙해지리라 기대되는 사람. 형사재판을 하면서 미성년자 피고인들도 제법 보았는데, 이제는 그들과 섣불리 소통하려고 시도하거나 그들로부터 다짐을 받았다고 하여 그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재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진 않는다. 성년이 되어서도 미성숙하여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성인들의 미성숙한 행동양식을 분별없이 받아들인 아동·청소년들이 단 한번의 훈계, 단 한번의 재판이나 처벌만으로 갑자기 성숙해질 것이라 기대할 순 없지 않은가.
단지 바라게 될 뿐이다. 우리 사회가 미성년자들의 미성숙함을 선과 악의 잣대로만 쉽게 판단하지 않기를, 그들이 성숙해질 때까지 어른들이 먼저 성숙함을 보이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반복되는 미성숙함을 성숙함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인내하고 보호하며 교육할 수 있기를. 그렇게 해서 마침내 성숙한 성년들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그런 의미에서 미성년자 범죄의 극단적인 케이스만을 사례 삼아 미성년자 처벌 강화를 꾀하는 것이 과연 안전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일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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